[문예공론] 독립영화 <대전, 1960>

4·19혁명의 도화선이 된 '3·8 민주 의거'를 영화로 제작한 대전영화협회 씬영사이 대표 배기원 감독은 우리가 발 딛고 선 이 땅의 어제를 영화로 함께 읽어보고자 한다며, 대전의 정신을 나누는 뜻깊은 자리에 함께 해주셔서 감사드린다고 객석을 향해 정중히 인사했다. 독립영화<대전, 1960>은 1960년 3월 8일, 불의에 항거한 고등학생들의 뜨거운 외침을 담은 영화이다.
전날 민주당 후보의 선거 강연회 참석을 불허한 교장의 조치에 반발한 대전고등학교 학생들이 다음날 시내에 모여 학원 자율화 등의 내용을 담은 결의문을 낭독하고 무장한 경찰과 맞섰다. 남학생들은 민머리에 교복을 입고 열연하는데 표정이 의연했다. 영화는 40여 분간 한시도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관객이 매료되었다.
객석에는 당시 고등학생으로 '3·8 민주의거'에 참여하셨던 분들도 많이 오셨다. 관객 한 분은 자신은 대전상업고 졸업생이라고 소개하며 3.8 민주 의거에는 자신은 물론이고 대전상업고 학생들도 많이 참가했다고 말했다. 영화는 물론이고 그런 시간도 의미 있었다.
이튿날. 옛 도청 <대전근현대사전시관>에 들렀다. '3·8민주의거'에 대해 좀 더 많은 것을 알고 싶었다. 하지만 그곳은 주로 대전근현대사 자료가 전시되어 있고 '대전 3·8 민주의거'는 몇 줄 써 있었다.
-전후 재건 시대를 거치며, 자유당 정권의 독재와 부패에 맞선 민주화의 열기 또한 높아졌다. 이 열기는 1960년 4·19혁명으로 절정에 이르렀는데, 대전은 이보다 앞서 '3.8민주의거'로 민주화를 향한 지역의 열망을 분출했다._'대전 3.8민주의거' 중 발췌(대전근현대사전시관)
귀가 중 전시관에서 멀지 않은 <3·8 민주의거기념관>에 들렀다, 2층 전시실은 전문 해설사 선생님께서 잘 설명해주셨다. 마침 커먼즈필드에서 뵈었던, (사)3·8민주의거기념사업회 이양회 회장님을 뵙고 그 시대 현장을 기록하듯 상세히 들을 수 있었다. 이양희 회장님은 당시 대고 1학년 학생으로 '3·8 민주의거'에 참여하셨다. 기념관에서 진행하는 '3·8 아카데미'도 참여해 보고 싶다. 이양회 회장님께서 "자유·민주주의는 가르치고 배워야 하는 제도이며 우리 인류가 개발해 낸 현재까지 최선의 제도이며, 인권과 자유를 누릴 수 있는 훌륭한 제도입니다."라고 말씀하셨다.

배기원 감독은 몇 해 전 '3·8 민주의거'를 알게 되었고, 영화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예산이 부족한 독립영화로 1960년대를 재현하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렇게 고민하던 시기에 대전MBC에서 연락이 왔다. 다큐를 만들려고 하는데 자료가 사진 3~4장이 모두라는 말이었다. 그래서 대전의 이야기를 담는 영화감독에게 극 부분을 의뢰하고 방송국에서는 다큐로 완성한다는 계획을 말해줬다. 그래서 배 감독은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여 제작을 진행하게 되었다.
하지만, 1960년대를 재현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특히 그 당시 학생들의 두발은 거의 민머리(스포츠머리)였다. 거의 삭발 상태의 머리를 한 배우를 뽑는 것이 힘들었다. 주연급 배우들은 짧은 헤어스타일에 동의하여 진행했지만, 조연이나 단역 학생들을 구하는 것 또한 쉽지 않았다. 오죽했으면 논산 훈련소까지 전화해서 물어봤을까.
코로나만 아니었어도 가능성이 좀 있었을 수도 있는데 그때는 코로나가 가장 심하던 시기여서 불가했다.(2022년 1월 촬영) 대전 체육고에 물어봤더니 요즘 학생들 머리가 길다는 답변이 왔다. 결국 민머리 자를 수 있는 보조 출연자들 최소 인원을 뽑아서 진행했다. 역사적 사실을 좀 더 실감나게 표현하고 싶었지만 예산의 한계, 상황의 한계에 부딪혀서 많이 아쉬웠다고 한다.
배우 캐스팅은 하늘이 도와서 정말 순조롭게 잘 진행됐다. 배역에 딱 맞는 캐스팅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단합이 좋은 팀워크를 보여줬고, 현장에서도 좋은 에너지로 작용했다. 배우 남명렬 선생 캐스팅은 정점을 찍고, 영화 전반에 무게 중심으로 자리하여 영화의 중추적인 역할을 해주셨다. 배우들 전체가 정말 훌륭한 연기를 보여줘서 영화가 살아났다고 생각한다니 평소 배 감독의 인성이 돋보였다. 더불어 대전 시민들의 보조 출연이 의미를 더하여 완벽한 대전의 영화로 거듭났다.
장소 또한 섭외가 순조로웠다. 오래된 교장 사택을 고민하던 차 한남대 선교사촌의 정보를 입수하고 섭외를 진행하였고, 오래된 교실은 연무대에 있는 고등학교의 한 교실을 활용하게 되었다. 또한 학생들이 경찰들과 맞서는 장면은 논산 선샤인랜드의 오픈세트장에서 촬영하였다. 예산은 많지 않았지만, 큰 운이 따라서 배우와 장소 섭외가 훌륭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배기원 감독의 계획은 <대전, 1960>이 더욱 많은 사람에게 보이면 좋겠다고 한다. 특히 이번 상영회에서 3·8 민주의거기념사업회 이양희 회장님을 비롯하여 회원분들이 많이 오셔서 영화를 보셨고, 적극 활용하는 방향을 함께 고민하기로 하셔서 기대가 크다고. 요즘 시대에 맞는 다양한 방법으로 활용되어 홍보가 되고 관객들에게 보여줄 기회가 올 것 같다. 그뿐만 아니라, 매년 3월에는 자체적으로라도 상영회를 가질 생각이다. '3.8 민주의거'가 대전 시민정신으로 자리잡을 때까지 이 영화의 상영은 계속될 것이다.
대전영화협회 씬영사이는 영화에 관심 있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매월 세 번째 수요일에 모여서 영화를 보고 이야기 나누는 시네마 네트워킹(일명 시네킹)을 진행하고 있으며 영화 워크숍, 영화제 개최 등 다양한 행사를 진행 중이다. 관심있는 분들은 언제나 환영한다고 하니 귀가 솔깃해진다. 부디 좋은 영화로 지루한 일상을 업그레이드해 주기를 믿는다.
민순혜/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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