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임계숙 대한하키협회 부회장 “한국 하키 중흥 위해 할 수 있는 일 할 것”
선수 뽑기도 어려운 지금과 견줘 ‘그때’는 나아
자신감은 선수 스스로 대견해하는 훈련량과 강도에서 나와
하키 역사 한눈에 보는 ‘하키 박물관’, 유소년 저변 확대 등 중장기 플랜 필요

그는 한국 필드하키의 전설이자 신화다. 축구로 따진다면, 차범근·손흥민과 같은 걸출한 스트라이커다. 당시 필드 하키 수준이 낮았던 아시아 팀들과 경기하면서 골을 많이 넣은 것이라는 겸손한 설명이지만, A매치 101경기 127골은 아직까지 세계 유일무이한 기록이다. 지난해 2월부터 대한하키협회 부회장을 맡고 있는 임계숙 전 국가대표, 국내 유일의 여자 하키 실업팀인 KT 하키단의 전 감독의 얘기다. 1982년 뉴델라 아시안게임 은메달,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 은메달, 1990년 베이징 아시안게임 금메달 등 그와 그의 동료들로 이뤄진 여자하키 국가대표 1세대는 우뚝 솟았던 단봉 ‘황금세대’였다. 하지만 그는 2010년대 이후 한국 하키의 쇠락과 침잠 속에서 잊힌, 아니 잊히고 있는 사람이다. 1981년 국가대표로 시작해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을 끝으로 12년의 국가대표 생활, 2010년까지 KT에서 직장인으로 근무하며 사회인 생활, 그리고 2010년부터 2024년까지 KT 하키선수단의 감독생활까지 임 부회장의 얘기를 3월31일 오후 들어봤다. 인터뷰한 곳은 임 부회장이 1981년 국가대표 선발경기를 했던 용산고등학교 지척에 자리한 헤럴드스퀘어 지하1층 휴식터인 카페테리아이다.
▷A매치 101경기 127골은 경이적이다. 이 기록을 세우면서 제일 기억나는 경기가 있다면.
-처음엔 몰랐다. 제 기록이 그렇다고 나중에 통계가 나와 알게 됐다. 아마도 1980년대 실력이 낮은 편에 속했던 아시아권 팀들과 경기에서 골을 많이 넣어서 그런 기록이 나온 게 아닌가 싶다. 저는 14초대를 뛰던 느린 선수였다, 하지만 체력은 자신이 있었다. 그리고 기본기 훈련을 아주 많이 했다. 다양한 잔기술보다는 기본기를 바탕으로 경기를 했다. 어떤 감독님이 제가 경기하던 모습을 “구렁이 담 넘어가듯 한다”고 말한 게 기억나는데 그런 걸 지적하신 것 같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는 역시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호주와 벌인 결승전이다. 예선에서는 5 대 5로 비겼는데, 결승에서 0 대 2로 지고 말았다(호주와 예선에서 임 부회장은 3골을 넣는 활약을 펼쳤다 - 편집자). 바로 전날에 여자 핸드볼이 금메달을 땄고, 결승전 당일에 대통령까지 오셨다. 부담이 컸는지 몸이 예선전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못지 않게 가장 아쉬운 경기는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에서 홈팀 스페인과 경기다. 1990년 베이징 아시안게임에서 우승하면서, 그때까지 시원하게 이겨본 적이 없는 호주를 빼곤 누구와 붙어도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우리 안에 가득했다. 그런 호주가 예선 탈락했다. 그런데 우리가 스페인에게 0 대 1로 덜미를 잡혔다. 질 수 없었던 경기인데 말이다. 충격에 메달권에 못들고 4위에 그쳤다. 지금까지 그때가 올림픽 금메달에 가장 근접했던 순간이었다는 생각에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국가대표 은퇴하고 18년 직장인 생활하다 2010년 KT하키단 감독을 맡았다. 공백이 컸는데 감독으로 있으면서 느낀 점은.
-천안전화국에서 과장으로 중간관리자로 있으면서 주로 고객 응대를 하며 직장생활을 했다. 그러다 퇴임으로 KT하키단 감독이 공석이 됐다. 단장으로 있던 분이 사격 선수 출신이었는데, 제게 의향을 묻는 전화가 왔고 가족과 논의해 하루 뒤 수락 의사를 전하고 서울로 왔다. 국내 대회가 연 5~6번 있는데, 연 3회 우승한 적도 있고 해마다 적어도 1번은 꼭 트로피를 받았다. 국내 유일의 실업팀인 KT하키단은 여건이 좋은 편이다. 하지만 감독으로 있는 기간이 한국 하키의 침잠기이기도 했다. 이유는 여럿일 것이다. 제가 국가대표일 때는 지원이 정말 많이 따랐다. 네덜란드와 호주 등으로 해외 전지훈련도 잦았고, 하키클럽에서 일상생활 수준으로 경기하는 외국 선수들의 모습을 보며 자극도 받고 동기부여도 됐다. 하지만 경기력을 끌어올리는 데는 왕도가 없다. 선수들에게 아무리 ‘자신감을 가지고 해라, 편하게 해라’ 이렇게 당부를 해도 이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저의 경험에 비춰보면, 경기에서 자신감을 찾으려면 결국 평소 훈련에서 ‘자기 스스로에게 만족할 만큼의 훈련량과 강도’가 뒷받침돼야 한다. 그럴 때 누구에게도 끓리지 않는 자신감이 생긴다. 이전과 달리 이게 좀 약해졌다는 인상을 감독을 하면서 받았다.
▷현역 시절과 비교하면, 지금의 팀 저변이나 선수층 저변은 어떤가?
-지금이 훨씬 열악하다. 무엇보다 선수를 찾기가 어렵다. 출생률이 하락하면서 중학교 한 학급당 20~25명밖에 안 되는데다, 남녀 공학이 되면서 여자 선수를 찾아 선수단을 꾸리기가 아주 힘들어졌다. 하키가 실외경기다 보니 부모님들이 하키를 하는 것에 선뜻 동의하는 분들도 드물다. 저희 때는 여자 고등학교 팀이 3개나 있었고, 서울에만도 팀이 4개나 됐는데 지금은 그때와 견줘 팀 수도 거의 3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 대학에 하키팀이 있는 남자의 경우 여자보다는 좀 나은 편이다.
▷한국 하키가 침잠해 있는 이유와도 관련이 있는 것 같다. 한국 하키의 현주소를 어떻게 보나?
-맞다. 선수를 찾기가 힘들다는 건 분명히 한 요인이다. 투자가 적어진 것도 주요한 이유이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경기력을 끌어올리려면 ‘스스로에게 만족스러울 정도의 훈련량과 강도’가 필수적이라는 게 제 생각이다. 저희 때는 해외 전지훈련을 통해 그런 자극과 동기부여를 많이 받았다. 체격 조건이 월등히 좋은 유럽과 호주 선수들이 하는 모습을 보면서, 쟤들과 대등히 맞서려면 개인기 연습과 훈련밖에 없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한국 하키의 중흥을 위해서는 급한 일들을 해결하는 것과 함께 중장기 계획을 세우고 꾸준히 투자해 나가야 한다. 하키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하키 박물관’이 없다. 실제로 국가대표들이 썼던 나무 스틱에서 카본 스틱까지 스틱의 역사, 미국 메이저리그의 명예의 전당과 같은 기념관 기념품 등이 있으면 유소년층부터 하키의 저변을 넓히는 인프라로 기능할 수 있다. 정식 11인제 말고, 5인제와 7인제 등 실내하키를 육성하는 것도 중요하다. 비전을 세우고 필요한 투자를 한다면 한국 하키 중흥의 시간을 앞당길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주로 선수와 감독 생활을 하느라 제 개인적으로 하키 중흥을 위해 본격적으로 발로 뛰어본 적이 없다. 익숙하지는 않지만,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회피하지 않고 열심히 할 것이다.
▷곧 대한하키협회 회장 보궐선거가 있는데, 바라시는 게 있다면.
-한국 하키 중흥을 위해서는 유소년부터 저변을 넓혀서 뛰어난 선수들을 많이 발굴하고 키워나가는 수밖에 없다. 그러려면 역시 투자가 되는 수밖에 없다. 아마도 이게 모든 하키인이 같은 마음으로 제일 바라는 것일 게다. 이런 방안을 포함해 하키 중흥을 위한 중장기 계획이 세워지는 모습도 보고 싶어한다. 저 역시 하키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저변층을 확대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하겠다. 체력이 달리긴 하지만, ‘레전드 친선 게임’을 한다면 몸 관리해서 단 몇분이라도 뛰겠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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