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제주4.3은 과거사인가, 현재사인가

3월 29일, 제주4.3평화공원. 추념일이 아닌 날에 대통령이 왔다. 7분짜리 유족 간담회 인사말. 그 7분이 역대 어떤 추념사보다 멀리 갔다.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국빈 방한이 4월 3일과 겹쳐 "며칠이라도 일찍" 제주를 찾은 사전 참배였지만, 그 자리에서 나온 정책 선언은 사전이 아니라 전례 없는 것이었다. 그 7분이 무엇을 열어놓았고 무엇을 열어놓지 못했는지를 묻는다.
제주4.3사건은 1947년 3.1절 발포사건에서 시작해 1954년까지 이어진, 해방정국·분단·전쟁을 관통하는 사건이다. 특별법 제정 이후 26년, 대통령의 첫 공식 사과 이후 23년이다. 이 글은 그 역정 위에서 이재명 정부의 첫 발언을 평가하되, '과거사'라는 범주 자체가 아직 유효한지를 함께 묻고자 한다.
이재명 대통령의 유족 간담회 인사말에서 질적으로 새로운 것은 두 가지다. 첫째, 4.3 진압 공로 서훈 취소의 법적 근거 마련을 공약한 것이다. 이것은 피해자 구제의 확대가 아니다. 국가가 가해 행위에 대해 수여한 포상을 국가 스스로 취소하겠다는 것, 즉 과거의 국가 행위를 '진압의 공로'가 아니라 '범죄에 대한 포상'으로 재규정하겠다는 선언이다. 특별법 체제 26년의 역사에서, 국가가 가해의 사실을 넘어 가해에 대한 자기 평가를 번복하겠다고 선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둘째, 민·형사 시효 완전 폐지를 재추진하면서 "나치 전범 처벌과 같이 영구적으로 책임지도록" 하겠다고 발언한 것이다. 국제인권법의 불처벌 금지 원칙(principle against impunity)과 한국 대통령의 공식 발언이 명시적으로 연결된 최초의 장면이다. 시효 폐지 자체는 윤석열 정부 시기 국회를 이미 통과한 법안의 재추진이지만, 그것을 보편적 인권 규범의 좌표 위에 놓은 것은 수사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동시에 이 발언이 격식의 구속이 적은 유족 간담회에서 나왔다는 사실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공식 추념식에서 이 수위의 정책 선언이 가능했을까. 형식이 내용을 규정한 것인지, 형식의 구속이 풀린 자리에서 비로소 가능한 언어였는지, 이것은 제주4.3사건이 국정 의제에서 점하는 위치의 또 다른 단면이다.
이 발언의 파격성은 그것이 깨뜨리려 한 구조를 이해할 때 온전히 드러난다. 2000년 제정된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은 한국 과거사 청산의 제도적 원형이다. 이 법의 제2조는 제주4.3사건을 "1947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1948년 4월 3일 발생한 소요사태 및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력충돌과 그 진압 과정에서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으로 정의한다. 이 문구에는 가해 주체가 없다. '국가폭력'이라는 단어도 없다. 2003년 진상조사보고서가 국가폭력의 실체를 확인했음에도, 법률의 틀은 피해 사실만을 서술하는 타협적 언어 위에 놓여 있었다. "소요사태"라는 단어가 법률 언어에 살아남은 것이 이 타협의 흔적이다.
이 구조 위에서 한국의 과거사 청산은 "역사적 진상규명은 최대로, 사법적 정의는 배제"하는 모델로 작동해왔다. 진실위원회는 만들되 특별검사는 만들지 않는, 피해자는 인정하되 가해자는 특정하지 않는, 사과는 하되 처벌은 하지 않는 비대칭. 이것이 특별법 체제의 기본 설계였다. 이 모델은 이후 한국의 다른 과거사 정리 작업,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과 의문사, 간첩 조작 사건의 설계도가 되었다. 이재명 발언의 서훈 취소와 시효 폐지는 이 설계에 대한 최초의 공식적 이의 제기다.
그런데 이 설계를 뒤에서 떠받쳐온 개념적 틀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행기 정의(transitional justice)라는 개념이 그것이다. 진실·정의·배상·재발 방지 보장이라는 네 기둥은 한국 과거사 운동이 국제적 정당성을 확보하는 규범적 자원이었고, 4.3 기록물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2025년)도 이 보편적 틀 위에서 가능했다. 그러나 이 개념의 핵심 전제가 흔들린다. 이행기 정의는 '이전 체제(권위주의) → 이행 → 이후 체제(민주주의)'라는 명확한 시간적 절단을 전제한다. 사건은 1947년이고 특별법은 2000년이며 보상 근거는 2021년이고 서훈 취소는 아직이다. '이행'이 78년째 진행 중이라면, 이것이 과연 '이행기'인가. 더 근본적 문제는 이 개념이 불완전한 정의를 정당화하는 천장으로 작동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행기'라는 수식어는 "아직 이행 중이니 이 정도면 진전"이라는 논리적 완충재가 되어, 비판의 언어를 타협의 언어로 전환시킨다.
'가해자 없는 진상규명' 모델이 한국에서 정착된 데는, 이행기 정의 담론이 진상규명을 최대치로 하되 사법적 정의를 유보하는 논리적 근거를, 의도했든 아니든, 제공했던 측면이 있다. 한국의 민주화 자체가 협상적·점진적이었고, 군과 경찰이라는 가해 기관이 해체되거나 근본적으로 재편되지 않은 채 민주주의 체제 내에 존속했다. 노무현 정부의 사과에서 윤석열 정부의 소멸시효 폐지법 거부권까지, 진전이 누적되지 않고 정권 교체마다 반복·취소되는 사이클은 이 구조적 한계의 반복적 현현이다.

이재명 발언의 서훈 취소 공약이 중요한 것은, 그것이 이 구조의 한 축인 가해 행위에 대한 국가적 포상의 존속에 처음으로 손을 대기 때문이다. 그러나 구조적 가해 책임의 나머지 축들은 발언에서 빠져 있다. 2019년 추념식에서 경찰청장의 사죄와 국방부의 유감 표명이 있었지만, 그것은 특정 정권 시기 행사 자리에서의 일회적 발언에 그쳤을 뿐, 군·경 내부의 역사교육 의무화나 기관 역사의 수정 같은 구조적 변화로 이어지지 않았다. 가해자의 죽음이 정의의 불가능성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인식, 정의의 대상이 개인에서 가해 기관과 구조로 이동해야 한다는 인식이 아직 정책 언어에 도달하지 못한 것이다.
개인의 형사 책임이 시간에 의해 소멸한다 해도, 기관의 제도적 책임은 기관이 존속하는 한 소멸하지 않는다. 군과 경찰은 제주4.3사건의 가해 기관이면서 동시에 오늘의 대한민국에서 여전히 작동하는 국가기관이다. 이 기관들이 자신의 역사 속 가해를 어떻게 인식하고 교육하는가의 문제가 정의의 핵심 의제가 되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12.3 계엄과 내란을 겪은 지금, 군의 헌법 가치 교육과 군인복무기본법 개정이 논의되고 있다. 과거 국가폭력의 가해 역사는 이 헌법 가치 교육의 핵심 내용이 되어야 한다. 과거사 교육과 헌법 가치 교육은 별개의 문제가 아니다.
한편 법의 시간은 멈추거나 연장할 수 있지만, 몸의 시간은 그렇지 않다. 시효 폐지를 논의하는 사이에도 피해 당사자들은 사라져간다. 제도가 도달하기 전에 사람이 먼저 사라진다면 정의는 무엇이 되는가. 구조의 지속성과 피해자의 유한한 시간 사이의 간극이야말로 '현재사'의 가장 절박한 차원이다.
구조가 현재에 작동하는 양식도 달라졌다. 1948년에 구조가 작동한 방식은 물리적 폭력이었다. 2020년대에 구조가 작동하는 방식은 정동적 폭력이다. "4.3은 공산폭동", "5.18은 북한군 소행", "위안부는 자발적 매춘부", "보도연맹은 빨갱이 처단" 같은 언어들은 진위 공방이 아니라, 누가 피해자이고 누가 가해자인가를 감정적으로 역전시키는 정동적 작업이다. 역사부정 세력이 스스로를 '피해자'로 위치시키고 역사적 피해자를 '가해자'로 재호명하는 이 역전의 서사는, 사실의 교정만으로는 대응할 수 없는 감정 정치의 영역에서 작동한다.
이 역전이 효과적인 이유는 그것이 인지적 오류가 아니라 정동적 동일시이기 때문이다. 분노와 피해의식은 역사적 사실과 무관하게 유통되며, 알고리즘은 그 유통을 사실 확인보다 수만 배 빠른 속도로 증폭한다. 윤석열 정부 시기 극우 유튜브 알고리즘을 타고 전례 없는 속도로 증폭된 이 역사전쟁은, 정권이 교체되었다고 해서 구조가 해체되지 않는다. 동원의 진원지가 이동했을 뿐, 플랫폼 구조와 감정 회로는 정권 교체와 무관하게 존속한다.
이재명 대통령의 발언이 '역사 왜곡·폄훼 대응'을 공약에 포함시킨 것은 이 현실에 대한 인식의 단초다. 특히 이것이 단순한 사실 왜곡 금지가 아니라 희생자와 유족에 대한 혐오를 규제하는 성격을 띤다면, 법이 정동의 영역에 개입하는 의미 있는 시도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법이 혐오 발언을 제재할 수 있다 해도, 혐오를 작동시키는 감정의 회로 자체를 바꿀 수는 없다. 교육과정에서의 제주4.3사건 서술 체계화, 기억의 제도적 영속화, 시민사회 안에서 추모와 공감의 새로운 문법을 만드는 작업. 입법과 함께 이 재발 방지 보장의 영역이 동시에 추진되지 않으면, 법은 사후 처벌에 그치고 구조는 그대로 남는다.
다만, 정동이 파괴의 방향으로만 작동하는 것은 아니다. 제주4.3사건을 소재로 한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가 전미비평가협회 문학상을 받은 것은, 기억과 공감의 초국적 회로가 반대 방향에서도 열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현장에서 증언과 치유와 예술 작업을 통해 정의가 실제로 작동하는 자리를 만들어가는 실천도 있다. 정의의 재설계가 제도와 법의 영역에서만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기억이 다시 말해지는 순간에도 이루어진다는 것을 이 실천들이 보여주고 있다.

둘째, "광주 5.18과 같은, 작년 12.3 계엄, 내란이죠"라고 발언하면서 제주4.3 → 광주5.18 → 12.3 계엄을 하나의 연속선 위에 놓았다. 가해 기관이 해체되지 않은 채 존속할 때 국가폭력은 형태를 바꾸어 반복된다는 것을, 대통령이 직접 말한 것이다. 과거사가 과거에 머물지 않는다는 인식, 이 칼럼이 '현재사'라는 개념으로 제기한 문제의식과 정확히 맞닿아 있다. 셋째, "결국은 마지막은 문화인 거 같아요. 문화, 사람들의 일상적인 생각, 판단"이라고 했다. 법과 제도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인식의 단초다.
이 발언은 29일의 공백을 일부 채우고 있다. 그러나 채워지지 않은 것도 분명하다. '문화'를 말했지만, 그것을 정책으로 구체화하는 언어는 나오지 않았다. 군·경 내부의 역사교육 의무화, 교육과정에서의 제주4.3사건 서술 체계화, 가해 기관의 기관 역사 수정. 대통령이 4.3에서 12.3까지의 연속선을 인식하고 있다면, 그 인식은 선언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헌법 가치 교육의 내용으로, 가해 기관의 제도적 변화로 구체화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 구체화의 방향은, '이행기 정의'라는 기존의 개념적 틀로는 더 이상 설계할 수 없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행기 정의의 완성이 아니라 정의 자체의 재설계다. 그 재설계는 세 방향을 요구한다.
첫째, 시간 인식의 전환이다. '과거사'에서 '현재사'로, 역사적 부정의가 완료된 과거가 아니라 현재에도 피해를 산출하는 살아있는 구조라는 인식.
둘째, 분석 단위의 전환이다. 개인 가해자에서 가해 기관과 구조로, 가해자의 죽음이 정의의 종결을 의미하지 않는 정의론의 구축.
셋째, 정의 실천의 확장이다. 사실의 교정을 넘어, 어떤 감정이 누구를 향해 조직되는가를 분석하고 개입하는 것, 그리고 피해의 경험이 고립된 기억으로 남지 않고 관계 속에서 다시 말해지고 다른 감각과 언어로 번역되는 자리를 만드는 것을 정의의 영역에 포함시키는 것.
이재명 대통령의 이틀에 걸친 발언은 이 26년의 기본 설계에 의미 있는 균열을 냈고, 그 균열은 발언이 이어질수록 넓어지고 있다. 그러나 선언과 이행 사이에는 한국 과거사 청산이 반복적으로 좌초해온 간극이 있다. 그 간극을 메우려면 '제주4.3'이 과거사가 아니라 현재사라는 인식, 역사전쟁이 사실의 전쟁이 아니라 감정의 전쟁이라는 인식 위에서 정의를 재설계하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

강성현
역사사회학자
성공회대학교사회융합학부 사회학전공 교수
평화월딩연구소 소장
전 동아시아연구소 소장
'황해문화' 편집위원
한국냉전학회 이사
5.18학회 이사
정의기억연대 이사
성평등가족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지원 및 기념사업 심의위원회 위원
국방부 민관군 합동특별자문위원회 전 위원
일본군 '위안부' 연구회 전 회장
연구 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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