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불문율 깨졌다”…이스라엘·이란 핵 치킨게임 [특파원 리포트]

김개형 2026. 4. 1.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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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부셰르 원자력발전소 원자로 건물 (AP 연합 2010년)


" 이란과 합의가 안 되면 이란을 초토화하겠다"

트럼프 대통령이 또 이란에 최후통첩을 던졌습니다. 자신이 설정한 합의 시한인 오는 6일을 앞두고 이란에 합의를 종용하며 강력한 압박에 나선 겁니다.

"이란과 합의가 안 되면 발전소뿐 아니라 석유 시설과 하르그섬, 담수화 시설 등 중요 시설을 파괴하겠다"며 구체적인 공격 목표도 지목했습니다.

그가 지목한 발전소에는 현재 가동 중인 이란의 부셰르 원전이 포함돼 있습니다.

‘가동 중인 원전은 건드리지 않는다’는 전쟁의 불문율은 이미 깨졌습니다. 이스라엘은 열흘 새 세 차례, 이란에서 유일하게 가동 중인 부셰르 원전을 타격했습니다. 미국·이스라엘-이란 전쟁 발발 이전까지만 해도 ‘가동 중 원전 타격’은 전문가들의 워게임 시나리오 속에나 존재하던 개념이었습니다.

국제사회가 우려의 목소리를 내자 이스라엘은 ‘정밀 타격’으로 위험성을 낮췄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IAEA(국제원자력기구)는 “군사적 정밀함이 핵 안전을 보장하지 않는다”고 반박했습니다.

이번 공격은 단순한 군사 충돌을 넘어, 핵 시설을 둘러싼 국제 규범 자체를 흔드는 사건입니다.

이란 부셰르 원전 인근 해군 시설이 지난 3월 17일 이스라엘 공격으로 피해 본 위성 사진 (로이터 연합)


■ 이란의 부셰르 원전 가동 중 3차례 폭격당해

현지 시각 지난달 27일 밤 11시 40분. 이란 남부 부셰르주 해안 마을 주민들은 강한 폭발음과 창문이 흔들리는 진동에 긴장했습니다. 이란 국영 IRNA 통신이 “부셰르 원전 인근에서 폭발음이 들렸다”고 보도했고, 이스라엘군(IDF)도 원전 공습을 인정했습니다.

IAEA는 폭격 직후 성명을 발표하며, 깊은 우려를 표했습니다.

IAEA 성명 (3월 27일)

"부셰르 원전이 대량의 핵물질을 보유하고 가동 중임을 감안할 때,
원전 시설에 대한 피해는 이란은 물론 주변 지역에 영향을 미치는
중대한 방사능 사고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 "원전 외부 전원 끊기면 대재앙"

이스라엘이 반복 공격한 부셰르 1호기는 러시아가 설계한 가압경수로(VVER-1000) 시스템을 사용합니다. 가압경수로는 냉각수가 끊기면 핵분열 반응이 자동으로 억제되도록 설계돼 있습니다. 또 약 1.2미터 두께의 이중 철근 콘크리트 격납 구조를 갖추고 있어 폭격으로 인한 즉각적인 대폭발 가능성은 낮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 의견입니다. IAEA도 “현재 원자로 본체의 물리적 무결성이 유지되고 있으며, 외부 방사능 수치도 정상 범위”라고 밝혔습니다.

전문가들이 우려하는 대목은 직격이 아닙니다.

폭격으로 인근 변전소나 송전선이 파괴돼 원전으로 들어오는 전기가 끊기는 사태, 이른바 ‘외부 전원 상실(SBO)’을 우려합니다. 원전 내부에 SBO를 대비한 비상 전원(주로 디젤 기반)이 있지만 원전이 폭격받는 상황을 고려하면 지속성을 담보하기 쉽지 않습니다.

핵반응이 멈춰도 핵연료봉에서는 열이 계속 방출됩니다. 이 열을 식히는 냉각 펌프는 전기로 작동하는데, 폭격으로 전기가 차단돼 냉각이 멈추면 연료봉이 열을 견디지 못하고 녹아내립니다.
원자로 내부가 통제 불능 상태에 빠지게 됩니다. 바로 노심 용융(Meltdown), 2011년 후쿠시마 원전에서 벌어졌던 일입니다.

사용후핵연료 저장조도 취약점으로 거론됩니다. 이 시설은 원자로 격납 건물 수준의 방호를 갖추지 않는 경우가 많아, 냉각수 공급이 끊기면 방사성 물질이 대기로 방출될 위험이 있습니다.

3월 21일 이스라엘 디모나 핵 연구센터를 겨냥한 이란 미사일이 인근 주거지를 타격한 뒤 구급대원이 구조 작업을 벌이고 있다. (AFP/연합)


■ '눈에는 눈' 이란의 보복 공격

이란은 ‘눈에는 눈’을 외치며 보복의 수위를 끌어올렸습니다. 이란은 이스라엘 핵심 핵시설인 시몬 페레스 네게브 핵연구소를 겨냥해 탄도미사일을 발사했습니다. 미사일은 이스라엘의 방공망을 뚫고 디모나 등을 타격해 최소 100명이 다쳤습니다. 이스라엘이 이란의 나탄즈 핵시설 공격에 이어 가동 중인 원전까지 폭격하고 나서자, 이란도 이스라엘의 핵시설을 겨냥해 맞대응에 나선 겁니다. 이란은 아랍에미리트의 바라카 원전도 공격 목록에 올렸습니다. 바라카 원전도 현재 가동 중인 시설입니다.

‘핵시설에는 핵시설로’ 이스라엘과 이란이 '핵 치킨게임'을 벌이고 있는 겁니다.

■미사일은 막아도 방사능은 못 막는다

부셰르 원전에서 아랍에미리트·카타르·바레인 해안까지의 직선거리는 약 200~500킬로미터입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거리보다 짧은 곳이 대부분입니다.

유럽 핵 안전 연구 기관들의 대기 확산 모델에 따르면 방사성 세슘(Cs-137)은 사고 규모와 기상 조건에 따라 수 시간에서 수십 시간 내 페르시아만 일대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아랍에미리트·카타르·바레인 등 GCC 국가들이 식수의 90% 이상을 해수 담수화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방사성 물질이 해수로 유입될 경우 담수화 설비 운영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사우디도 영향권에 포함될 수 있는 만큼 걸프협력회의 국가 6천만 명의 식수가 위협받고 있습니다.

탄도미사일은 방공망으로 요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류를 타고 바다와 국경을 넘는 방사성 낙진은 어떤 군사 시스템으로도 차단할 수 없습니다.

IAEA는 현재까지 방사능 유출은 발생하지 않았으며 부셰르 외부 방사능 수치도 정상 범위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도 “핵사고 위험을 피하기 위한 최대한의 자제”를 촉구했습니다.

라파엘 그로시 IAEA 사무총장(왼쪽에서 2번째)이 자포리자 원전을 점검하고 있다. (EPA/연합)


■ IAEA "원전은 공격받지 말아야 한다"

가동 중인 원전을 전쟁 중 공격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우크라이나 전쟁 초기 자포리자 원전이 외부 전력망과 완전히 차단돼 핵 안전이 치명적 위기를 맞았습니다. 원전 내부에 있던 디젤 비상 발전기가 가동돼 최악의 사태로 진행되지는 않았습니다.

IAEA는 자포리자 원전 사태 이후 7가지 원칙을 정립했습니다. 첫번째 원칙이 '시설의 물리적 건전성 유지'입니다. 즉 '원전은 공격받지 말아야 한다'입니다.

이스라엘은 가동 중인 원전을 공격하지 말라는 금기를 깼습니다. 이란도 자국의 에너지 인프라가 공격받으면 걸프국가의 원전을 공격하겠다고 위협했습니다. 이스라엘과 이란이 ‘핵 치킨게임’이 벌이고 있는 겁니다. 이번 핵 치킨게임이 더 위험한 건 이스라엘과 이란이 '눈에는 눈'으로 맞서면서 서로 긴장을 증폭시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로시 IAEA 사무총장은 “정밀 타격이라는 군사적 자신감 속에서 한 번 무너진 금기선은 복구하기 어렵다”고 경고했습니다.

전쟁은 언젠가 끝나겠지만, 한 번 무너진 금기는 되돌릴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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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개형 기자 (thenews@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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