폰은 10분, 지점은 1시간...은행 ETF 가입해보니

신중섭 기자 2026. 4. 1.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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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상품인데 지점 가입하면 설명 지옥
ISA 정기예금 가입에도 40분 이상
직원이 답안 제시하거나 대신해주기도
불완전판매 방지 취지 퇴색 우려
상품 설명 명확히하되 간소화를
서울 시내에 설치된 은행 ATM기. 연합뉴스

“설명을 모두 드리면 40분 이상 걸리는데 시간이 괜찮으실까요?”

31일 오전 서울의 A은행 영업점. 반도체 상장지수펀드(ETF) 신탁 상품 가입을 요청하자 창구 직원은 가입 절차가 길다는 점을 짚으며 소요 시간부터 안내했다.

ETF 상품은 최근 증시 호황에 힘입어 은행권이 판매에 열을 올리고 있는 상품 중 하나다. 4대 은행의 ETF 판매액은 지난해 11월 3조 5299억 원에서 이달에는 30일 기준 6조 6871억 원까지 증가하며 높은 수준을 이어가고 있다.

인기 몰이 중인 ETF 가입 과정은 예상보다 더 길고 복잡했다. 투자자 성향 분석을 시작으로 상품 구조 설명, 위험 고지, 녹취, 자필 서명과 확인 절차가 이어졌고 중간중간 비슷한 취지의 질문이 반복됐다. 가입 절차가 시작된 지 30분도 채 되지 않았지만 상품설명서에 나온 내용들을 일일이 확인하는 것 자체가 버거웠다. 창구 직원 역시 고객의 불편함을 덜어주려는 듯 빠른 속도로 설명을 이어갔다.

특히 ETF와 같은 고난도 상품 및 적정성 원칙 대상 상품의 경우 나이와 무관하게 투자자 성향 분석 결과 안내에 대한 녹취까지 의무적으로 진행해야 해 시간이 더 늘어났다. 상품 가입이 완료된 후 시계를 확인했을 때는 당초 안내받은 시간을 훌쩍 넘긴 1시간 10분이 지나 있었다.

B은행 영업점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국내 주식 ETF 상품에 가입한 후 분산투자 차원에서 개인형퇴직연금(IRP)으로 미국 주식에 투자하는 경우가 많다는 직원 추천에 따라 가입을 진행한 결과 각각 30분씩 총 1시간가량이 소요됐다. ETF에 가입하면서 이미 투자 성향 분석을 했지만 IRP 가입 시 이를 반복해야 하는 점이 번거로웠다. 문항과 선택지가 같지만 가입하는 상품 유형이 다르기 때문에 추가로 진행해야 한다는 것이 영업점 직원의 설명이었다.

반면 비대면 가입은 상황이 전혀 달랐다. 직원의 구두 안내가 없으니 투자 성향 분석 단계부터 1분 안에 끝났다. 상품 설명의 경우 의무적으로 영상통화를 진행해야 하는데 이를 포함하더라도 전체 가입 과정이 10분 안에 마무리됐다. 퇴직연금을 통한 ETF 가입은 모바일의 경우 4분이면 가능했다. 제대로 읽어보지도 않고 스크롤만 넘기면 되는 식이다.

금융 소비자보호가 비대칭적으로 이뤄지면서 창구 가입은 지나치게 어렵고 모바일은 충분한 확인도 없이 가입이 가능해 제대로 된 고객 보호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시장에서는 보이스피싱 예방도 좋지만 지점에서의 고난도 투자 상품과 보험 가입, 고액 송금은 과도하게 소비자보호가 이뤄지고 있어 손을 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서울경제신문이 4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의 ETF 대면 가입 과정을 직접 체험한 결과 대부분 1시간 안팎의 시간이 소요됐다. 통계청장을 지낸 이인실 전 서강대 경제대학원 교수는 “소비자보호 규제가 너무 비대칭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며 “소비자보호가 지나치다 보니 과도한 제도적 비용을 초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은행 창구 방문 시 직원이 고객의 스마트폰을 건네받아 대신 가입해주거나 ‘모범 답안’을 알려주는 식의 영업까지 이뤄지고 있다. 투자성향 분석 결과가 안정형·안정추구형 등으로 나오면 고객이 원해도 ETF 등 고위험 상품을 추천할 수 없기 때문이다. C은행 영업점에서 반도체 ETF 상품 가입을 위해 투자 성향 분석을 진행하던 중 ‘손실 감내 수준’ 항목에서 ‘50% 이내 손실 감내 가능’을 선택하자 직원이 “전액 손실 감내 가능을 선택해야 공격투자형으로 나온다”고 안내했다. 반도체 ETF 상품은 2등급인 ‘높은 위험’으로 ‘공격투자형’ 고객에게만 판매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D은행 영업점에서도 직원이 고객의 성향 분석 진행 과정을 지켜보며 “가입을 원하시는 상품은 지금보다 더 공격적으로 응답하셔야 한다”고 설명했다.

상담 시간을 줄이기 위해 성향 분석만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으로 진행하는 사례도 있었다. 한 은행 창구에서는 직원이 “현장에서 성향 분석을 하면 10분 이상 소요되는데 모바일로는 3분 정도면 끝난다”며 모바일 진행을 권유했다.

투자 성향 분석은 고객에게 적합한 상품을 권유해 불완전판매를 막기 위한 장치이지만 절차에 따른 불편이 커지면서 취지가 퇴색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고객이 스스로 판단해 응답해야 할 항목에 직원이 개입하는 관행이 굳어질 경우 형식상 절차만 갖춘 채 고위험 상품 판매를 유도하는 불완전판매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심지어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를 통해 투자 상품이 아닌 정기예금에 가입하는 과정에서도 ‘원금 손실 가능성’ 관련 안내가 반복적으로 이뤄지지고 있었다. ISA가 투자형 계좌로 분류되다 보니 투자 상품이 아닌 예금 상품만 가입하더라도 원금이 보장될 수 없다는 설명을 들어야 하는 것이다.

실제 기자가 C은행 영업점에서 ISA 가입을 진행한 결과 투자 성향 분석상 ‘위험중립형’이 나와 정기예금 외에는 다른 투자 상품에 가입할 수 없었음에도 직원은 원금 손실 발생 가능성을 거듭 확인했고 이에 대한 서명도 수차례 진행해야 했다. 은행권의 한 관계자는 “나중에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투자 상품 추가 가입이 가능하다는 이유로 가입 단계에서부터 위험 고지가 이뤄지는데 정기예금만 가입하는 고객 입장에서는 불안에 떨 수밖에 없다”며 “비대면으로 투자 상품에 추가 가입할 때 관련 내용을 고지하는 등 개선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시장에서는 지금 같은 상황이 지속하면 고령층과 취약 계층의 금융 접근성이 낮아지고 자산수익률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얘기가 나온다. 특히 정치권과 당국의 의도와 달리 은행들이 고객들에게 디지털 수단을 통한 가입을 유도하게 해 실질적인 소비자보호와 피해 보상이 안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전문가들은 대면 상품 가입 시 핵심 내용을 위주로 간소화하고 비대면 가입 과정에서의 소비자보호를 동시에 강화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최창규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제3 기관에서 검증을 거쳐 금융 상품 가입에 대한 설명을 더 간소화하는 방향으로 검증하고 표준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 역시 “고객이 스스로 가입 의사를 갖고 방문한 경우에는 절차를 일부 간소화해 시간을 줄이는 방식의 보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신중섭 기자 jseop@sedaily.com도혜원 기자 dohye1@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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