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학도에서 프로당구 스타로…정수빈 "당구는 수학적이죠"
스타성에 기량까지 겸비한 차세대 스타 "애버리지 1.3이 최종 목표"

(서울=연합뉴스) 이대호 기자 = 아무리 사이좋은 '잉꼬 커플'이라도 한쪽에서 다른 한쪽을 가르쳐주기 시작하면 아웅다웅하기 일쑤다.
운전도 그렇고, 당구도 그렇다.
여자 프로당구(LPBA)의 떠오르는 스타 정수빈(26·NH 농협카드)이 남자친구에게 당구를 처음 배울 때도 그랬다.
정수빈과 남자 프로당구(PBA) 선수 한지승(28·웰컴저축은행)은 공개 연애 중인 당구계 공인 커플이다.
정수빈은 지난달 31일 경기도 고양시 자이언트당구클럽에서 진행한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저희가 처음 만나고 1년 반 동안 거의 안 싸웠는데, 제가 처음 당구를 치고 나서부터는 조금씩 언성을 높일 때가 있더라"며 웃었다.
이어 "지금은 안 싸운다. 한지승 프로도 어떻게 말하는 게 좋을지 터득한 것 같고, 저도 이제는 내성이 생겼다"고 덧붙였다.
2025-2026시즌 처음으로 결승 무대까지 밟으며 차세대 스타로 성장 중인 정수빈은 당구와 사랑에 빠지게 된 계기와 성장 비결, 앞으로 목표까지 차분하게 밝혔다.

큐도 안 잡아본 평범한 통계학도, 당구와 운명적 만남
정수빈은 당구와 전혀 인연이 없는 평범한 대학생이었다.
숙명여대 통계학과에 재학 중이던 스물한 살 무렵, 친한 친구의 부탁으로 경기도 하남시의 한 당구장에서 대타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 것이 당구와의 첫 만남이었다.
정수빈은 "당시만 해도 큐를 한 번도 잡아본 적이 없었고, 당구는 완전한 관심 밖의 분야였다"고 돌아봤다.
당구장 아르바이트를 거치며 우연히 당구계에 발을 들인 정수빈은 1년 반이 지난 스물세 살 때 본격적으로 큐를 잡기 시작했다.
아르바이트한 당구장에서 만났던 남자친구 한지승이 연습할 때 곁에서 시간을 보내다 "나도 좀 쳐볼까"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 것이 계기가 됐다.
![정수빈의 경기 장면 [PBA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4/01/yonhap/20260401070156799bpsm.jpg)
그는 "처음에는 남들 앞에서 당구를 치는 것이 허우적거리는 것 같아서 소심한 성격 탓에 부끄럽기도 했지만, 막상 한 게임을 치러보니 순식간에 빠졌다"고 돌아봤다.
그렇게 당구에 흥미를 붙인 정수빈은 큐를 잡은 지 반년 만에 프로 선수가 되겠다고 결심했다.
통계학이라는 전공과 당구의 직접적인 연관성은 적지만, 정수빈은 거기에서도 흥미로운 연결 고리를 찾았다.
정수빈은 "당구에서 시스템적인 부분을 스스로 만들고 찾아가는 과정이 수리적이기도 하고, 이과적이기도 하다"며 "프로당구의 방대한 데이터들도 통계학도 출신이다 보니 남들보다 친숙하게 다가왔다"고 설명했다.
2022년 프로 무대에 데뷔한 정수빈은 첫 시즌부터 16강에 진출하며 남다른 잠재력을 뽐냈다.
남들보다 짧은 구력을 극복하기 위해 하나의 배치만 반복하기보다는 최대한 다양한 공을 접해보며 압도적인 연습량을 소화한 것이 빠른 성장의 원동력이 됐다.

데뷔 첫 결승 진출과 준우승…"아쉬움 떨치고 부족한 것 인정했다"
2025-2026시즌은 정수빈의 잠재력이 마침내 폭발한 '커리어 하이' 시즌이었다.
웰컴저축은행 LPBA 챔피언십에서 생애 처음으로 결승 무대를 밟으며 준우승을 차지한 것이다.
시즌 랭킹 포인트 역시 2만3천점으로 데뷔 후 최초로 '톱 10'에 진입했고, 연말 PBA 골든큐 어워즈에서는 차세대 에이스에게 주어지는 영스타상의 주인공이 됐다.
임경진(하이원리조트)과의 결승전 패배의 아쉬움은 컸지만, 정수빈은 이를 성장의 자양분으로 삼았다.
정수빈은 "결승전에서 제 실력을 다 보여주지 못해 아쉬웠다"면서도 "하지만 내가 부족해서 졌다고 스스로 인정하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고, 앞으로 연습해야 할 공들이 더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고 덤덤하게 말했다.
특히 '당구 여제' 김가영(하나카드)을 상대로 통산 3승 1패의 우위를 점하며 강한 면모를 보인 것은 정수빈의 경쟁력을 증명하는 대목이다.
![포즈 취하는 정수빈 (서울=연합뉴스) 정수빈 당구 선수가 27일 경기 군포시 AK플라자 금정점에서 열린 아에르웍스 브랜드 론칭 행사에서 당구공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5.11.27 [아에르웍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photo@yna.co.kr](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4/01/yonhap/20260401070157194hvfe.jpg)
비록 최근 제주도에서 열린 월드챔피언십 16강에서는 김가영에게 패했지만, 여제의 자리를 위협할 가장 강력한 후보가 바로 정수빈이다.
정수빈은 김가영에게 강한 면모를 보이는 비결로 "존경하고 인정하는 강한 선수에게는 오히려 큐가 매섭게 나가지만,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압박감을 가지는 선수에게는 부담 탓인지 약해지는 경향이 있다"고 분석했다.
체력과 집중력 유지는 새로운 과제로 떠올랐다.
정수빈은 "저녁이나 밤 시간대에 열리는 경기에서 집중력이 다소 흐트러지는 것을 느꼈다"며 "앞으로는 경기 시간대에 맞춘 나만의 루틴을 세밀하게 구상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경기 내내 표정 변화가 없는 특유의 '포커페이스'에 대해서는 의도한 바가 아니라고 손사래를 쳤다.
정수빈은 "원래 성격 자체가 감정 기복이 적을 뿐"이라며 "팬들의 기대와 응원이 늘어나는 것이 부담스럽기보다는 오히려 더 잘하고 싶다는 강한 동기부여가 된다"고 성숙한 태도를 보였다.

기본기로 다시 무장하는 새 시즌, "최종 목표는 애버리지 1.3대"
정수빈은 다가오는 새 시즌을 위해 담금질에 들어간다.
비시즌 훈련의 핵심은 '기본기'와 '수비'다.
지금까지는 공격적인 샷을 구사했다면, 이제는 세부적인 반복 훈련을 통해 시합 중 나오는 잔 실수를 철저히 줄이는 게 목표다.
정수빈은 "남들보다 구력이 짧다 보니 시합 때 기본기를 놓치는 아쉬움이 컸다"며 "최근에는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기본기를 다잡고 있다"고 밝혔다.
연습 벌레로 소문난 정수빈은 대회가 없는 날에도 최소 3∼4시간, 많게는 10시간씩 큐를 잡는다.
대회를 일주일 앞둔 시점부터는 단 하루의 휴식도 없이 훈련에 매진한다.
당구 외에는 취미조차 없다고 말한 정수빈은 "아직 제가 정점을 못 찍었기 때문에 찍기 전까지는 몰두할 다른 것을 만들고 싶지 않다"고 했다.
정수빈이 지향하는 당구는 조재호(NH농협카드)처럼 물 흐르듯 쉽게 경기를 풀어가는 스타일이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상대가 껄끄러워하는 '까다로운 선수'가 되겠다는 각오도 다졌다.
![프로당구 산체스·김가영, 남녀 MVP 수상…정수빈 영스타상 (서울=연합뉴스) 이대호 기자 = '스페인 3쿠션 전설' 다니엘 산체스(웰컴저축은행)와 '당구여제' 김가영(하나카드)이 2025-2026시즌 프로당구를 가장 빛낸 최우수선수(MVP)로 우뚝 섰다.
프로당구협회(PBA)는 17일 서울 광진구 그랜드워커힐 비스타홀에서 열린 '하나카드 PBA 골든큐 어워즈 2026'에서 산체스와 김가영이 각각 남녀부 대상을 차지했다고 밝혔다. 영스타상을 받은 정수빈. 2026.3.17 [PBA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4/01/yonhap/20260401070157522eqem.jpg)
정수빈은 "제 경기를 복기해 보면 수비보다는 공격에 치중하다 보니 상대에게 좋은 공을 많이 열어주더라"며 "다른 선수들이 저를 상대할 때 까다롭다고 느끼게 하려면 수비적인 부분도 깊이 있게 연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LPBA 전체의 상향 평준화 속에서 정수빈의 시선은 더 높은 곳을 향한다.
과거에는 0.9대 애버리지 선수도 드물었지만, 이제는 많은 선수가 그 벽을 넘어선다.
정수빈은 "우선 다음 시즌에는 경기 애버리지를 1.0에서 1.1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이 1차 목표"라며 "최종적으로는 현재 정상에 있는 김가영 프로님처럼 1.2에서 1.3대 애버리지를 치는 선수가 되고 싶다"고 당찬 포부를 밝혔다.
팬들을 향한 진심 어린 감사도 잊지 않았다. 정수빈은 "한 50대 남성 팬분께서는 64강 첫 경기부터 이번 제주도 월드챔피언십까지 매번 찾아와 매너 있게 응원해 주셨다. 정말 감동했다"며 "많은 분이 지난 시즌을 커리어 하이라고 불러주시지만, 저는 아직 정점을 찍지 않았다. 응원해 주시는 팬들의 힘에 부응할 수 있도록 더 단단해져서 돌아오겠다"고 굳게 약속했다.
4b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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