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 까던 이주노동자 안셀 씨는 왜 도망갔을까
지난해 여름, 필리핀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회계 관련 업무를 하던 안셀 씨(가명)는 일곱 살 난 딸과 어머니를 두고 한국행을 결심했다. 돈을 벌고 싶었다. 한국에서 번 돈으로 필리핀에서 가족들과 살 집을 사는 꿈을 꾸었다. 살던 도시의 시장이 페이스북에 올린 홍보 글을 본 게 직접적 계기였다.
안셀 씨가 본 홍보 글은 필리핀 라구나주 나그칼란시와 전라남도 고흥군이 협약한 ‘외국인 계절근로자’ 모집 안내였다. 외국인 계절근로자 사업은 단기간 일손이 필요한 농어촌에 최대 8개월간 외국인 계절근로자를 고용하는 프로그램이다. 관할 기관인 법무부가 이주노동자 비자 관리를 하고, 일손이 필요한 농어촌 기초지방자치단체가 인력을 보내는 필리핀·베트남 등의 특정 도시와 업무협약(MOU)을 맺는 형태로 운영된다.
인구 6만여 명인 필리핀 소도시 나그칼란시와 협약을 맺은 고흥군에는 지난해 1000명이 넘는 계절근로자가 입국했다. 한국 법정 최저임금 수준으로 돈을 벌 수 있다는 소식에 수많은 지원자가 몰렸다. 안셀 씨도 지원해 여러 차례의 면접을 거쳐 선발됐다. 지난해 11월, 안셀 씨를 포함해 총 79명이 전라남도 고흥군으로 향했다. 떠나는 순간까지 안셀 씨는 시장이 직접 약속한 제도를 통해 단기간에 많은 돈을 벌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한국에 입국한 지 불과 4개월 뒤인 2026년 3월4일, 안셀 씨는 일터가 아닌 고흥군청 앞 기자회견장에 섰다. 이날 그와 함께 선 지역 시민사회단체들은 ‘임금 착취, 최저임금법 위반, 강제근로 금지 위반, 중간착취 및 전차금 상계 금지 위반, 부당한 숙박비 공제’가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이렇게 외쳤다. “고흥군의 외국인 계절근로자 노동착취를 수사하라!”

휴지 조각 된 ‘표준근로계약서’
돌이켜보면, 시작부터 이상했다. 안셀 씨는 한국에 오기 전 ‘표준근로계약서’를 작성했다. 시청에서 진행한 첫 면접을 제외하고, 이후 입국 절차는 4명 브로커(중개업자) 일행 주도로 이뤄졌다. 안셀 씨는 브로커 사무실에서 사용자 이름만 다를 뿐 내용은 같은 근로계약서 2부를 썼다. 계약기간은 2025년 11월부터 2026년 7월까지 총 8개월. 근무조건은 오전 7시부터 오후 5시까지, 휴게 시간 2시간 제외 하루 총 8시간씩 일하고, 2025년 최저임금 수준인 209만6270원을 받는 것이었다. 배정된 업무는 ‘굴 까기’였다.
지난해 11월, 브로커들과 함께 한국에 입국한 안셀 씨가 처음 배치된 곳은 전라남도 고흥군 동일면의 한 굴 양식 사업장이었다. 나로호를 쏘아 올린 나로우주센터에서 차로 한 시간 떨어진 섬이다. 이곳에서 계약서 내용은 지켜지지 않았다. 근무는 새벽 4시30분에 시작해 오후 4시30분까지 이어졌다. 휴식 시간을 제외해도 하루 9시간30분가량 일했다. 한국인 노동자를 포함해 20여 명이 함께 굴을 깠다.
안셀 씨가 14일간 일하고 받은 첫 급여는 23만5671원. 사업주는 브로커에게 113만원을 지급했다고 했으나, 본인에게는 숙식비와 세금, 항공료 등 각종 비용이 공제된 채 지급됐다. 계약서대로라면 사업주가 노동자의 통장에 직접 입금해야 하지만, 모든 월급은 브로커가 직접 현금으로 지급했다.
안셀 씨를 포함한 필리핀 노동자 5명이 근로계약과 다른 업무 환경에 불만을 제기하자, 브로커는 이들을 고흥군 영남면에 있는 사도마을로 이동시켰다. 사도마을에는 브로커가 관리하는 ‘숙소’가 여러 채 있었다. 집 한 채에 10여 명이 머물렀다. 새벽마다 90여 명이 있는 카카오톡 채팅방 ‘사도 그룹(SADO GROUP)’에 브로커가 근무 스케줄을 올렸다. 안셀 씨는 종종 계약서에 없는 다른 굴 양식장에 투입됐다. 새벽 2시부터 오후 2시까지 일하는 날도 있었다.
지난해 12월부터 두 달 반 동안은 고흥군 포두면의 굴 양식장에서 일했다. 이곳의 근무시간은 새벽 3시부터 오후 4시. 간식 시간을 포함해 총 4번 휴식 시간이 주어졌다. 휴일은 일정치 않았다. 주말을 모두 쉴 때도, 하루도 쉬지 못할 때도 있었다.

가장 큰 문제는 임금 산정 방식이었다. ‘월급’이나 ‘일당’이 아닌, 껍데기를 제거한 굴의 무게만큼 대가를 받는 이른바 ‘돈내기’ 방식이 외국인 계절노동자들에게도 적용됐다. 지난해 12월 내 20일간 안셀 씨가 깐 굴은 총 447.5㎏. ㎏당 단가 3150원을 적용해 120만6025원을 받았다. 1월에는 한 달 동안 629㎏을 깠지만, 단가가 3000원으로 떨어졌고, 총 144만2000원을 받았다. 모두 숙박비 30만원과 세금 6만5000원 등을 공제하고 브로커가 지급한 금액이다.
2월 중순, ‘굴 시즌’이 끝나자 안셀 씨는 더 이상 포두면에서 일할 수 없었다. 다시 브로커의 차량에 실려 사도마을 숙소로 돌아왔다. 대부분 양식장에 일이 없었고, 가끔은 굴 양식장이 아닌 ‘유자 공장’ 등에 투입돼 새벽 5시 반부터 오후 5시까지 일했다. 모든 급여는 브로커의 손을 거쳐야만 받을 수 있었다.
노동환경보다 더 괴롭힌 건 브로커의 통제다. 안셀 씨는 숙소에서 마음대로 밖에 나갈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사도마을에 있는 필리핀 노동자들의 숙소에는 매일 밤 브로커들이 와서 인원을 체크했다고 말했다. 그는 두 차례 혼자 외출했다가 브로커에게 “한 번만 더 발각되면 귀국 조치하겠다”라는 경고를 들었다.
〈시사IN〉이 확인한 결과, 실제로 안셀 씨가 마지막으로 머무른 사도마을 숙소 거실과 현관에 CCTV가 설치돼 있었다. 브로커 측은 “치안이 좋지 않아 보안용으로 설치됐을 뿐 감시는 없었다”라고 주장했지만 감시당하는 이들은 그런 명분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안셀 씨는 이 같은 환경에 대해 “수용할 수 있는 한도가 넘었다고 느꼈다. 스스로가 너무 무기력하게 느껴졌다”라고 말했다.
인내심이 바닥난 순간, 한국에 입국하기 전 브로커가 단단히 일러두었던 한마디를 떠올렸다. 한 필리핀 유튜버를 가리키며 ‘한국 인권단체와 연결돼 있는 사람이니, 괜히 분란 일으키고 싶지 않으면 연락하지 말라’고 당부한 말이었다. 안셀 씨는 이 필리핀 유튜버에게 구조 요청을 보냈고, 그 내용이 전남이주노동자인권네트워크에 닿아, 지난 2월24일 ‘구조’될 수 있었다. 그의 법률 대리를 맡은 김수아 변호사(공익변호사와 함께하는 동행)는 “얼마나 급했는지 슬리퍼를 끌고 뛰쳐나왔더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안셀 씨가 바라는 것은 하나다. ‘브로커가 없는 환경에서 일하고 싶다’는 것. 3월4일, 전남이주노동자인권네트워크는 고흥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여러 명의 불법 브로커가 ‘현대판 노예주’ 역할을 수행했다”라며 계절노동자 운영 실태 전수조사를 요구했다.
파문이 일자 고흥군은 “외국인 계절근로자 인권침해 의혹에 강력히 대응하겠다. 근로기준법 위반이 확인된 사업장은 배정을 즉시 취소하겠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법무부 역시 “이번 사건과 관련된 어가 및 불법 브로커에 대해 철저히 조사한 후 법에 따라 강력히 처벌할 예정”이라는 입장을 냈다. 반면 브로커 측은 “인권침해나 급여 착취는 없었으며, 고흥군도 모든 상황을 알고 있었다”라고 반박했다. 어찌된 일일까? 〈시사IN〉이 취재한 결과 안셀 씨가 겪은 일은 특정 브로커만의 문제도, 고흥군만의 문제도 아니었다. 외국인 계절근로자 제도 전반에 구조적 결함이 존재했다.
고흥·전다현 기자 allhyeo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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