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광장과 경복궁 사이에서…‘광화문 현판’ 논란 유감 [최수문 선임기자의 문화수도에서]
변화가 필요하지만 한글 현판 추가로는 의문점 있어
국가 정체성 위한 대안 필요…동·서십자각 복원도

중국 베이징에는 천안문(톈안먼) 광장이 있다. 천안문이 있어 천안문 광장이라고 부른다. 천안문을 찬찬히 살펴보면 보통 ‘대문’에 있어야 하지만 없는 것이 있는 데 바로 현판이다. 우리도 사진이나 영상으로 익숙하다. 천안문 전면을 보면 맨 위에 중화인민공화국 국가휘장이 있고 아래에 마오쩌둥 그림이 걸려있다. 마오 그림 옆으로는 ‘중화인민공화국만세’와 ‘세계인민대단결만세’가 중국어 간자체로 적혀있다. 즉 천안문에는 현판이 없다. 원래 국가휘장 자리에 ‘천안문(天安門)’이라는 글자가 있었다. 공산화된 직후인 1950년 ‘천안문’ 현판을 떼 내고 그 자리에 지금처럼 국가휘장을 대신 붙였다고 한다.
천안문 광장도 1950년대 이후 대대적인 개조를 겪는다. 왼쪽으로 인민대회당(국회), 오른쪽에는 중국국가박물관이 각각 세워진다. 광장 중앙에는 인민영웅기념비, 아래로는 마오주석기념당이 있다. 광장 주위로 있던 전통 건물은 모두 사라지고 공산주의 현대식 건물들로 가득 채워졌다. 그럼에도 천안문을 기준으로 나름대로 거대한 질서와 통일성이 있음을 부정하긴 힘들다. 현재 모습의 천안문에서 현판이 꼭 필요하다고 주장하기도 힘들다.
중국 이야기를 이렇게 길게 하는 것은 궁궐을 중심에 두고 광장을 가진 국가로는 우리나라와 중국이 대표적이기 때문이다. 중국 천안문 광장이 천안문을 기준으로 했다면, 우리의 광화문 광장은 광화문을 중심에 두고 있다. 그럼 광화문 광장과 광화문의 상황은 어떨까.

최근 광화문 현판을 둘러싸고 논란이 생겼다.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지난 1월 국무회의에서 이재명 대통령에게 광화문 한글 현판을 추가로 달겠다고 밝힌 후부터다. 즉 현재 한자 현판이 있는데 여기에 한글 현판을 하나 더 붙이겠다는 것이다. 광화문 현판이 한글과 한자 2개로 된다는 의미다. 뜬금없는 이야기는 아니다. 앞서 윤석열 정부 때인 2024년 유인촌 전 문체부 장관이 광화문 현판을, 한자 현판을 아예 한글 현판으로 바꾸겠다고 나서기도 했다.
지난 2010년, 그전까지 박정희 전 대통령의 글씨인 한글 현판이 조선 고종 때의 한자 현판으로 바뀐 후부터 한글 현판을 다시 달아야 한다는 주장이 한글 관련 단체 등에서 꾸준히 나왔다.
그렇다면, 1~2년 차이를 두고 정부가, 보수 정부의 문체부 장관과 진보 정부의 문체부 장관이 모두 광화문 한글 현판에 대해 인식하는 것은 사실 현재 광화문에 뭔가 문제가, 적어도 아쉬움이 있다는 의미도 된다. 변화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최휘영 장관의 언급 이후 두 달여 만인 3월 31일 ‘광화문 현판 토론회’라는 이름으로 첫 공개 토론회가 광화문 광장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대한민국역사박물관 6층에서 열렸다. 한글 관련 단체 관계자, 문화유산(문화재) 관계자, 건축 전문가, 관광 전문가 등이 자리를 함께 했다.
토론회 상황은 새롭게 언급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일반의 예상대로였다. 한글 단체 측은 “광화문에 한글 현판을 다는 일은 국가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행위”라고 주장했다. 반면 문화유산 관계자는 “과거에 개입하지 말고, 과거가 당시 사회와 문화를 스스로 증언하도록 내버려 둬야 한다”고 반박했다.
즉 한글 현판 추가 반대 측의 논리는 “광화문은 경복궁의 일부이고 경복궁은 문화유산이다. 문화유산을 그대로 보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반면 찬성 측은 “광화문은 현재와 미래의 접점인 데 우리의 ‘한글’이라는 변화를 줘야 한다”는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광화문은 광화문 광장의 기준이다. 즉 광화문은 과거의 상징 경복궁의 일부가 맞지만 또 현재와 미래 광화문 광장의 일부이기도 하다. 조선 시대 궁궐 경복궁을 ‘문화유산’으로서 보존해야 하지만 광화문까지 그래야 할까. 그리고 만약 광화문이 바뀌어야 한다면, 그것은 어떤 형태가 돼야 할까.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한 건축 전문가의 언급도 되새길 만하다. 그는 현판이라는 것은 한자 문화권의 유물이라고 했다. 즉 현판은 우리나라나 중국, 일본, 베트남 정도에서만 있는 것이다. 모두 과거 한자를 사용한 국가다. 이에 반해 유럽에는 현판이라는 형식은 없다. 때문에 한글로 현판을 단다는 것은 그 자체로 어색하다. ‘門化光’이라는 한자 현판이면 됐지 ‘광화문’이라는 한글 현판까지 두는 것은 부자연스럽다. 광화문을 미래의 상징으로 내세우려면 다른 형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앞에서 말한 대로 중국은 천안문의 모습을 완전히 바꾸면서 천안문 광장을 새로운 시대(사회주의 중국)에 맞춰 개조했다. 아마 ‘天安門’(세로로 글자가 씌어 있었다)이라는 현판을 두고서는 새로운 시대가 어렵지 않나 하고 중국 공산당이 생각한 듯하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광화문 모습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 광화문은 해방후 변화를 많이 겪어왔지만 현재 복원 모습은 오히려 현판과 월대까지 포함해서 거의 전통 그대로다. 하지만 광화문이 마주한 광화문 광장과 광장 주위 모습은 전통과는 완전히 달라졌다.
광화문 광장의 조성 자체도 해방 후 현재까지의 혼란스러움을 반영한다. 광장 자체가 변화한 것을 포함해 여기에 이순신 동상이 놓여지고 한참 있다가 세종대왕 동상이 생겼다. 광장 좌우로는 정부종합청사(현 정부서울청사), 세종문화회관, 미국대사관, 박물관, 기업 빌딩 등이 우후죽순으로 들어섰다. 외국인 관광객을 포함해 수많은 사람들이 광화문 광장을 방문하고 광화문을 올려다 본다. 혹시나 과거와 현대, 첨단과 전통이 공존한다고 하면 그럴 듯하지만, 어수선한 것도 사실이다.

광화문은 경복궁의 얼굴이다. 하지만 광화문의 좌우 동십자각과 서십자각은 여전히 불완전한 채로 있다. (동십자각은 궁궐 벽과 떨어져 나왔고 서십자각은 아예 사라졌다) 동·서십자각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광화문 현판에만 집중하는 것도 논리적인 것은 아니다.
한자만 우리 글이 아닌가. 토론회에서 나온 이런 발언이 귀에 남는다. “다른 나라 글 한자가 아닌, 우리 한글 현판을 광화문에 붙여야 한다고 국가 정체성을 말하지만 현재 광장 주변을 가득 채우고 있는 영어는 어떻게 할 것인가”, “세종대왕 동상 너머로 보이는 광화문 한자 현판이 어색하다고 하는 데 얼마 전 어떤 가수는 세종대왕 뒤통수에 대고 영어 노래를 쏟아내지 않았나” 등의 이야기도 나왔다.

최수문 선임기자 chs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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