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 통행료 부과땐 유가 폭등… 이란은 年 150조원 챙겨

파리/원선우 특파원 2026. 4. 1. 0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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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척에 30억, 세계경제 어찌되나
11일 이란 호르무즈 해협 인근 걸프 해역에서 대기중인 화물선들. /로이터 연합뉴스

이란 의회가 30일(현지 시각) 호르무즈 해협 통행료 징수 관리안을 승인한 것은, 세계 원유의 20%가량이 통과하는 세계 에너지 교역의 관문을 본격 통제하며 아예 ‘돈줄’로 만들겠다는 의미다. 만약 이 안이 실제로 시행된다면 세계 경제에 큰 타격이 예상된다. 한국 정유사도 조(兆) 단위의 추가 비용 부담이 불가피해지면서 국내 유가와 산업 전반의 물가 폭등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나온다.

관리안은 미국과 이스라엘 국적·소유 선박의 통과를 전면 금지하는 조항을 명문화했다. 이란에 독자 제재를 가한 국가의 선박도 해협 접근을 막기로 했다. 통행료를 자국 화폐인 리알(rial)화로 징수한다는 점도 명시했다.

이란 반관영 타스님 통신은 통행료 징수로 연간 1000억달러(약 150조원)를 웃도는 수입이 발생할 것으로 추산했다. 전쟁 전 기준 하루 평균 140척의 선박이 해협을 통과했는데, 척당 200만달러(약 30억원) 통행료를 징수한다는 계산이다. 2024년 기준 이란 국내총생산의 20%가 넘는 금액이다. 현재 걸프 해역에 발이 묶인 상업 선박 약 3200척을 한꺼번에 풀어줘도 이란은 단번에 64억달러를 손에 쥘 수 있다.

이란·헤즈볼라 공격 받은 이스라엘 정유시설 30일 이스라엘 북부 하이파에서 이란발(發) 미사일을 요격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파편이 정유시설에 떨어지면서 불길이 치솟고 있다. 이란과 레바논 친이란 무장단체 헤즈볼라는 이스라엘의 주요 산업 시설에 미사일과 드론 공습을 이어가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한국이 한 해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수입하는 중동산 원유는 약 7억 배럴 수준으로, 유조선 최소 350척이 이 해협을 통과한다. 한국의 정유 4사가 부담해야 할 비용은 연간 7억달러(약 1조 500억원)에 이를 전망이다. 액화천연가스(LNG) 수송 통행료도 2억달러(약 3000억원)가 추가 발생할 것으로 추산된다. 에너지업계 관계자는 “통행세는 사실상 전량이 국내 휘발유·경유 가격에 반영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결국 산업 전반의 연쇄 물가 폭등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한다.

그래픽=조선디자인랩 김연주

관리안은 아직 정식 법률이 되지는 않았다. 이란 의회 본회의 투표와 헌법수호위원회 검토, 대통령 서명이라는 형식적 절차가 남아있다. 그러나 이란은 이미 비공식적으로 호르무즈 해협 통행료를 징수하고 있기에 정식 법제화는 시간 문제라는 관측이다.

이란은 ‘수에즈·파나마 운하에서도 통행료를 징수한다’는 논리를 편다. 실제 이집트는 수에즈 운하에서 월 8억달러 안팎을 거둬들인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호르무즈는 인공 운하가 아닌 자연 해협이어서 같은 논리를 적용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168개국이 비준한 유엔해양법협약(UNCLOS)은 국제 해협의 통과통항권을 보장하고 통행료 부과를 명시적으로 금지한다. 미 해군대학원의 제임스 크라스카 교수는 “국제 해협에서 연안국이 통행료를 부과할 법적 근거는 국제법 어디에도 없다”고 했다.

‘이란 탄약고 폭격’ 영상 올린 트럼프미국이 이란의 핵시설이 있는 이스파한 탄약고에 벙커버스터 폭탄을 투하한 모습. 이 영상은 30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소셜미디어에 올린 것이다. /트루스 소셜

다만 이란은 미국·이스라엘의 선제 공격부터가 ‘국제법 위반’이라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에, 현 상황에서 국제법 논의는 의미가 거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이란이 통행료를 ‘안보 서비스 제공 대가’로 포장해 우회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이란 측은 종전 협상에도 통행료 문제를 의제로 올릴 것으로 알려졌다. 파키스탄 등 일부 중재국은 호르무즈 통행료를 부과하는 구상을 미 백악관에 전달한 상태다.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은 30일 알자지라 인터뷰에서 “우리뿐 아니라 전 세계가 받아들일 수 없다”며 “개별 국가들이 국제 해역을 점령하고 자기 것이라 주장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컬럼비아대 글로벌에너지정책센터의 카렌 영 선임연구원은 “UAE·사우디·오만 등 걸프협력회의 국가들도 통행료 부과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30일, 파키스탄 발루치스탄 주 퀘타 외곽에서 상인들이 오토바이에 휘발유가 가득 든 플라스틱통을 싣고 이동하고 있다. 발루치스탄 주민 다수가 오랫동안 생계 수단으로 삼아온 이란산 밀수 연료 거래는 최근 미국-이스라엘-이란 간 갈등으로 인해 점점 더 큰 타격을 받고 있는데, 이 갈등으로 국경 간 공급 경로가 차질을 빚고 세계 유가가 급등했기 때문이다. 호르무즈 해협과 같은 주요 항로를 통한 해상 운송에 긴장이 영향을 미치고 연료 공급이 위축됨에 따라, 비공식 연료 운송은 더욱 불확실해지고 비용이 증가했으며, 이는 파키스탄 전역과 해당 지역에서 느껴지는 광범위한 경제적 부담과 에너지 공급 차질을 반영하고 있다./EPA 연합뉴스

하지만 국제 사회에선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이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않고 ‘셀프 종전’을 선언할 가능성도 우려하고 있다. “트럼프가 호르무즈 해협 폐쇄가 계속돼도 전쟁을 끝낼 의사가 있다는 입장을 참모들에게 밝혔다”는 30일 월스트리트저널(WSJ) 보도도 이 같은 맥락에서 나왔다. 트럼프는 이란의 해군과 미사일 전력을 약화했다는 구실로 작전을 축소한 뒤 이란에 호르무즈 개방을 외교적으로 압박하되, 교섭이 실패하면 유럽·걸프 동맹국에 사실상 ‘알아서 하라’는 식으로 떠넘기겠다는 구상이라는 것이다. 실제 세계 1위 산유국인 미국은 전체 에너지 공급에서 중동산 원유 의존도가 10% 미만이다. 트럼프는 최근 “미국은 호르무즈 해협의 석유가 필요 없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블룸버그 이코노믹스 중동 담당 수석 디나 에스판디아리는 “이란은 호르무즈 전략이 이렇게까지 성공할 줄 몰랐을 것”이라며 “이번 전쟁에서 이란이 얻은 교훈은 전 세계 경제를 볼모로 잡는 것이 생각보다 싸고 쉽다는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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