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는 나에게 무엇인가 [나태주의 인생 일기]

햇수를 자랑하는 것도 아니고 물량을 내세우는 것도 아니다. 나는 1960년 15세,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시의 바이러스에 감염돼 66년 동안 시에 끌려다니며 살고 있다. 등단한 것으로 쳐도 1971년도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 이후부터이니 55년을 넘기는 세월이다.
신기한 것은 15세 이후 오늘까지 한 번도 시 쓰는 것에 불만이나 지루함, 게으름이나 후회함이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시를 생각하고 시집을 읽고 시에 빠지고 시를 쓰기 위해 밤새워 고뇌한 일들을 자랑으로 삼고 기쁨으로 삼는다. 심지어 시가 나를 살렸고 나를 세웠다고까지 말한다.
"시는 종교…유일신과도 같아"
적어도 시인에게 시는 종교에 버금가는 개념이다. 지금 감옥에 가더라도 시를 쓸 것인가? 아니면 감옥에 가는 것을 면하는 대신 시 쓰기를 포기할 것인가? 그러할 때 시인은 감옥에 가더라도 시를 쓰겠다고 감히 맹세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러기에 종교에 버금가는 개념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종교는 신비함에 있고 맹목적인 믿음에 있으며 능력 있는 존재의 구원과 선택에 있다. 그것을 의심 없이 믿으며 따르고 절대로 배반하지 않음에 있다. 특히 배반하지 않음이 중요하다. 다급할 때는 두 손 모아 기도하면서도 다급함이 풀리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딴전을 피우는 게 배반이다. 그것을 신은 가장 싫어하고 용서하지 않는다.
시 역시 그러하다. 시인이 시 아닌 것에 열중하고 그것에 한눈을 팔다가 돌아오면 대문의 빗장을 안으로 걸어 잠그고 열어주려 하지 않는다. 시는 유일신과 같다. 오직 자기 하나에만 순종하기를 바라며 어떤 경우에도 배반하지 않기를 주문한다. 그렇게 될 때 시는 자신의 가장 깊은 곳에 숨겨진 비밀 창고를 허락한다.
나는 어떠한 장소, 어떠한 기회에서도 내가 시인이라고 자신을 소개하지 않는다. 그냥 시 쓰는 사람이라고만 말한다. 이건 겸손이나 예의가 아니다. 나는 시를 사랑하는 사람이고 시 쓰기를 좋아하는 사람일 뿐이다. 내가 정말로 시를 잘 쓰는 사람인지 아닌지는 내가 판단할 문제가 아니다. 시가 판단할 일이고 현명한 독자가 판단할 문제다.
나는 시 사랑과 시 쓰기에 가장 좋은 시간을 바치고 가장 깨끗한 마음을 드린다. 나의 시와 시 쓰기를 멸시하거나 비웃으면 누구라도 맞설 것이며 그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욕을 먹고 비난을 받는다면 내가 받을 것이지 나의 시가 받는 것을 절대로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잊지 못할 박목월 선생의 주례
오래전 내가 결혼식을 올리기 전날인 1973년 10월 20일 밤. 나는 지금의 아내와 결혼식을 준비하고 일찍이 박목월 선생께 주례를 서주십사 편지로 청을 드려 승낙 받은 바 있다. 그러나 내일이 결혼식이고 보니 선생께 확인이라도 드리고 싶어 서울의 댁으로 전화를 드렸다.
4㎞나 떨어진 면사무소 부근의 우체국에 가서 선생 댁에 전화를 드렸다. 사모님이 전화를 받으시면서 나무라는 말씀을 하셨다. 결혼할 사람이 어쩌면 그렇게도 무심하냐면서 지금 박목월 선생이 속리산 법주사에 가셨는데 내일 아침 거기서 출발해 결혼식장에 가실 테니 기다려 보라 하셨다.
급히 집으로 돌아와 아버지께 그 말씀을 드렸더니 화를 내며 나를 나무라셨다. “네가 하는 짓이 늘 그렇지! 박목월인가 하는 그 사람이 어찌 너 같은 사람 주례 서주러 오기나 하겠니? 속리산에 갔다면 안 오겠다는 거지. 오기는 다 틀렸다, 틀렸어.” 하지만 나는 아버지 말씀을 듣고 가만히 있지 않았다. “아버지, 그렇게 말씀하지 마세요. 욕하시려거든 저한테만 하시고 박 선생님한테는 하지 마세요. 그분은 분명히 오십니다.”
평소 같으면 순종적이던 아들이 갑자기 대드는 말을 하니 아버지도 의외다 싶으셨는지, 아니면 내일 결혼식 치를 아들이니 참으시는 거였는지 “그래, 내일 두고 보자” 그러시면서 더는 말씀이 없으셨다. 정말로 그것은 그랬다. 내가 존경하여 따르는 선생님이고 또 나를 시인으로 내세워 주신 분인데 그분에게 함부로 말씀하시는 것은 끝까지 참고 듣기만 할 수 없었던 것이다.
다음날 정해진 시각에 맞춰 박목월 선생이 속리산 법주사로부터 오시어 나의 주례를 서주셨음은 물론이고 주례 말씀으로 시골에 묻혀 사는 어린 시인을 위해 한없는 축복의 말씀을 연거푸 해주시고 서울로 가셨다.
"전 아직 예비 시인일 뿐입니다"
또 한 가지 일이 있었다. 1979년 내가 공주교육대학교 부설초등학교 교사로 전근돼 공주로 왔을 때 일이다. 부임하고 며칠 지난 어느 날, 모교 선배 몇 분이 하교 시간에 잠깐 보자고 했다. 환영회를 따로 갖겠다는 거였다. 퇴근한 뒤 나는 선배들이 오라고 말한 장소로 나갔다. 학교 부근 막걸리 술집이었다.
술잔이 한 순배 돌자 앞에 있던 선배 한 분이 “어이 나 선생, 나 선생도 시 나부랭이깨나 쓴다면서? 내 술 한 잔 받게나.” 그냥 그것은 우스갯소리 겸 친하게 지내자고 하는 말씀인데 나는 참을 수가 없었다. 술잔을 받는 대신 벌떡 일어나 큰 소리로 말했다. “시 나부랭이라니요! 지금 그 말씀 취소하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저 지금 집으로 가겠습니다.”
그러자 술잔을 권하던 선배가 정색하면서 사과를 했다. “내 잘못했네. 나 선생, 그만 화를 풀고 자리에 앉게나. 내가 잘못했네.” 그 선배가 그렇게 신사였다. 멋쩍은 표정으로 나는 자리에 앉아 선배가 주는 술잔을 급하게 마시는 걸로 무렴을 끄려고 했다. 그날 밤 나는 막걸리를 과하다 싶게 많이 마셨고, 선배는 그 뒤로 내가 가장 존경하고 믿고 따르는 선배가 돼줬다.
이야기하고 보니 두 분이 이제는 세상에 계시지 않는다. 아버지와 형님처럼 모시고 살았던 선배님. 이제 와 새삼 그립고 감사한 마음이다. 내가 시를 쓰는 것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보면서 묵언(默言)으로 지원해 주신 분이 그 두 분이었기에 더욱 그러하다. 다시 한번 나에게 묻는다. 그대는 진정 시인인가? 아닙니다. 저는 아직 시인이 아니고 예비 시인일 뿐입니다. 제가 세상에서 목숨 다하는 날 저는 어쩌면 한 사람 시인이 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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