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못지 않아…태양신의 도시에 우뚝 솟은 미스터리
- 고대 메소아메리카 문명 중심지
- 3세기께 완공…달의 피라미드도
- 우주·자연 경외가 응축된 무대
- 아즈텍, 인신공양 제물 등 강요
- 반발한 부족은 스페인 편 들어
- 인간관계의 힘, 무기보다 강력
멕시코의 수도 멕시코시티는 아즈텍의 심장 테노치티틀란(Tenochtitlan) 위에 세워진 도시이다. 이곳에서 북동쪽으로 약 48㎞ 떨어진 곳에는 고대 메소아메리카 문명의 중심지인 테오티우아칸(Teotihuacan)이 있다. 두 개의 거대 피라미드와 긴 중앙대로가 있는 이곳을 ‘신들이 태어난 곳’, 즉 ‘테오티우아칸’이라고 부른 것은 아즈텍이었다. 그들이 이곳에 도착했을 때 이미 사라진 이 문명의 탄생과 몰락은 지금까지도 시간의 심연 속에 잠긴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세계 3대 피라미드의 위용
테오티우아칸을 대표하는 유적은 단연 태양의 피라미드다. 이 건축물을 처음 보았을 때 아즈텍인들은 눈이 휘둥그레졌을 것이다. ‘헉, 이런 엄청난 피라미드가 있었다니!’ 하며 놀라지 않았을까. 지금 그 앞에서 감탄사를 폭포수처럼 쏟아내고 있는 우리처럼 말이다. 세계적으로 피라미드라 하면 이집트 기자의 피라미드가 아이콘처럼 여겨지다 보니, 이 피라미드는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아무리 그래도, 너무 티 나게 감탄하고 있는 내 모습이 피라미드 앞에서 문득 미안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세계 유적지를 답사하면서, 가장 정보가 부족했던 곳이었기에 솔직히 큰 기대를 하지 않았던 것도 어쩔 수 없이 고백해야겠다. 어쩌면 그랬기에 더욱 깊은 감동으로 다가왔는지도 모른다. 심리적 대비 효과로 기대가 낮을수록 감동이 더 커지는데, 태양의 피라미드가 딱 그런 경우였다.

태양의 피라미드는 이집트 기자의 쿠푸 대피라미드, 카프레 피라미드와 함께 대중적으로 ‘세계 3대 피라미드’로 평가받고 있으며, 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장 거대한 규모를 자랑하는 피라미드다. 이 피라미드는 200년경에 완공된 것으로, 그 시기는 약 20만 명이 살던 이 문명의 전성기로 추정된다. 밑변이 약 220~250m, 높이는 약 63~75m로, 약 250만 t의 흙과 돌로 위로 올라갈수록 면적이 좁아지는 다섯 개의 계단식 단(테라스)을 쌓아 올린 구조다. 기자 대피라미드보다 높이는 절반이지만, 밑변 길이는 비슷하다. 그러나 기자의 대피라미드가 정사각형 뿔이라면, 태양의 피라미드는 계단식으로 쌓아 올려져 꼭대기 정상에 신전을 두고 있다. 이 신전은 의례의 중심지로 태양신을 모신 성소였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신전으로 올라가는 길은 폐쇄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2018년 답사 당시에는 그 길이 열려 있었다. 고산지대의 가쁜 숨을 몰아쉬며 250여 개의 계단을 오르는 여행자들의 행렬은 무척 낯설면서도 인상적이었다. 무엇보다도 세계적 유적인 피라미드 위로 직접 올라갈 수 있도록 개방해 둔 것이 신기했다. 태양의 신을 알현하기 위해 수고롭게 꼭대기에 오르면, 눈앞에 펼쳐진 전망은 예상보다 훨씬 넓고 시원하게 트여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신전은 이미 파괴된 채였다. 감히 신을 모시던 자리를, ‘하늘이 두렵지 않은가!’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그렇지 않은가. 하늘을 두려워 죽기 살기로 이렇게 높은 피라미드를 쌓아 올렸건만, 신전을 함부로 대하다니 평소답지 않게 화가 치밀었다.
그래도 성스러운 이곳 신전에서 올린 그들의 염원은 분명 하늘에 닿았을 것이다. 세상의 모든 간절함은 그 어떤 행운보다도 강력한 것이니.
테오티우아칸의 또 다른 피라미드인 달의 피라미드로 가려면 유적지 중심부를 가로지르는 큰 대로를 따라 걸어야 한다. 규모는 작지만, 경사 위에 세워져 있어 해발고도는 ‘태양의 피라미드’와 비슷하다. 아즈텍이 왜 큰 피라미드를 ‘태양’, 작은 피라미드를 ‘달’이라 명명했는지 굳이 설명이 필요할까 싶다. 고대인들에게 매일 아침 떠오르는 태양과 밤마다 모습을 드러내는 달의 움직임은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신의 힘이었을 것이다. 오히려 그것을 신이 아니라고 믿는 것이 더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밝음이 있으면 어둠이 있고, 탄생이 있으면 소멸이 있는 것이 자연의 이치. 따라서 달의 피라미드 역시 신앙의 발현으로, 신에게 제사를 올리는 성소로 여겨진다.
그런데 달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던 인류가 상상도 못 한 일을 해냈다. 1969년, 아폴로 11호가 달에 첫발을 디딘 것이다. 그 순간 달이 간직해온 억겁의 침묵은 산산이 깨지고 말았다. 기도만 하면 될 일을 겁도 없이 신과 맞짱 뜬 셈이니 고대인들이 알았다면 그야말로 기절초풍했을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달’에 대한 신앙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여전히 달을 바라보며 소원을 빌고, 그 속에서 영적 의미를 찾는다. ‘갑돌이와 갑순이’ 노래에 ‘달 보고 울었더래요~’라는 가사가 있듯, 달은 아픈 마음을 위로해 주는 벗이기도 하다. 나아가 달은 시간을 초월해 인류가 함께 바라보며 신앙과 상상을 이어온 매개체다. 그러니 달의 피라미드 앞에서 고대인과의 연대감을 느끼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강렬했던 아즈텍 문명
종교적 중심지였던 테오티우아칸에는 인신 공양의 흔적이 남아 있다. 그 흔적이 정확히 어느 시대의 것인지는 아직 규명되지 않았다. 그러나 인신 공양이 가장 대규모로 이루어진 문명은 아즈텍으로 알려져 있다. 그들은 태양신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반드시 피를 바쳐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인신 공양 문화는 아즈텍의 몰락을 부추긴 요인이기도 했다. 당시 세계 최고 수준의 전쟁 기술을 갖춘 스페인 침략자들에 맞서 아즈텍은 흑요석 칼날을 박은 전통 무기를 고수했다고 하는데, 과연 대적이 되었을까? 물론 그들이 가진 무기는 그런 것뿐이었으니, 당연한 선택이라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 무기의 목적은 적을 부상시켜 포로로 생포함으로써 신에게 바칠 희생 제물을 마련하기 위한 나름의 전략이었다.
그렇다고 아즈텍의 몰락이 단순히 무력의 차이 때문만은 아니었다. 아즈텍이 누구인가. 지속적인 정복 전쟁을 통해 멕시코 고원 지역과 중앙아메리카 일부까지 영토를 확장하며, 200년 가까이 번성했던 고도의 문명이었다. 그런 제국이, 생전 보지 못한 말이 공격해 오고 총과 대포로 쏘아댄다고 해서 그렇게 쉽게 무너질 리 없지 않은가. 문제는 아즈텍 주변 부족들이 자발적으로 스페인과 손을 잡았다는 데 있었다. 왜 그랬을까.
아즈텍은 오랫동안 정복한 부족들에게 막대한 공물을 요구했을 뿐만 아니라, ‘피의 의식’에 바칠 희생 제물까지 강요해 왔다. 그 부족들은 언제든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처지에 놓여 있었는데, 예기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스페인이 갑자기 침공해 온 것이다.
물론 스페인이 가져온 천연두가 아즈텍의 전력을 무력화시키기도 했지만, 스페인은 아즈텍에 반감을 품은 거대한 토착 동맹군을 규합하여 최후의 공세를 펼쳤고, 결국 아즈텍은 무너지고 말았다. 그래서 평소의 인간관계가 중요한 것이다. 관계의 힘은 때로는 무기보다 강력하며, 그 진가는 위기 속에서 드러난다. 오늘 우리가 맺는 관계가 내일의 운명을 좌우하는 변수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떠날 때는 말없이~’라고 했던가. 테오티우아칸을 신들이 태어난 신성한 도시로 믿으며 제례를 올렸던 아즈텍은 그렇게 허무하게 역사에서 퇴장했다. 그때가 아즈텍 최후의 황제 몬테수마 2세가 사망하고 스페인이 테노치티틀란을 점령한 1521년이었다. 역사는 언제나 승자의 시선으로 기록된다. 스페인 정복자들은 메소아메리카를 미개한 문명으로만 규정했을 뿐, 자신들이 얼마나 철저히 그 문명을 파괴했는지는 묻어 버렸다. 이런 웅장한 피라미드가 있는 문명이 미개하다고? 억울하지만 어쩌겠는가. 인류 역사는 늘 그렇게 힘 있는 자들의 횡포에 이끌려 온 것을.

그런데, 환영을 본 것일까. 테오티우아칸 앞 광장에는 피라미드를 쌓으며 춤추던 고대 영혼들이 어른거렸다. 아무렴 어떤가. 태양과 달을 향한 신앙이 이어지는 한, 이곳은 영원히 살아 숨 쉬는 성소다. Shall we dance? 그 영혼들과 손을 맞잡고 함께 춤추고 싶었다. 신이 태어나고 인간이 그 신과 만나는 곳, 우주와 자연을 향한 경외와 열망이 응축된 그 무대에서, 그것도 찬란한 태양을 바라보며.
·‘한국유적지기행’‘아시아유적지기행’‘세계10대유적지기행’ 저자·유적지 기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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