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장쩌민 방한 추진에…北 “우리도 대만과 수교 검토” 반발

이윤태 기자 2026. 3. 31.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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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부, 1995년 당시 외교문서 공개

“조·러(북·러) 협약 중 군사조항이 더 이상 실천 불가능한 조항임은 공개된 비밀(open secret)이다.”

1995년 7월 한-러 정책협의회에서 러시아 외교부 당국자가 반기문 당시 외교부 정책실장에게 한 말이다. 이 당국자는 “현재의 북-러 관계가 과거의 이념적 관계에서 실용적 관계로 변화됐다”고도 했다.

1995년 7월 반기문 외교부 정책실장과 루코프 러시아 외무부 정책실장 간 한-러 정책기획협의회 결과보고 문서. 자료 외교부

외교부가 31일 공개한 1995년 생산 외교문서 2621권, 약 37만 쪽에는 1996년 북-러 군사동맹 조약 폐기 전후 한국 정부의 집요한 외교전, 장쩌민(江澤民) 당시 중국 국가주석 방한을 둘러싼 북-중 신경전, 김영삼 당시 대통령의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관련 발언, 미국의 대한(對韓) 통상 압박 등이 담겼다. 정부는 생산 30년이 지난 외교문서를 매년 공개하고 있으며, 이번이 제33차 공개다. 다만 국가안보와 대외관계 등을 이유로 일부 민감 문서는 재분류돼 공개 대상에서 빠졌다.

● 韓 설득에 러, 북러 군사동맹 조약 폐기
이번 문서에서 가장 눈에 띄는 대목 중 하나는 러시아가 소련 시절 북한과 맺은 ‘우호 협력 및 상호 원조 조약’을 폐기하는 과정이다. 이 조약은 유사시 자동 군사 개입으로 해석될 수 있는 조항을 담고 있었다. 문서에 따르면 공로명 당시 외무부 장관은 1995년 5월 알렉산드르 파노프 러시아 외무부 차관과 만나 이 조항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한러 관계 발전을 위해 조약 개폐(改廢)를 촉구했다.

한국 정부의 집요한 설득이 거듭되자 러시아는 같은 해 6월 주러 한국 공사를 초치해 “조약 개폐 문제에 간섭적 태도를 보인다”고 불만을 표시했다. 그러나 러시아는 결국 1995년 9월 북한에 조약 폐기를 통보하면서 새로운 조약을 제안했지만, 북한이 이에 호응하지 않으면서 조약은 이듬해 공식 폐기됐다.

● 北 “中 주석 방한 땐 대만 수교”…북중 갈등 노출

김영삼 대통령(오른쪽)은 1995년 11월 14일 청와대에서 장쩌민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사진 출처 ‘e영상역사관’
중국 국가원수로는 처음이었던 장 주석의 1995년 11월 방한을 둘러싼 북-중 갈등도 드러났다. 문서에 따르면 중국 외교부는 한중 우호 관계를 감안해 오사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이전 방한을 추진했지만, 중국 공산당 중앙판공청은 북한을 자극할 수 있다며 APEC 이후 방한을 주장했다. 중국 군부 등 보수 세력도 중국 외교부가 북-중 특수관계를 무시한 채 한국과의 관계를 지나치게 중시한다는 불만을 드러낸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 측은 “장 주석이 방한하면 시기와 무관하게 북한의 불만은 마찬가지”라며 중국을 설득했고, 결국 장 주석은 APEC 이전인 11월 13∼17일 한국을 찾았다.

북한은 노골적으로 반발했다. 1995년 5월 중국 외교부 산하 국제문제연구소 대표단이 평양에서 북한 외무성 산하 연구소 측과 회의했을 때, 북한 측은 “중국과 한국이 고위인사 교류를 하는데 북한은 왜 대만과의 관계를 발전시킬 수 없느냐”고 따졌다. 이어 “보도된 대로 올해 11월 장 주석이 한국을 방문한다면 대만과의 관계에서 어떠한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으며, 대만과의 외교관계 수립까지도 검토하지 않을 수 없다”고 경고했다.

외교부는 북한이 1995년 11월 장쩌민 중국 국가 주석의 방한을 앞두고 중국 측에 ‘대만과의 수교’를 언급하며 반발한 내용을 담은 외교문서를 31일 공개했다. 자료 외교부

중국이 한국과 수교한 지 3년 만에 국가주석 방한을 추진하자, 북한이 대만 카드까지 꺼내 들며 북-중 특수관계를 상기시킨 것이다. 중국은 방한 직전 베이징 주재 북한대사관이 주최한 노동당 창당 50주년 리셉션에 장 주석이 직접 참석하는 등 북한 달래기에도 공을 들였다.

장 주석 방한 기간 열린 한중 정상회담과 공동 기자회견에선 일본 과거사 문제가 돌발 변수로 떠올랐다. 한중은 애초 일본이나 미중 관계 등 제3국 문제는 정상회담 공식 의제에서 빼고 비공식 석상에서 의견을 나누기로 조율했다. 그러나 일본 각료들의 식민지 지배 정당화성 발언이 이어지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공동 기자회견에서 한국 기자가 일본 과거사 문제를 묻자 장 주석은 “일본으로 하여금 역사를 똑바로 인식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답했고, 김 대통령은 “건국 이래 일본에서 30회 이상 이러한 망언이 있었던 것으로 생각되는데 이번 기회에 버르장머리를 고쳐 주어야 한다”고 즉흥 발언했다. 이후 한중 양국은 각각 일본 정부에 “공동 대응 의도는 없다”며 진화에 나섰다.

● YS, 삼풍 참사에 “공업화 과정의 불가피”
1995년 6월29일 발생 1시간뒤의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현장. 동아일보DB
문서에는 김 대통령의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관련 논란의 발언도 포함됐다. 삼풍백화점 참사 다음 날인 1995년 6월 30일 청와대에서 남태평양 도서국가인 바누아투공화국의 막심 칼롯 코르만 총리의 예방을 받은 김 대통령은 참사 관련 위로 서한을 받고 “사건이 없는 것이 제일 좋지만, 공업화로 가는 과정에서 생기는 불가피한 현상이며 과정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나라는 언론의 자유가 지나치게 보장돼 있고 민주주의가 발달돼 있어 언론들이 너무 많이 과장되게 보도하는 경향이 있다”며 “미국에서는 7분에 살인사건이 1건씩 발생하고 있으나 미국 언론들이 7분만에 1건씩 발생하는 사건을 전부 다 보도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도 했다.

김 대통령은 참사 약 한 달 뒤 미국에서 워런 크리스토퍼 당시 미 국무장관을 만난 자리에서도 삼풍백화점 사고 희생자에 대한 조의 표시에 대해 “우리는 유교적 풍속 때문인지 홍수, 가뭄 등 자연재해가 발생하는 경우에도 모두 대통령 책임인 것으로 돌리는 잘못된 관습이 있는데 최근 이러한 경향이 변하는 것 같아 다행으로 생각한다”고 말한 것으로 기록됐다.

● 클린턴 재선 앞둔 美, 강관·자동차 시장 동시 압박
경제 분야에선 빌 클린턴 미 대통령의 재선 도전을 앞둔 미국이 1995년 한국에 강관과 자동차 시장 개방을 동시에 압박한 흐름이 상세히 담겼다. 미국 강관수입협회(CPTI)는 6월 1일 미 무역대표부(USTR)에 무역법 301조 청원을 내고, 한국 정부가 포스코를 통해 강판 가격을 낮게 유지해 한국산 강관에 원가 우위를 줬으며 유럽 쪽에는 사실상 비공식 세이프가드를 걸어 물량이 미국으로 몰리게 했다고 주장했다. 외교문서에는 이를 세계무역기구(WTO) 출범 직후 새 규범 위반을 내세운 사실상의 대한(對韓) 통상공세로 보는 한국 정부의 인식이 담겼다.

자동차 분야 압박도 만만치 않았다. 1995년 1∼8월 실무협의 문건에는 미국이 한국 시장의 배기량세, 세무조사, 안전기준, 할부금융, 광고 제한 등을 문제 삼으며 개방을 요구한 내용이 나온다. 주미대사관은 같은 해 5월 미국이 일본 자동차를 상대로 301조 발동에 나선 직후 한국 압박이 더 거세졌고, 이를 클린턴 대통령의 재선용 ‘자동차 3주(미시간·미주리·오하이오)’ 전략과 연결해 분석했다.

한국 정부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실무협의를 늦추며 시간을 벌었고, 9월 한미 자동차 협상에서 일부 요구를 수용하는 대신 WTO 불제소와 슈퍼301조상 우선협상대상국(PFCP) 지정 제외를 요구했다. 결국 9월 28일 협상 타결 뒤 미국은 한국을 PFCP 지정에서 뺐다.

외교부가 국익과 대외관계를 고려해 거리 이름 변경을 막는 등 애써온 사실도 드러났다. 1995년 말 국내에서 서울 강남 테헤란로를 ‘무역의 거리’ 등으로 바꾸려는 움직임이 일자, 이란은 서울의 테헤란로와 테헤란의 ‘서울로’가 1977년 양 도시 자매결연에 따라 붙은 상징적 이름이라며 일방적 변경이 없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이에 외교부는 한-이란 기존 우호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며 서울시에 현 명칭을 유지해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에 공개된 외교문서는 서울 서초구 외교사료관 내 ‘외교문서 열람실’에서 볼 수 있다. 4월 이후에는 공개외교문서 열람청구시스템을 통해 온라인 열람도 가능하다.

이윤태 기자 oldsport@donga.com
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권오혁 기자 hyu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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