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태칼럼] 사람이 남는 자리

6.3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둔 거리는 다시금 문장들의 전장이 되었다. 길거리마다 낯익은 얼굴들이 걸리고, 골목마다 반복되는 이름들이 바람에 나부낀다. "시민과 함께", "기본부터 다시" 같은 구호들이 공중에 흩어진다. 매번 보는 풍경임에도 이번에는 마음의 결이 조금 다르게 움직인다. 후보들이 내뱉는 '무엇을 하겠다'는 약속보다, 그들의 내면에 '어떤 기준이 서 있는가'가 더 절실히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얼마 전, 평소 신뢰하던 한 기초의원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당선이 유력함에도 불출마를 결심했다는 소식이었다. 이유를 묻자 그는 담담하게 답했다. "정치는 결국 신의의 문제 아니겠습니까." 그 짧은 문장은 어떤 화려한 정견 발표보다 오래 귓가에 머물렀다. 이익을 내려놓으면서까지 지켜야 할 가치가 있다는 태도, 정치를 기술이 아닌 관계로 이해하는 시선이 그 안에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목소리 위로 영화 '왕과 사는 남자'의 한 장면이 겹쳐졌다. 초저녁 안개가 내려앉은 유배지, 흔들리는 등불 아래 적막하게 앉아 있는 왕과 그 곁을 묵묵히 지키는 한 사람. 권좌에서 밀려난 왕에게는 더 이상 명령할 군사도, 따르는 신하도 없다. 남은 것은 권력이 아니라 오직 '사람'뿐이다. 모든 외피가 사라진 자리에서 비로소 선명해지는 신의의 원형. 우리가 그 장면에서 뭉클함을 느끼는 건, 상실해가는 '끝까지 남는 관계'에 대한 갈증 때문일 것이다.
"권력은 사람을 모으지만, 신의는 사람을 남게 한다."
최근 연구소로 초청한 한 교육감 후보자와의 대화에서도 비슷한 결을 읽었다. 그는 수많은 정책을 나열하는 대신 '기본'이라는 단어를 집요하게 반복했다. 그 울림이 컸던 것은 그것이 단순한 공약이 아니라 무엇을 끝까지 지켜내겠다는 '자기 기준'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현란한 수사보다 투박한 '기본'에서 그 사람의 품격과 진정성을 엿보는 일, 그것은 유권자가 행할 수 있는 가장 고귀한 판단이기도 하다.
사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안다. 화려한 계획보다 견고한 태도를, 넘치는 약속보다 흔들리지 않는 기준을 보아야 한다는 것을. 하지만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는 그 기준을 자주 놓친다. 눈을 뜨면 알고리즘이 편집한 정보가 쏟아지고, 인공지능은 우리가 볼 것과 보지 않을 것을 빠르게 나눈다. 스스로 선택하기보다 시스템이 설계한 흐름 속에 몸을 맡기는 '판단의 외주화'가 일상화되었다. 정보는 과잉되나 신뢰는 빈곤하고, 연결은 비대해졌으나 관계는 파편화된 역설의 시대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다시 묻기 시작한다. 기술이 아무리 정교해져도 대신할 수 없는 영역, 결국 인간만이 책임지고 지켜내야 할 영역은 어디인가. 신의(信義)는 계산기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불리한 순간에도 원칙을 붙드는 선택, 이익보다 관계를 먼저 생각하는 마음의 근육 속에서만 쌓인다. 정치도, 행정도 그 본질은 다르지 않다. 권력은 순간의 바람으로 커질 수 있지만, 신뢰는 오랜 시간의 퇴적을 거쳐야만 완성된다. 위기의 순간마다 드러나는 것도 결국 그 차이다.
선거철 거리를 가득 채운 문장들은 시간이 지나면 대부분 사라질 것이다. 우리는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남기는가. 결국 남는 것은 '선택'의 궤적이다. 신의를 지키기 위해 기꺼이 자리를 내려놓은 기초의원의 결단과, 현란한 정치 공학 대신 투박한 기본을 붙들겠다는 교육감 후보자의 진심이 바로 그 답이다. 사람들은 그들이 어떤 순간에 무엇을 지켰는가를 기억한다. 정치의 성패는 말이 아니라 관계로 남기 때문이다.
"정치는 신의가 우선입니다." 처음 들었던 그 말이 다시금 메아리친다. 권력은 사람을 모으지만, 신의는 사람을 남게 한다. 영화 속 그 장면은 여전히 유효하다. 모든 권세가 썰물처럼 빠져나간 자리, 적막한 마루 끝에 끝내 떠나지 않고 앉아 있는 한 사람. 그 '사람이 남는 자리'가 우리가 꿈꾸는 정치의 종착지이길 소원한다.
"왕이어서가 아니라, 사람이라서 곁에 있었습니다."
이번 칼럼의 마무리는 이 문장이 남긴 뜻으로 충분할 것 같다.
김형태 성균관대학교 인공지능융합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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