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님과 삼양동 골목길 누빌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

뉴질랜드에서 1965년 사제 서품받고
이듬해 한국 와 강원 정선성당 부임
1980년대 목동 재개발 때 철거민 지켜
1990년대부터 삼양동 산동네에서
가난한 이들의 버팀목 노릇 34년
돈 생기면 빈자들 종잣돈으로 주고
담배 꽁초 주워 피우는 청빈한 삶
안광훈 신부님은 1941년 뉴질랜드에서 태어나 1965년 성골롬반외방선교회 사제로 서품을 받고, 이듬해 낯선 땅 한국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2026년 3월21일, 하느님의 품으로 돌아가기까지 60년이라는 세월을 이 땅의 가장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과 함께했습니다.
신부님은 2년간의 어학연수를 마치고 1969년 강원도 정선성당에 부임하였습니다. 당시만 해도 정선은 첩첩산중 오지였고, 열악한 환경 속에서 하루하루를 힘들게 살아가는 주민들을 보면서 신부님은 가난한 주민들이 남에게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힘으로 살아가는 방안을 찾고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정선신협'을 설립하여 가난한 주민들이 협동으로 가난을 극복하도록 하였습니다.
신부님과 필자의 인연은 1980년대 서울 목동 재개발 현장에서 시작합니다. 당시 철거민들의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 주셨던 신부님은 무척이나 엄격하셨습니다. 미사 중 무례하게 구는 이들에게 호통을 치시던 신부님은 필자에게는 조금은 무서운 분이셨습니다. 그렇지만 “신자를 위한 신부냐, 뚝방 사람을 위한 신부냐”는 일부 신자들의 비난 속에서도 신부님은 가난한 약자들을 지키는 단단한 분이셨습니다.
10여년의 세월이 흘러 신부님을 다시 만난 곳은 1990년대 서울 삼양동 산동네였습니다. 필자는 미아7동에서 저소득층 맞벌이 부부의 아이들을 돌보는 놀이방 교사로, 신부님은 목동의 경험을 가지고 재개발이 임박한 미아6동 산동네로 들어오셨을 때였습니다. 신부님이 삼양동에 처음 왔을 때 꼬불꼬불한 골목길을 오르내리는 것이 무척 힘들어 이런 동네에서 살 수 있을지 고민하며 내려가던 중에 중풍에 걸린 할아버지가 올라오시는 모습을 보고 “이런 분도 여기서 사는데 내가 왜 못 살겠냐”며 살기 시작하셨다는 신부님의 솔직하신 말씀과 태도가 그저 좋았습니다.
신부님의 사목 철학은 명확했습니다. “주민들을 위해서 한다”는 말에는 ‘나는 알지만 그들은 무식하다'는 교만이 숨어 있을 수 있다고 경계하셨습니다. 신부님은 “늘 그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과 함께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가난한 이들을 시혜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삶의 동반자로 존중했던 신부님의 태도는 활동가와 주민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습니다.

목동 시절과는 달리, 삼양동의 신부님은 늘 뒤에서 말없이 지키는 분이셨습니다. 철거 용역들의 폭력 앞에서도 마이크를 잡고 선동하는 대신, 수녀님들과 함께 그저 그 자리에 계셔 주셨습니다. 신부님의 ‘현존'만으로도 주민들은 “저분들이 계시니 우리를 함부로 깔아뭉개지는 못할 것”이라는 위안을 얻었습니다. 활동가들이 지쳐 등을 돌릴 때면 언제나 그 자리에서 등을 토닥여 주시던 분, 신부님은 존재 자체로 힘이 되는 버팀목이었습니다.

삼양동에서의 34년은 신부님이 ‘가난한 이 중의 가장 가난한 이'가 되는 과정이었습니다. 그 삶은 말뿐이 아니었습니다. 신부님은 마지막 순간까지 삼양동의 누추한 전셋집을 고집하셨습니다. 한겨울에도 보일러를 틀지 않고, 낡아서 부스러질 지경인 침구를 아끼며, 시장에서 가장 싼 음식을 사고는 아이처럼 자랑하시던 청빈한 삶. 길가에 떨어진 담배꽁초를 주워 피우시면서도, 은인들이 보내준 소중한 돈은 모조리 가난한 이들에게 종잣돈으로 건네주셨습니다. 당신을 위해 마련된 편안한 자리와 좋은 음식은 냉정하게 거절하셨지만, 가슴이 통하는 이들과 나누는 소주 한 잔의 온기는 마다치 않으셨습니다.
2020년, 공로를 인정받아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하며 신부님은 명실상부한 한국인이 되셨습니다. 그리고 2026년 봄, 신부님은 당신이 그토록 사랑했던 삼양동 사람들의 배웅을 받으며 배론 성지의 성직자 묘지에 잠드셨습니다. 안광훈 신부님은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진정한 사랑은 높은 곳에서 내미는 손이 아니라, 가장 낮은 곳에서 서로의 체온을 나누는 것임을. 신부님이 떠나신 삼양동의 굽이진 골목길에는 이제 그분의 향기가 남아 있습니다. 비록 육신은 떠났지만, 가난한 이들의 벗이 되어주셨던 그 따뜻한 미소와 엄격한 가르침은 우리 마음속에 영원한 성자로 살아 있을 겁니다.
신부님, 이제 무거운 짐 내려놓으시고 주님의 품 안에서 편히 쉬소서. 신부님과 함께 삼양동 골목길을 누빌 수 있어서 참 행복했습니다.
장경혜/(사)삼양주민연대이사장·전 천주교빈민사목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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