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방일에도 ‘반국가단체’ 낙인에 초대 못 받는 한통련…진실규명 신청

고경태 기자 2026. 3. 31.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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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일 기자회견 뒤 송상교 위원장과 면담
한통련(재일한국민주통일연합)과 ‘한통련을 돕는 사람들’이 31일 오후 서울 중구 진실화해위 앞 기자회견에서 한통련에 대한 부당한 반국가단체 규정을 철회하라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한국 민주화의 주요 국면마다 있었지만, 이재명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해 재일동포와 간담회를 했을 때 초청받지 못한 이들이 있다. ‘반국가단체’ 낙인이 찍힌 재일동포 사회단체 한통련(재일한국민주통일연합)이다. 한통련 피해자들이 과거 자신들에게 씌워진 ‘반국가단체’ 낙인이 부당하다며 3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에 진실규명(피해 확인)을 신청했다.

한통련 관계자들과 국내 인사들로 구성된 ‘한통련을 돕는 사람들’은 31일 오후 서울 중구 진실화해위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1973년 결성된 이후 줄곧 한국의 민주화와 평화 통일을 위해 활동해온 한통련을 반국가단체로 규정한 것은 법적으로 부당할 뿐만 아니라 사회적 정의에도 어긋난다”며 “3기 진실화해위원회가 이를 바로잡아달라”고 요청했다. 김창오 한통련 중앙본부 부위원장 등 7명은 이날 진실화해위 5층 민원실에 진실규명 신청서를 접수하고 6층 대회의실에서 송상교 진실화해위원장과 면담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김창오 부위원장을 비롯 허경민 한통련 전 오사카본부 부위원장, ‘한통련의 완전한 명예회복과 귀국보장을 위한 범국민위원회’ 대표인 최병모 변호사(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 겸 이사장), 함세웅 신부(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 이사장), 김영주 목사(전 KNCC 총무), 문국주 유월항쟁계승사업회 이사장 등이 참석했다.

한통련은 박정희 독재정권이 유신 쿠데타로 장기집권 체제를 확립한 이듬해인 1973년 8월 야당 지도자였던 김대중과 함께 일본 도쿄에서 결성한 ‘한민통’(한국민주회복통일촉진국민회의)의 후신이다. 발기인 전원이 대한민국 국적이었던 한민통은 당시 납치됐던 김대중 구출운동을 비롯해 한국 민주화를 위한 활동을 벌였는데, 박정희 정권은 1977년 재일동포 유학생 김정사를 간첩으로 조작하면서 한민통을 김정사의 배후에 있는 반국가단체로 몰았다. 1978년 법원에서 김정사의 유죄 판결이 내려지자, 박정희 정권은 ‘한민통=반국가단체’ 규정을 공식화해 이들에 대한 탄압을 본격화했고, 전두환 신군부는 1980년 집권 과정에서 과거 한민통 의장이었던 김대중을 반국가단체 수괴 혐의로 사형 선고했다.

김창오 한통련 중앙본부 부위원장이 31일 오후 서울 중구 진실화해위 앞 기자회견에서 한통련(재일한국민주통일연합)에 대한 부당한 반국가단체 규정을 철회하라는 취지의 발언을 하고 있다.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한통련 간부들에 대한 여권 발급 거부와 사업상 불이익, 국가보훈보상금 지급 중지 등 각종 차별과 배제 조처는 이후로도 이어지다 2003년 노무현 전 대통령 결단으로 중단됐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차별 조처가 재개돼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대한민국 정부는 여전히 한통련 간부들에게는 10년짜리 여권 대신 5년짜리 여권을 발급하며, 손형근 한통련 중앙본부 의장에게는 아예 여권발급을 하지 않아 한국에 올 수 없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최병모 변호사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한통련 회원들에게 여권을 발급한 지 23년이 지났는데 아직 한통련이 모국을 자유 왕래할 수 없는 것은 수치스럽고 야만스러운 일이다. 한국이 진짜 민주주의 국가인지 의문스럽다”고 말했다.

김창오 부위원장은 기자회견에서 1973년 김대중 납치사건 당시 아사히신문과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때의 한통련 기관지 민족시보 등을 기자들에게 보이며 “한통련은 박정희 정권 이후 정권이 바뀔 때마다 탄압받았다. 진화위가 한통련이 반국가단체가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해달라”고 말했다. 김 부위원장은 이어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월 오사카 지역 재일동포들과 오찬간담회를 갖고 재일동포 간첩조작사건에 대한 사과와 위로의 말을 전할 때도 한통련 사람들은 단 한명도 초청받지 못했다”고 했다. 함세웅 신부는 “독재정권 시절 일본의 깨어있는 동포들이 벌인 민주화운동에 우리는 큰 빚을 졌다”고 했고, 기자회견 사회를 본 임종인 변호사는 “한통련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것은 이들이 한국에 없어, 한국 정치인들도 관심을 안 가지기 때문”이라고 했다.

송상교 진실화해위원장이 31일 오후 서울 중구 진실화해위 6층 대회의실에서 한통련(재일한국민주통일연합) 및 ‘한통련을 돕는 사람들’ 관계자들의 만남에서 발언을 듣고 있다.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한통련이 반국가단체로 만들어지는 계기였던 김정사 간첩조작 사건은 2013년 재심에서 무죄 선고를 받았다. 앞서 김대중 전 대통령도 2004년 재심에서 무죄를 받았다. 조작 사건 피해자인 두 사람은 누명을 벗었지만, 또 다른 피해자인 한통련은 반국가단체 낙인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게 한통련의 설명이다. 1978년 판결에서 한통련이 반국가단체라고 단정했던 법원은 두 사람의 재심에서는 한통련에 대한 판단을 아예 하지 않았다. 한통련은 한국 법정에 직접 선 적이 없어 법원에 재심을 청구할 수 없는 형편이다.

송상교 진실화해위원장은 이날 이들과 면담하며 “변호사 시절 재일동포 간첩 조작사건 변론을 하면서 그분들이 조국에 대한 헌신과 애정에도 불구하고 고통받은 사실을 알았다. 과거사 진실규명의 책임을 지닌 위원장으로서 이런 고통에 책임감을 가지고 임하겠다”고 말했다. 1기 진실화해위는 이영조 위원장 시절이던 2010년 한통련에 대한 진실규명 신청을 각한 한바 있다. “한통련에 대한 여권 거부가 2003년까지 계속됐기에 과거 권위주의 시절에 있었던 인권 침해 사건을 다루는 진실화해위의 조사 대상이 아니”라는 이유였다.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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