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포커스] 외교는 결국 민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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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대륙, 일곱 나라, 그리고 35년.
현역 시절의 긴장감은 내려놓았지만 친정 외교부를 향한 대중의 시선이 여전히 따뜻하지만은 않다는 점은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다.
그러나 내가 현장에서 몸소 경험한 외교는 결코 추상적인 수사가 아니었다.
내가 최근 부산 재래식 시장에서 저렴하고 품질 좋은 베트남산 대나무 바구니를 구입한 것도 한·아세안 및 주요 동남아 국가와의 양자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통한 관세 인하와 물류 협력이라는 경제 외교의 노력이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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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교민 지키는 역할까지
그들만의 리그로 보이지만
국익 증진 위한 치열한 전쟁

다섯 대륙, 일곱 나라, 그리고 35년. 공직 생활의 절반 이상을 아세안과 함께하며 보낸 시간은 내 삶의 지도를 바꾸어 놓았다. 은퇴 후에도 세상을 바라볼 때면 나도 모르게 아세안 프리즘이 작동한다. 현역 시절의 긴장감은 내려놓았지만 친정 외교부를 향한 대중의 시선이 여전히 따뜻하지만은 않다는 점은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다. 외교의 성과가 눈에 잘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도 이런 거리감을 키우는 이유일 것이다.
외교를 그들만의 리그로 치부하는 시각도 존재한다. 화려한 연회장과 외국어로 오가는 대화가 국민의 삶과 동떨어진 풍경처럼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내가 현장에서 몸소 경험한 외교는 결코 추상적인 수사가 아니었다. 그것은 철저히 사람을 통해 작동하는 현실의 정책이며, 국익이라는 거대한 목표를 위해 최일선에서 움직이는 촉수들의 치열한 기록이다.
'외교관' 하면 연상되는 각종 오찬·만찬과 리셉션 역시 단순한 사교의 장이 아니다. 정보를 수집하고 상대의 의중을 파악하며, 결정적 순간에 우리 편을 만들기 위한 업무의 연장선이다. 평소 공들여 쌓아온 인적 네트워크는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강력한 힘을 발휘하지만, 이러한 노력은 대부분 수면 아래에 있어 잘 드러나지 않는다. 눈에 보이지 않는 신뢰의 축적이야말로 외교의 중요한 자산이다.
중동 사태는 외교의 실체를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포화 속에서 신속대응팀이 노란 조끼를 입고 교민을 대피시키는 모습은 외교가 국민의 생명과 직결된 '생존의 장치'임을 증명한다. 필자도 1998년 인도네시아 폭동 당시, 자카르타에서 4800여 명의 교민을 철수시키기 위해 중간 집결지를 선정하고, 반정부 시위대가 장악한 시내를 뚫고 이들을 공항까지 수송했다. 출국 허가를 얻기 위해 현지 당국과 협상을 벌였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이후 2021년 아프가니스탄 사태나 최근 동남아 범죄 조직에서 우리 청년들을 구출해낸 일 역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수행되는 민생 외교의 결과다.
외교는 이제 우리의 일상 깊숙이 스며들어 있다. 첫 번째 접점은 경제다. 아세안은 이미 우리의 핵심 교역 시장이자 주요 생산기지다. 내가 최근 부산 재래식 시장에서 저렴하고 품질 좋은 베트남산 대나무 바구니를 구입한 것도 한·아세안 및 주요 동남아 국가와의 양자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통한 관세 인하와 물류 협력이라는 경제 외교의 노력이 자리하고 있다. 결국 이러한 노력이 물가 안정과 가계 소득 증대로 이어지며, 그 성과는 통계에만 머무르지 않고 국민의 장바구니 물가에도 반영된다.
둘째는 인구와 노동의 문제다. 빠르게 고령화가 진행되는 한국과 달리 아세안 국가들은 젊고 역동적이다. 식당이나 편의점에서 동남아 유학생이나 근로자가 일하는 모습은 이제 낯설지 않은 풍경이 되었다. 재외공관의 비자 발급 서비스는 인력난에 시달리는 국내 소상공인에게 실질적 도움을 준다.
마지막은 국민 보호다. 해외 출국자가 수천만 명에 이르는 시대에 국가가 나를 지켜줄 것이라는 믿음은 국민의 당연한 권리다.
국익 중심의 실용 외교는 거창한 구호가 아니다. 청년들을 포함한 우리 국민이 해외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도록 안전하게 보호하고, 좋은 물건을 합리적인 가격에 소비할 수 있도록 길을 닦는 현실적인 수단이다. 결국 외교는 민생이다. 관세 등 국가 간의 중차대한 협상에서부터 시장의 장바구니 하나에 이르기까지 외교와 국민 삶의 접점은 앞으로 더욱 넓어질 것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소임을 다하는 외교관들의 노력이 국민의 삶을 지탱하는 단단한 주춧돌이 되기를 기대한다.
[서정인 유엔기념공원관리처장·전 주아세안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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