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석 국립생태원장 “생물다양성, 이제 기업의 ‘선심’ 아닌 ‘생존 비용’”

구현화 2026. 3. 31.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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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석 국립생태원장은 기후보다 생물다양성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고 진단했다. 또한 자연 복원이나 관리에 '생태적 관점'이 중요하다며 기업이 본사 및 공급망 인근의 생태 관리나 생물다양성 데이터 산출을 고민할 때 망설이지 말고 도움을 요청하라고 조언했다.

[한경ESG] 스페셜 리포트 - 기후 다음은 생물다양성
이창석 국립생태원장 인터뷰

사진=국립생태원 제공

인공지능(AI)이 세상을 지배하고 초거대 공장이 들어서는 첨단의 시대, 역설적이게도 인류의 생존은 가장 원초적인 질문 앞에 서 있다. 우리가 마시는 물, 숨 쉬는 공기, 그리고 산업의 토대가 되는 천연자원은 과연 지속 가능한가. 기후위기를 넘어 ‘생물다양성(Biodiversity)’이 기업 경영의 거스를 수 없는 글로벌 스탠더드로 부상했지만, 여전히 많은 기업은 안갯속을 걷고 있다. “중요한 건 알겠는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현장의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한경ESG>는 이창석 국립생태원장을 만나 기업들이 고민하는 생물다양성 문제를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조언을 구했다. 새벽마다 논문을 쓰고 강아지들과 산책하며 근처 식물들의 상태를 읽는 그는, 이론뿐 아니라 현실까지 접목을 고민하는 현장 중심 생태학자다. 이 원장은 인터뷰 내내 생물다양성을 단순한 ‘환경 보호’가 아닌 인류의 ‘생존 환경’이자 기업의 ‘자산’으로 정의했다. 특히 그는 “기업들이 겪는 막막함은 데이터의 부재에서 온다”고 진단하며, 국립생태원을 기업의 ‘사외 환경 연구소’로 적극 활용할 것을 제안했다. 

국립생태원을 처음 만들 때부터 설립에 참여하셨다고요.

“국립생태원 건립추진기획단의 단장을 맡았었습니다. 국립생태원장이라는 자리는 단순히 기관을 경영하는 자리가 아니라, 대한민국 생태계의 ‘최후의 보루’를 지키는 사령관이라 생각합니다. 학자로서 평생 가졌던 사명감을 이제 국가 정책의 현장에서 실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무거운 책임감과 동시에 큰 보람을 느낍니다. 우리 직원들에게도 항상 ‘우리는 국가의 녹을 먹는 프로이며, 정책 담당자들의 선생님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국내에서는 생물다양성에 대한 관심이 기후에 비해 꽤 뒤떨어져 있습니다. 

“흔히 ‘기후 다음은 생물다양성’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생물다양성 위기가 더 치명적입니다. 지구가 다른 행성과 달리 우주복 없이도 살 수 있는 대기 환경을 갖춘 건 모두 생물다양성 덕분입니다. 자연재해 대응도 마찬가지죠. 동일본 대지진 당시 곰솔(해송) 숲이 쓰나미를 막아냈고, 오래된 숲이 있는 신사 주변은 지반 침하가 적었습니다. 기후변화로 강해지는 자연재해를 막아줄 유일한 방패가 바로 생물다양성입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 생태계는 무너지고 있습니다. 한라산 구상나무가 고사하고, 소나무의 겨울눈이 제때를 잊고 싹을 틔웁니다. 이것은 단순히 ‘자연의 변화’가 아니라 ‘생존 환경의 파괴’입니다. ”

한국의 생물다양성 훼손의 심각성은 어떻게 진단하시며, 어떤 처방이 필요할까요.

“제 제자가 한라산 구상나무 연구를 했는데, 과거 해발 1200m에 살던 나무들이 이제는 1700~1800m까지 올라가야 겨우 살아남습니다. 소나무의 겨울눈도 추위를 견디기도 전에 싹이 나와버립니다. 벚꽃 개화 시기도 과거 음력 기준보다 2주 가량 빨라졌죠. 국립생태원은 이런 현상을 데이터화해 기후변화를 진단하고 예측하고 있습니다. 이런 생물다양성 변화에 따른 적절한 조치가 필요합니다. 구상나무를 예로 들면, 이들이 이동할 통로가 끊겨 있습니다. 식물이 기후 변화에 맞춰 이동할 수 있도록 돕는 ‘이동 보조’ 전략이 필요합니다. 단순히 나무만 옮겨 심는 게 아니라 풀밭→관목→주목→구상나무로 이어지는 생태계의 단계를 밟아 ‘스텝 바이 스텝’으로 길을 열어줘야 합니다.”

사진=국립생태원 제공

국제 사회는 기후 악당에 이어 '생물다양성 악당'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인데요.

“맞습니다. 이제 생물다양성은 국제적 약속이자 무역 장벽입니다. 유럽 등 선진국은 재생에너지를 안 쓰거나 생물다양성 약속을 안 지키는 기업의 물건을 사지 않으려 합니다. 생물다양성은 공공 자산이기 때문입니다. 이를 경제적으로 해석해 ‘자연 자본(Nature capital)’이라 부르며 복잡하게 접근하는데, 본질은 간단합니다. 국제사회의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자원 확보도, 제품 판매도 불가능한 시대가 오고 있습니다. 이제 생물다양성은 기업의 선심이 아닌, 생존 비용이 되고 있습니다.”

많은 기업이 ESG 경영을 위해 생물다양성에 관심을 갖지만, 정작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목소리가 큽니다.

“당연한 반응입니다. 탄소 배출권은 ‘숫자’로 명확히 환산되지만, 생물다양성은 그렇지 않거든요. “반도체 공장을 짓는데 주변 하천의 물고기 종수를 왜 따져야 하나?”라고 묻습니다. 현재 기업들이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째, 자사 비즈니스와 생태계의 연결 고리를 찾지 못한다는 것. 둘째, 복원 사업을 하려 해도 조경 회사에 맡기는 수준의 ‘가짜 복원’에 그친다는 것. 셋째, 공시(자연 관련 재무정보 공개 협의체(TNFD) 등)를 위해 필요한 객관적인 성과 데이터를 산출할 방법이 없다는 점입니다. AI 시대를 선도하는 기업들이 에너지는 엄청나게 쓰면서, 정작 그 기반인 자연 자본에 대한 투자는 기준조차 잡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죠.”

기업들은 자연 관련 재무정보 공개 협의체(TNFD) 원칙을 준수하고자 하지만, 적용이 어렵습니다.

“생물다양성 시스템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가 필요합니다. 많은 기업이 폐광지나 훼손지를 복원할 때 다른 산의 흙을 덮고 나무를 심습니다. 하지만 이는 비가 오면 다 떠내려가는 ‘가짜 복원’이 되기 쉽습니다. 풍화된 암석(돌가루)에 적정 비율의 유기물을 배합해 식물이 자생할 수 있는 ‘진짜 토양’부터 복원하고, 주변 생태계와 이질적이지 않은 식생을 조성해야 합니다. 특히 공급망 전반을 살펴야 합니다. 자사 공장뿐만 아니라 원료를 채취하는 해외 현지 생태계까지 네트워크를 활용해 진단하고 관리해야 합니다. 이때 생태원의 ‘에코뱅크(Eco-Bank)’ 시스템을 활용하면 복원 전후의 생물 종수 변화, 탄소 흡수량 증가 등을 과학적으로 측정할 수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홍보용 자료가 아니라, 글로벌 ESG 공시 표준에 그대로 쓸 수 있는 공신력 있는 ‘팩트북’이 됩니다.”

국립생태원이 기업들에 제공할 수 있는 또 다른 구체적인 지원책이 있습니까?

“기업들이 망설이지 말고 국립생태원에 자문을 요청했으면 합니다. 우리는 사후 성과 측정뿐만 아니라, 기업의 사업 부지가 속한 지역의 본래 식생 데이터인 ‘참조 생태 정보(Reference Information)’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하이닉스나 삼성 같은 대규모 공장을 지을 때, 주변 하천과 저수지를 생태적으로 연결하고 공장 내부에도 지역 특색에 맞는 숲을 조성해 하나의 생태 거점인 ‘에코 캠퍼스’ 모델을 만들 수 있습니다. 해당 토양의 성질과 깊이, 원래 살던 식물 세트(나무-관목-풀) 정보를 기업에 전달해 시행착오 없이 그 땅에 가장 적합한 숲을 설계하도록 돕는 것이죠. 전문 기관의 진단 없이 조경 회사에만 맡기면 TNFD 보고서에 담을 실질적인 성과를 내기 어렵습니다.”

기업들은 생물다양성 보전 활동을 하고 싶어도 전문 인력이 없어 어려움을 토로합니다.

“맞습니다. 그래서 저는 기업들에게 ‘국립생태원을 기업의 환경 전문 연구소로 활용하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이미 광해광업공단, 현대차, 네이버 등과 협력하며 모델을 만들고 있습니다. 네이버와는 독도 생태계를 보존하고 탄소 흡수원을 확보하는 협력을, 광해광업공단과는 폐광지의 진짜 흙을 만드는 복원 사업을 논의 중입니다. 현대차, KT&G 등과도 습지 보전 모델을 만들고 있죠. 기업이 업종별로 모여 교육을 신청하면, 우리는 맞춤형 프로그램을 짜서 자문할 수 있습니다. 예컨대 시멘트 회사라면 석회암 지대의 복원 모델을, IT 기업이라면 데이터 센터의 열기를 식히는 수변 생태계 복원 모델을 제공하는 식이죠. 기업이 국제 기준에 맞게 보고서를 낼 수 있도록 우리 국제협력팀과 사업부서가 원스톱으로 지원할 수 있습니다. TNFD 대응을 위해 해외 원료 채굴지나 물류 거점의 생태 리스크를 평가해야 할 때, 생태원의 국제 생태 네트워크를 활용하면 현지 진단과 복원 기획을 지원합니다.”

앞으로 국내 생물다양성 보전 및 회복을 위해 어떤 추가적인 조치가 필요할까요. 

“영국 등 선진국에서는 공장 등을 짓는 등 개발을 할 때 그에 상응하는 생물다양성 복원을 의무화하는 제도가 있습니다. 정도는 달리하더라도 이는 반드시 가야 할 길입니다. 과거 그린벨트 도입 때도 반발이 컸지만, 그때 지키지 않았다면 지금 우리 도시의 열섬 현상은 감당 못 했을 겁니다. 지자체 평가나 기업 ESG 평가도 더 정교해져야 합니다. 예를 들어, 옥상 녹화는 좋은 시도지만 땅에 심는 나무와 기능이 같을 수 없습니다. 땅의 면적을 넓게 차지하려는 ‘꼼수’가 아니라, 실제 생태적 기능을 회복하는 디테일한 제도가 필요합니다.”

구현화 기자 ku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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