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곧 끝난다”만 12번… 현실 벽 부딪힌 ‘종전 호소인’ 트럼프
잦은 말바꾸기·무용한 협상기술
美언론도 “늪 빠진 트럼프” 싸늘
지상군 투입땐 아프간보다 치명적

이란 전쟁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반복해 “우리가 승리했다. 승리하고 있다”고 말하지만 일반의 평가는 다르다는 지적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대다수 미국인들은 이번 전쟁의 성과에 의구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최근 미 여론조사기업 유거브(YouGov) 조사에서 미국민 29%만이 전쟁을 지지했고 63%는 반대했다. 반대 수치는 계속 오르는 중이다. 미 온라인 매체 악시오스는 30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전 개전 이후 12번이나 전쟁 종식이 임박했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으나 모두 실제와는 다르다고 지적했다.
전쟁의 승리는 당초 목표를 달성했느냐로 평가되는데, 사실 이번 이란전쟁은 달성과는 거리가 멀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란의 정권교체, 핵무기 물질 제거를 주요 목표로 내세웠지만 모두 실패했다. 이란 최고지도자와 지도부 수십명을 폭사시켰지만 이란 신정체제는 변함없다. 핵물질 파괴는 어느 수준에서 이뤄졌는지도 미궁이다. 핵개발 시설로 의심되는 곳을 폭격했으나 파괴됐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전쟁의 목적이 달성됐다며 종전을 선언하기 위해 파키스탄 등 중재국을 내세워 이란과 협상을 벌이고 있다. 반면 이란은 표면적으론 협상하지 않고 있다는 입장이다. 물밑으로는 중재국을 끼고 미국과 이란이 모두 종전안을 내놓으며 협상을 벌이고 있지만, 구체적 진행상황은 알려진 게 없다.
그럼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극도로 협상이 잘 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4월 6일까지 휴전을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그런가 하면 다른 한편에선 이란이 미국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하르그섬을 점령하거나 초토화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나아가 이란의 발전소와 담수화시설까지 공격하겠다고 경고했다. 협상의 지렛대를 삼기 위한 위협 카드로 해석될 수도 있지만, 그의 말마따나 “협상이 잘 진행되고 있다”는 게 사실이라면, 협상 상대를 위협하는 발언은 삼가는 것이 상식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말이 종잡을 수 없이 왔다 갔다 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전쟁이란 엄중한 상황에서 대통령의 말이 신뢰를 잃고 있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에 따라 시장은 그의 말과 반대로 움직이고 있다. 최근 뉴욕 증권시장은 확전 가능성으로 기울며 크게 하락했다.
영국의 일간지 가디언은 최근 칼럼을 통해 이 상황을 ‘거인들의 전투’(Battle of the titans)라고 명명하며, 트럼프 대통령의 왜곡된 현실 인식이 거대한 벽에 부딪혔다고 진단했다. 가디언은 트럼프가 수십 년간 고수해 온 운영 원칙, 즉 “스스로 내러티브를 구축하고 이를 진실이라 선언한 뒤 세계가 이에 복종하도록 강요하는 방식”이 이번 전쟁에서 한계에 직면했다고 분석했다.
이러한 방식은 맨해튼의 이사회장이나 리얼리티 TV쇼, 심지어 워싱턴의 권력 중심부에선 효과를 거두었을지 모르나 이란이라는 실체적 위협 앞에서는 트럼프 특유의 ‘진실한 과장’(truthful hyperbole)이 먹혀들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세네카 프로젝트의 공동 창립자 타라 세트마이어는 가디언과 인터뷰에서 “전쟁은 단순히 승리를 원한다고 해서 만들어지는 영역이 아니다”라며 대통령이 전쟁의 명분이나 승리의 정의를 명확히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 내 주요 언론들의 분석 역시 가디언의 시각과 궤를 같이한다.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 CNN 등은 공통적으로 미국이 이란의 완강한 저항에 부딪혀 진퇴양난에 빠졌다고 분석했다.
이들 매체들이 민주당 지지 성향이라는 점을 감안해도, 이란이 보이는 저항의 강도와 29일 사우디에서 4500억원에 달하는 조기경보기 AWACS의 피격 등 미군 피해 정도를 보면 정치적 레토릭으로만 볼 수 없다.
뉴욕타임스는 최근 보도에서 “미군이 이란의 복잡한 지형과 비정규전 전술에 고전하고 있으며, 당초 예상했던 단기전의 시나리오는 이미 폐기된 상태”라고 보도했다. 워싱턴포스트는 군사 전문가들을 인용해 “만약 미국이 현 교착 상태를 타개하기 위해 지상군 투입을 결정할 경우, 이는 아프가니스탄 전쟁보다 훨씬 더 치명적인 ‘출구 없는 소모전의 늪’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미 13명의 미군 전사자가 발생하고 수십억 달러의 전비가 투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란 정권의 장악력은 약화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분석이다.
CNN은 행정부 내부 소식통을 인용해 트럼프 대통령이 점차 이 전쟁에 ‘지루함’을 느끼고 있으며, 어떻게든 이를 ‘압도적 승리’로 포장해 빠져나갈 궁리를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것이 단순한 홍보 전략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타티셰 은테타 정치학 교수는 CNN에 “인플레이션, 주식시장 급락, 그리고 인기 없는 중동 전쟁이 트럼프의 지지율을 끌어내리고 있다”며 “한때 그의 강점이던 정책들이 이제는 가장 치명적인 약점이 됐다”고 분석했다.
미네소타 대학의 래리 제이콥스 교수는 이번 전쟁으로 “트럼프 신화가 해체될 것”이라며 “군사적이든 정치적이든 그는 이제 진실의 순간에 직면했다. 그동안 그가 구축해온 허구의 삶이 수많은 인명 피해와 경제 파탄을 초래하는 치명적인 비극으로 폭로되고 있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전황을 아무리 장밋빛으로 묘사하더라도 싸늘해진 민심이라는 ‘진실의 벽’을 넘기에는 역부족인 상황이다. 미국이 이란이란 수렁에서 가능한 빨리 발을 뺄 수 있을지, 아니면 더 깊게 빠져들지는 트럼프 대통령이 ‘내러티브’에서 벗어나 ‘냉혹한 현실’을 마주할 때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이규화 대기자 david@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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