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빛내리 "바이오와 AI가 만나면…'RNA 치료제 자판기' 상상"

"향후 인공지능(AI)이 리보핵산(RNA) 염기서열 설계부터 유전자 발현량, 전달 위치까지 예측할 수 있을 것입니다. 길게 보면 의사가 자판기 크기의 합성장치에서 RNA 치료제를 바로 처방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해봅니다."
김빛내리 기초과학연구원(IBS) RNA연구단장(서울대 생명과학부 석좌교수)은 31일 서울대 글로벌공학교육센터컨벤션에서 열린 바이오AI심포지엄 '바이오 AI-현실 격차, 어디에 존재하며 어떻게 메울 것인가'에 강연자로 나서 AI 바이오 시대의 미래 모습을 제시했다.
염기서열에 따라 유전정보를 저장하는 이중나선 구조의 디옥시리보핵산(DNA)과 달리 RNA는 단일 가닥으로 유전정보를 담는 동시에 기능을 수행하는 분자다.
김 교수는 크기가 작은 마이크로RNA 분야 세계적 권위의 연구자다. RNA는 이론적으로 모든 유전자를 치료 표적으로 겨냥할 수 있어 치료제로서의 잠재력이 크다. 염기서열만 알면 개발 속도도 빠르고 대량 생산 비용도 저렴하다.
아직 RNA 염기서열이 어떤 질병을 유발하거나 막을 수 있는지 바로 파악하는 수준까지 도달하려면 갈 길이 멀다는 평가다. 핵심은 양질의 데이터 부족이다.
김 교수는 "AI가 학습할 단백질과 비교해 RNA 구조 데이터가 부족하다"며 '좋은 질문'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잘 작동하는 RNA 분자 설계 모델 개발을 위해 설정한 목표를 기반으로 데이터를 쌓고 연구가 진행돼야 한다"며 "좋은 질문 없이는 돈을 들여 데이터를 생산하는 의미가 없다"고 밝혔다. 이어 "대량의 양질 데이터 확보를 위해선 학제 간 협력이 필수"라고 말했다.
남진우 한양대 생명과학과 교수도 "AI는 주어진 데이터 범위 내에서만 작동한다"며 "좋은 데이터를 만들기 위해 명확한 질문을 설정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양질의 데이터를 만들기 위한 첨단 기술 개발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현숙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는 "양질의 대량 데이터를 생성·공유하는 데 주도권을 가져야 한국이 AI-바이오 분야에서 선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고영일 서울대 의대 교수는 면역 노화 관련 질환 연구에서도 AI가 활용될 수 있다"고 봤다. 고 교수는 "기존에 개별적으로 진행했던 다량의 세포 단위의 데이터와 장기 수준 데이터를 AI로 연결할 수 있을 것"이라며 오가노이드 개발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
AI가 일자리를 뺏는다는 우려에 남 교수는 "데이터가 부족한 분야는 AI가 대체할 수 없다"며 "바이오데이터, 특히 뇌과학 분야는 우리가 모르는 부분이 너무 많고 뇌 회로와 연결성이 복잡해 AI를 활용하면 오히려 인간의 역할이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 "신약 개발 AI, 작은 부분부터 빨리 적용해야"
이날 심포지엄에서는 신약 개발 AI를 중심으로 바이오 기업들의 전략도 제시됐다. 개발 성공률을 높이는 '거대 담론'보다는 우선 작은 요소부터 AI를 적용하는 것이 기업 경쟁력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전통적인 신약 개발은 보통 10년에서 길게는 20년까지 걸리지만 성공률은 5%에 그친다. 개발 속도와 성공률 모두 개선 여지가 많다는 뜻이다.
국내 바이오기업 오스코텍 윤태영 대표는 현 단계에서 개발 성공률 향상보다 개발 속도 개선에 우선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AI는 조합과 최적화를 통해 개발 속도를 높이고 후보 물질을 선별하는 데 강점이 있지만 질병이나 현상의 인과관계를 규명하는 데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충분한 지식과 데이터를 갖춘 분야부터 적용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분석이다.
기업 연구자의 AI 활용 문턱을 낮춰 아주 자질구레한 부분까지 AI로 생산성을 높이도록 하는 지원체계 마련도 강조됐다. 윤 대표는 "작은 곳부터 활용 범위를 넓히는 접근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김우연 KAIST 화학과 교수는 "현재 AI 바이오 선도 기업들은 기존에 알려진 약물과 데이터를 적극 활용해 신약 설계를 가속해 효율성은 높지만 완전히 새로운 타겟 발굴에는 한계가 있다"며 "정부 역할과 산업계 역할을 분리해서 내실 있는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약 투자 자문위원으로 활동 중인 정남진 전 삼성바이오로직스 부사장은 "정부가 바이오 업계 전반이 활용할 수 있는 바이오파운데이션 모델을 구축하고 기업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행사를 주관한 석차옥 갤럭스 대표(서울대 화학부 교수)는 "바이오 지식과 데이터 축적 위에 AI가 결합되면서 바이오 학문과 산업이 변곡점에 진입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병구 기자,문혜원 인턴기자 2bottle9@donga.com,moon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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