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다의 오판에 멈춰버린 전기차 생산…상장 후 첫 '적자 쇼크'
중국·관세·캐즘 3중고가 주요인
68년 만에 첫 6.4조원 손실 추산
소니 합작 모델 '아필라' 중단해
로봇산업도 '아시모' 후 진전 없어
하이브리드 전환으로 반전 모색

“미래에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창자가 끊어질 듯한 심정으로 결단했습니다.”
일본 혼다의 미베 도시히로 사장은 3월 12일 글로벌 전기차 시장을 겨냥한 핵심 모델 ‘제로 시리즈’ 개발 계획을 백지화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일본 자동차의 양대 산맥 혼다가 전기차 시장에서 사실상 항복을 선언한 것이다. 혼다와 소니가 손잡고 추진하던 프로젝트까지 중단되면서 일본 자동차 산업의 전동화 경쟁력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전기차 양산 직전에 개발 중단
31일 니혼게이자이 아사히신문 등 일본 언론에 따르면 혼다는 2025~2026회계연도(2025년 4월∼2027년 3월)에 최대 2조5000억엔(약 23조2000억원)의 손실을 낼 것으로 추산된다. 앞서 혼다는 2025회계연도 순손익 전망치를 3000억엔 흑자에서 6900억엔(약 6조4000억원) 적자로 조정했다. 혼다가 이대로 적자를 기록할 경우 1957년 상장 이후 최초가 된다.
전기차 양산 직전 개발 중단을 선언하면서 막대한 적자를 떠안게 된 것이다. 혼다 제로 살룬, 혼다 제로 SUV, 아큐라 RSX 등 혼다의 신형 전기차 3종은 출시를 눈앞에 두고 있었다. 미국 오하이오 공장은 생산설비를 이미 마쳤고, 딜러 교육과 브로슈어 인쇄까지 준비한 상황이었다.
혼다는 지난 2021년 미베 사장 취임 이후 2040년까지 모든 신차를 전기차와 수소차로 전환한다는 목표를 제시하는 등 급진적 개혁을 추진해왔다. 그는 “리스크를 감수하지 않고 충분히 확인한 뒤 움직여서는 세계를 선도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전기차 전환에 소극적이던 하치고 다카히로 전 사장 시절과 달리 끊임없이 가속 페달을 밟았다. 미베 사장은 2024년 전기차와 소프트웨어에 2030년까지 10조 엔을 투자한다는 계획을 내걸고 “충분히 회수할 수 있다”고 단언했다. 제로 시리즈는 전기차 중심 전환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BYD 등 중국 전기차와 가격 경쟁에서 밀린 데다, 트럼프발(發) 관세 충격, 전기차 캐즘(수요 정체) 등 삼중고를 이기지 못하고 대규모 적자를 기록했다. 미베 사장은 “관세 영향과 내연기관 하이브리드 모델의 수익성 악화 등 여러 요인에 따라 자동차 사업이 매우 심각한 수익 위기에 처했음을 인식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미베 사장을 비롯한 혼다 임원들은 실적 악화에 책임을 지고 2026회계연도 급여를 일부 반납하기로 했다.
◇테슬라 잡겠다더니…소니 합작도 물거품
‘테슬라 대항마’로 주목받았던 소니와의 합작 모델 ‘아필라’도 출시 전 프로젝트가 중단됐다. 소니·혼다는 미국에서 예약 판매를 실시했던 전기차 ‘아필라 1’과 2028년 이후 출시를 목표로 개발 중이었던 후속 모델 판매를 모두 중단하기로 했다.
아필라는 일본을 대표하는 소프트웨어 업체인 소니와 하드웨어 기업 혼다의 ‘드림팀 산물’로 주목받았다. 2022년 설립된 소니·혼다는 아필라를 ‘움직이는 엔터테인먼트 플랫폼’으로 규정했다. 닛케이는 “소니그룹의 디지털 기술과 혼다의 생산 기술을 융합해 미국 테슬라에 대항할 일본 연합으로 기대를 모았다”며 “자동차를 새로운 엔터테인먼트 이용 공간으로 규정했던 소니의 전략도 수정이 불가피해졌다”고 전했다.
혼다의 오판은 전기차만이 아니다. 혼다는 일찌감치 로봇 산업에 주목해 2000년대 초반 이족보행 로봇 ‘아시모’를 선보였다. 하지만 이후 뚜렷한 성과를 내놓지 못하고 2018년 추가 개발을 포기했다. 이후 로봇 시장은 테슬라의 ‘옵티머스’와 현대자동차의 ‘아틀라스’가 주도하고 있다.
일본에선 ‘기술의 혼다, 마케팅의 도요타’라는 말이 있다. 자동차 업계 1위는 도요타지만, 수익보다 기술 혁신을 우선하는 혼다는 오랫동안 일본 제조업의 자존심으로 꼽혀왔다. 브레이크의 신기술로 인정받는 ABS, 차량용 내비게이션 등도 모두 혼다가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이 때문에 일본에서 혼다의 전기차 항복 선언이 주는 충격파는 클 수밖에 없다.
혼다는 5월 새 경영전략을 발표한다. 향후 하이브리드 중심 전략으로 전환해 반전 기회를 노린다는 전략이다. 가격경쟁력에서 밀린 중국용 전기차는 처음부터 다시 개발한다는 계획이다. 혼다는 하이브리드차 판매를 2025년 100만대에서 2030년 2.2배인 220만대까지 늘릴 계획이지만, 전기차에 집중해왔던 탓에 개발 중인 하이브리드차가 작아 당장 도요타 현대자동차 등에 맞서기는 어려울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경영 효율화를 위한 닛산과의 통합 논의도 진전이 없다. 닛케이는 “2025년 통합 협상 당시에는 혼다가 우위였지만, 힘의 균형이 변해 협업 성사까지는 시간이 더 걸릴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최만수 기자 bebo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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