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캄보디아 떠난 피싱 조직, 다음 거점지는 ‘카자흐스탄’ 유력
모집책 “관(官) 작업해둔 상태라 단속 정보는 사전 파악 가능” 안심 시키기도
(시사저널=이태준 기자)

캄보디아 내 대규모 범죄 단지에서 발생한 취업 사기와 감금 사태, 이른바 '캄보디아 사태'가 대한민국 사회에 충격을 준 지 5개월이 흘렀다. 2022년 10월 캄보디아의 코로나19 입국 제한 해제 직후 본격화된 이 사태는 2024년 8월 한 언론사의 최초 보도를 거쳐, 1년 뒤인 2025년 10월 즈음부터 본격적으로 공론화됐다.
한국인들의 대규모 감금 사태가 공론화된 이후 5개월이 지난 현재, 동남아 현지의 범죄 지형은 급격한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시사저널 취재진은 지난 3월 30일부터 31일까지 텔레마케터(TM) 입사를 가장해 태국에 거점을 둔 모집책들과 접촉함으로써 이들의 내부 동향을 추적했다.
취재진과 접촉한 모집책 A씨는 "코리안데스크(경찰)가 동남아에 깊숙이 침투하면서 캄보디아를 거점으로 둔 조직은 사실상 전원 철수한 상태"라며 "다음 행선지로 카자흐스탄을 노리고 있다"고 밝혔다.
카자흐스탄이 차기 거점으로 낙점된 이유는 한국 수사당국의 감시망을 피하기 용이해서다. A씨는 "태국이나 베트남은 캄보디아에 비해 소탕 작전 규모가 크지 않았지만, 경찰의 감시가 늘어난 것은 사실"이라며 "수사망으로부터 자유로운 카자흐스탄으로 이동하기 위해 현지 숙소 등을 알아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지 경찰관 스파이를 포섭하는 이른바 '관 작업'에 대한 자신감도 내비쳤다. 그는 "이미 관(정부기관) 작업을 마친 상태라 단속 정보는 사전에 파악할 수 있다"며 "단속 우려 때문에 일을 주저할 필요는 없다"고 취재진을 안심시켰다.

'2시간'이면 보이스피싱 교육 끝
조직은 여전히 고액 수익을 미끼로 한국 청년들을 유인하고 있었다. "한 달에 600만원 정도 벌 수 있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A씨는 "초보자도 최소 500만원에서 800만원까지는 충분히 가져갈 수 있다"고 답했다.
범죄 수법은 더욱 구체적이고 분업화된 양상을 보였다. A씨에 따르면 신규 인력은 현지 합류 후 2시간 만에 보이스피싱 업무를 숙지한다. 검찰 수사관을 사칭해 하루 500여통의 전화를 돌리면 이 중 1~2명이 속아 넘어가며, 1인당 피해 금액은 5000만원에서 1억원에 달한다. 1차 행동책이 대상을 포섭하면 2차·3차 행동책이 금품을 갈취하는 체계적인 시스템이다.
인적 구성에서의 변화도 포착됐다. 과거 캄보디아 사태 당시 조선족 등 외국인이 한국인을 납치·감금해 논란이 됐던 것과 달리, 현재는 한국인 중심으로 조직을 재편하고 있다. A씨는 "지금은 한국인밖에 없으며, 20대 중반에서 30대 초반만 선발한다"며 "은행 업무 시간과 유사한 근무 환경과 퇴근 후 자유 시간을 보장한다"고 구직자들을 설득했다.
범죄 조직이 거점 이동을 서두르는 배경에는 한국 정부의 전방위적인 압박이 자리 잡고 있다. 경찰은 로맨스스캠 등 해외 거점 사기 조직의 특성을 고려해 아시아권 국가들과의 업무협약(MOU) 체결에 박차를 가하는 중이다.
시사저널이 확보한 '경찰청 외국기관 업무협약 현황(참고 기사 ☞ [단독] 로맨스스캠 범죄 피해액 1년 새 '2배' 폭증)'에 따르면, 경찰은 지난해 11월 중국 공안부와 '스캠단지 공동대응' MOU를 체결한 데 이어 캄보디아 경찰청과는 '공동전담반' 운영에 합의했다. 지난 2월에는 말레이시아 경찰청과 신규 MOU를 체결하며 동남아시아 지역을 잇는 이른바 '스캠 벨트(Scam Belt)' 수사망을 촘촘히 구축하고 있다.
정부의 소탕 의지 역시 단호하다. 모집책 A씨는 "이재명 대통령이 범죄 조직 소탕을 천명한 이후 한국 경찰의 움직임이 눈에 띄게 빨라졌다"고 토로했다. 실제로 이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국제범죄조직이 한국인을 범죄에 이용하면 반드시 패가망신한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며 초국가적 범죄 근절 의지를 밝힌 바 있다. 이에 따라 출범한 '초국가범죄 특별대응본부'는 지난 1월 캄보디아 대학생 살인 사건 연루 스캠 조직 총책을 검거하는 등 성과를 내고 있다.

"국제적 연합 대응 체계 구축 시급"
이 같은 강력한 대응에도 불구하고 태국 등 현지 보이스피싱 조직의 활동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수사당국의 압박이 거세질수록 이들은 더욱 은밀하고 신속하게 움직이며 구직자들을 유혹하고 있다.
실제 취재 과정에서 확인된 이들의 접근 속도는 매우 빨랐다. 취재진이 접촉을 시도한 4명의 모집책 중 검찰 사칭 A씨와 군부대 사칭 B씨 등 2명이 즉각 응답했다. 취재 시작 1시간도 되지 않아 전체 모집책의 절반과 연락이 닿은 셈이다.
이는 정부의 소탕령 속에서도 해외 범죄 조직이 국내 구직자들에게 얼마나 손쉽게 손길을 뻗치고 있는지를 방증한다. 전문가들은 스캠 조직의 접근을 원천 차단하기 위한 사이버 감시 체계 강화와 실시간 모니터링 수사 확대를 주문하고 있다.
박미랑 한남대 경찰학과 교수는 청년층의 범죄 가담 원인으로 배금주의적 사회 풍토를 지적하며 "모집책에 대한 접근을 선제적으로 차단해 해당 행위가 국가의 엄중한 관리 대상임을 분명히 각인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거점 다변화에 따른 수사 공백 우려도 제기됐다. 박 교수는 "코리안데스크가 없는 카자흐스탄 등으로 조직이 이동할 경우 현지 당국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다"며 "개별 국가 차원을 넘어선 국제적 연합 대응 체계 구축이 시급하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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