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R현장] "카카오 기사님, 왜...운전대를 잡지 않으시나요? 전 아직 하고싶은 일이 많습니다"
먹고 사느라 운전면허증을 또래보다 늦게 딴 편이다. 그런 이유로 젊은 시절 친구들과 렌트카를 빌려 놀러갈 때면 항상 조수석에 앉아 안전운전을 기원하는 주술사 겸 광대가 되어야 했다. 운전을 교대하는 친구들은 뒷좌석에 앉아 나른한 몸을 누인체 마치 회장님처럼 "내 차례가 되면 불러"라며 휴식을 취했고, 그들을 위해 순번을 지정하는 영원한 불침번도 바로 기자였다.
어느날인가. 부산 여행을 갈 때였다. 그날도 조수석에 앉아 안전운전을 기원하는 주술사가 되어 열심히 청동거울과 방울을 흔드는 한편 녀석의 그 더럽고 탐욕스러우며 오만한 주둥아리에 친근한 미소와 함께 과자를 처 넣어주던 찰라, 갑자기 간밤에 일한 여파가 몰려오며 잠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아아. 안돼. 버텨야 해. 그렇게 꾸벅거리며 현실과 환상의 경계에서 의식이 날아가려던 때 운전하던 친구가 확 내 손목을 잡아 끌었다.
한심하다는 얼굴로 기자를 내려다보고는 운전대를 잡고있는 자신의 손을 가리키며 말했다. "너, 내가 지금 뭘 잡고 있는 것 같니" "글쎄? 운전대?" "아니, 너의 목숨줄이야"

"자율주행에 맡겨보세요"
3월 30일 밤 10시, 서울 강남대로. 봄비가 거세게 쏟아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눈부신 밤의 결정을 볼때면 옛 생각이 난다. 부산 해운대에서 헌팅에 성공해 "나 이제 장가갈거야"라고 외치던 그 녀석은 아직도 잘 먹고 잘 살고 있을까? 여전히 자신이 정상인이라 생각하고 있겠지? 불현듯 연락이 끊긴 친구와의 추억이 새록새록 솟아난다.

카카오모빌리티가 지난 16일부터 강남 일대에서 시범 운행을 시작한 자율주행 택시 서비스다. 이런건 못참지. 일반 택시를 부르듯 목적지를 입력하고 호출 버튼을 눌렀다.
기아 EV6 한 대가 소리 없이 미끄러져 왔다.

사방을 빈틈없이 감시하는 이 장비 덩어리가 곧 차량의 '눈'이다. 현장에서 만난 임인호 카카오모빌리티 책임연구원은 "습기 제거 모듈까지 자체 설계했고, EV6뿐 아니라 다른 차종에도 확장 장착할 수 있도록 모듈형으로 만들었다"면서 단순한 시범 차량이 아니라 양산을 염두에 둔 설계라는 뜻이다.
문을 열고 탑승했다. 차 안은 일반 택시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한 가지, 뒷좌석 정면에 설치된 전용 스크린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카카오모빌리티가 'AVV(자율주행시각화장치)'라 부르는 이 화면에는 차량이 실시간으로 인식하고 있는 세상이 그래픽으로 펼쳐져 있었다.

유연한 AI와 엄격한 규칙의 이중주
출발 버튼이 눌리자 차는 스스로 속도를 올려 강남대로 차량 흐름에 합류했다.
운전석에는 법령에 따라 동승하는 세이프티 드라이버가 앉아 있었지만 그의 손은 핸들 위에 올려져 있을 뿐 어떤 조작도 하지 않았다. 갑자기 트라우마가 올라온다. 안전운전을 기원하는 주술사로 변신하려고 했다. 제 목숨줄을 놓지 말아주세요. 그러나 시간이 지나니 조금씩 편안해지기 시작했다. 물론 핸들이 저절로 미세하게 회전하는 광경은 처음엔 다소 기이했지만, 몇 분이 지나자 오히려 사람이 운전하는 것보다 더 부드럽다는 인상을 받았다.
카카오모빌리티의 자율주행 시스템은 인지부터 판단, 제어까지 하나의 통합 AI 모델이 수행하는 'E2E(End-to-End)' 방식을 채택했다.
테슬라가 자율주행에 적용한 것과 같은 접근법이다. 센서가 수집한 데이터를 사람이 설계한 규칙에 따라 단계별로 처리하는 전통적 방식과 달리 AI가 센서 입력을 직접 받아 주행 명령을 출력한다.
카카오모빌리티는 여기에 한 겹을 더 얹었다. 교통 법규 준수와 안전 원칙을 강화한 규칙 기반 플래너를 병행 적용한 것이다. '유연한 판단'과 '엄격한 규칙'을 동시에 작동시키는 구조다. 임 책임연구원의 표현을 빌리자면 AI의 창의적 판단력에 안전이라는 철제 가드레일을 씌운 셈이다.


우회전, 유턴, 터널… 강남의 난코스를 돌파하다
시승 코스 자체가 쉽지는 않았다. 우회전, 좌회전, 유턴, 그리고 매봉터널 통과까지. 자율주행의 기술적 난이도를 고루 시험할 수 있는 구간이 산적했다.
먼저 우회전 구간이다. 차량은 반대편에서 접근하는 차량을 즉시 인지했고 횡단보도 앞에서는 보행자 신호가 완전히 끝날 때까지 꼼짝 않고 기다렸다.
한국 도로에서 우회전은 보행자 사고가 빈번한 구간이다. 사람 운전자라면 "지금 가도 되겠지" 하는 순간적 판단에 기대지만 이 차는 그런 타협을 하지 않았다. 보행자 안전을 최우선에 두겠다는 설계 철학이 체감되는 지점이다.
그리고 유턴. 유턴은 어느정도 운전에 익숙한 운전자도 긴장하는 난이도 높은 기동이다. 상당한 수준의 상황판단과 빠른 움직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차량은 유턴 전용 차선을 미리 인지해 여유 있게 진입한 뒤 대기했고, 신호가 바뀌자 매끄럽게 회전해 2차선에 안착했다.
운전석의 핸들이 빠르게 돌아가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그럼에도 세이프티 드라이버의 손은 여전히 핸들 위에 가볍게 얹혀 있을 뿐이라 더 신기했다. 신기한데 안전하고 안전한데 신기해서 도파민이다.
그리고 가장 기대했던 구간인 매봉터널이 나왔다. 사실 터널은 자율주행의 대표적인 기술적 난코스다. GPS 신호가 완전히 차단되기 때문이다. 인간 운전자라면 아무런 차이를 느끼지 못하지만 위성 신호도 활용하는 자율주행차에게 터널 진입은 순간적으로 눈을 감는 것과 같다.
어떨까. 차량은 터널 안에서도 일반 도로와 전혀 다름없이 안정적으로 주행했다. 약간 두근거리며 무언가를 기대했던 기자가 민망할 정도로 안정적이다. 주변을 지나는 차량들의 데이터가 실시간으로 보이는 와중에서 정말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빗방울과 라이다, 그리고 4테라바이트의 밤
이날 시승에는 예정에 없던 변수가 있었다. 비였다. 거세게 쏟아지는 빗줄기는 자율주행 차량에게 일종의 고난도 시험이나 마찬가지다.
특히 라이다 센서는 레이저를 쏘아 반사되는 빛으로 주변 물체를 인식한다. 이런 가운데 빗방울 하나하나가 레이저를 산란시켜 '있지도 않은 물체'로 오인하면 문제다.
흥미로운 것은 이런 악천후 주행 데이터조차 카카오모빌리티에게는 '자산'이 된다는 점이다. 실제로 임인호 카카오모빌리티 책임연구원은 "차량 한 대가 하루 8시간을 주행하면 약 4TB의 데이터를 수집한다"며 "이 중 학습에 유용한 데이터를 선별해 AI 모델에 반영하는 방식으로 시스템을 지속적으로 고도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비 오는 강남 밤거리의 주행 데이터, 끼어드는 차량에 대한 대응 기록, 터널 안에서의 측위 보정 정보. 이 모든 것이 AI 오토라벨링 기술을 거쳐 자율주행 모델의 '경험치'로 쌓인다는 뜻이다.
카카오모빌리티 측이 자신하는 부분도 바로 이 데이터 파이프라인이다. 임 책임연구원은 "우리의 핵심 기술력은 데이터를 수집하고, 그것을 학습에 활용하는 파이프라인을 갖추고 있다"면서 "플랫폼과 자율차를 동시에 운영하기 때문에 다른 자율주행 개발사가 얻을 수 없는 고객 데이터, 실제 운행 데이터, 내비게이션 경로 데이터까지 복합적으로 확보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3800만 카카오 T 가입자가 매일 만들어내는 이동 데이터, 베테랑 택시 기사들의 경로 선택, 대리운전 기사들이 마주하는 심야 이면도로의 돌발 상황까지. 10년간 쌓인 이 방대한 '도로 위 실전 데이터'가 자율주행 AI의 양분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한편 카카오모빌리티는 지난 2018년부터 ▶모듈화된 자율주행 센서 구조물인 'AV-Kit'를 통해 실시간으로 도심 운행데이터를 수집해왔다. 수집된 데이터는 ▶AI 기반 지능형 오토라벨링(Auto-labeling) 기술로 가공해 ▶자체 개발한 'AI 데이터 파이프라인'으로 자율주행 모델 학습에 즉각 반영되며, 이를 통해 방대한 데이터를 스스로 학습하는 자율주행 AI를 지속적으로 고도화해 왔다.
자율주행의 두뇌 역할을 하는 ▶인지ᐧ판단 시스템은 AI 기술을 집약한 독자적인 주행 알고리즘으로 고도화했다. 서울자율차는 딥러닝 기반의 '도심 특화 인지 코어 모델(Perception Core Model)'을 적용해 복잡한 도로 환경에서도 신호등과 보행자 등 주변 사물을 빈틈없이 식별한다.

웨이모가 온다면? "한국 도로는 우리가 더 잘 안다"
시승을 마치고 내린 뒤, 자연스럽게 화제는 글로벌 경쟁으로 흘렀다.
구글 웨이모를 비롯한 해외 자율주행 기업들의 한국 진출 가능성에 대해 묻자 현장의 반응은 의외로 담담했다. "웨이모가 한국에 들어오더라도 로컬라이제이션, 즉 한국 도로 환경에 맞는 학습을 처음부터 해야 한다"는 자신감이다.
강남의 좁은 골목, 이면도로의 불법 주정차, 무단횡단, 오토바이의 예측 불가능한 움직임. 한국 도로만의 고유한 변수들은 미국 도로에서 수십억 마일을 달린 AI라 해도 한국에서 다시 배워야 할 영역이다. 임 책임연구원은 "우리는 우리대로 데이터를 축적하며 모델을 고도화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달리는 만큼 똑똑해지는 밤
약 12분간의 시승이 끝났다. 내리면서 드는 감상은 '생각보다 평범하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곧 깨달았다. 그 '평범함'이야말로 자율주행 기술이 도달해야 할 궁극의 경지라는 것을.
놀라움도 불안함도 없이, 그저 평소 타던 택시처럼 편안하게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 카카오모빌리티의 서울자율차는 그 경지에 상당히 근접해 있었다.
물론 아직 남은 과제도 있다. 목적지 변경이나 경유지 추가 같은 편의 기능도 아직 지원되지 않는다. 기상이 심하게 악화되면 운행이 중단되기도 한다. 세이프티 드라이버의 동승 역시 현행법상 불가피한 제약이다. 그러나 카카오모빌리티는 달리면 달릴수록 더 똑똑해진다. 그리고 강력해진다. 늦은 밤부터 새벽까지 현장에 나와 뜨거운 열정을 불태우며 자율주행의 꿈을 벼려가는 현장의 연구원들. 그리고 홍보인들도 사명감을 굳게 잡은체 말 그대로 활활 타오르고 있다.
한편 서비스는 평일 밤 10시부터 새벽 5시까지 강남 일대에서 운영되며, 4월 6일부터 유상 서비스로 전환된다. 요금은 시간대에 따라 4800원에서 6700원. 심야 택시비에 비하면 파격적인 가격이다.
카카오모빌리티는 이 야심찬 서비스를 '피지컬 AI 기업'으로의 전환을 위한 교두보로 삼고 있다. 단순한 수수료 기반 플랫폼을 넘어 AI가 물리적 세계에서 직접 움직이는 미래 모빌리티 시대의 주도권을 잡겠다는 포석이다. 자율주행 택시, 배송 로봇 '브링', 자율주행 주차 로봇까지. 10년간 쌓아 올린 이동 데이터 위에서 카카오모빌리티의 AI는 매일 밤 강남의 도로를 달리며 조금씩 더 똑똑해지고 있다.
비가 그친 새벽 강남대로를 걸으며 돌아보니, 루프 위에 센서 킷을 얹은 EV6 한 대가 소리 없이 다음 승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운전대를 잡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제, 트라우마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