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가고 원전·SMR 온다… ‘회색 콘크리트’ 벗고 ‘에너지 디벨로퍼’ 입는 건설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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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발 에너지 위기가 건설업계의 판을 바꾸고 있다. 국내 주택 경기 침체가 장기화한 가운데, 중동 정세 불안으로 촉발된 에너지 안보 리스크가 맞물리면서 대형 건설사들이 원전, 소형모듈원전(SMR), 태양광, 수소, 송전망 등 에너지 사업으로 빠르게 무게중심을 옮기고 있다.
대형 원전뿐 아니라 SMR, 수소, 태양광, 해상풍력 등으로 사업 축을 넓히며 주택 중심 수주 구조를 글로벌 에너지 인프라 중심으로 바꾸려는 흐름이 뚜렷하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중동발 에너지 위기로 원자재 가격과 공급망 불안이 겹치면서 주택 사업의 불확실성이 더 커졌다"며 "금리와 PF 부담, 분양 심리 위축까지 동시에 작용하면서 사실상 주택만으로는 실적을 방어하기 어려운 국면에 들어섰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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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S·현대·DL·삼성, SMR·PPA·전력망 등 전주기 밸류체인 확보 경쟁
AI·RE100 수요 급증에 전력 확보 ‘기업 경쟁력’…에너지 인프라 전략 가치 부상

중동발 에너지 위기가 건설업계의 판을 바꾸고 있다. 국내 주택 경기 침체가 장기화한 가운데, 중동 정세 불안으로 촉발된 에너지 안보 리스크가 맞물리면서 대형 건설사들이 원전, 소형모듈원전(SMR), 태양광, 수소, 송전망 등 에너지 사업으로 빠르게 무게중심을 옮기고 있다. 단순 시공을 넘어 설계·조달·시공(EPC), 운영, 전력 공급까지 아우르는 '에너지 디벨로퍼'로의 전환이 가속화되는 흐름이다. 업계에서는 “주택 의존 구조로는 불확실성을 버티기 어려운 상황에서, 에너지 인프라가 사실상 대체 성장축으로 부상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31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가장 눈에 띄는 곳은 GS건설이다. GS건설은 최근 정기 주주총회에서 '신재생에너지 발전 및 판매 관련 사업'을 정관상 신규 사업목적에 추가했다. 이는 태양광 발전소를 시공하는 수준을 넘어 직접 발전소를 운영하고 생산 전력을 판매하는 사업자로 확장하겠다는 선언에 가깝다. 이미 충남 태안 창기 태양광 발전소를 기반으로 기업 대상 직접전력구매계약(PPA) 사업에 나섰고, LG유플러스와 20년 장기 전력 공급을 위한 MOU를 체결했다.

직접 PPA는 이미 제도화돼 있으며, GS건설 사례는 발전사업자가 기업과 장기 계약을 맺는 민간 조달 모델이 실제 사업화 단계로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민간 주도의 자율적인 에너지 거래 시장이 열리는 신호탄으로 해석된다. 특히 삼성전자 등 RE100 대응이 필요한 대기업들은 수출 경쟁력 유지를 위해 재생에너지 전력 확보가 절실한 상황이다. GS건설이 태양광 중심으로전기를 공급하면, 기업들은 보다 안정적인 가격에 RE100 대응 기반을 마련할 수 있다.
GS의 '전력판매'·현대의 '원전 밸류체인'·DL의 'SMR 기술'·삼성의 '글로벌 인프라'
현대건설은 원전과 에너지 인프라를 중심으로 포트폴리오 재편 속도를 높이고 있다. 이한우 대표는 지난해 3월 '에너지 전환 리더'를 내세우며 2030년까지 에너지 분야 매출 비중을 21%까지 높이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이달 이탈리아 로마에서 글로벌 건설사 위빌드와 대형 인프라 및 양수발전 협력을 위한 전략적 업무협약(MOU)을 체결했고, 핀란드 헬싱키에서는 웨스팅하우스와 함께 신규 원전 건설 심포지엄을 열며 북유럽 시장 공략에도 나섰다. 대형 원전뿐 아니라 SMR, 수소, 태양광, 해상풍력 등으로 사업 축을 넓히며 주택 중심 수주 구조를 글로벌 에너지 인프라 중심으로 바꾸려는 흐름이 뚜렷하다.
현대건설이 제시한 'H-로드(H-Road)' 전략은 단순한 포트폴리오 다변화를 넘어선다. 2030년까지 에너지 매출 비중을 21%로 끌어올리겠다는 선언은 주택 경기와 무관하게 작동하는 독립적인 성장 엔진을 확보하겠다는 뜻에 가깝다. 업계에서는 과거 건설업 매출이 분양 시장 상황에 따라 크게 흔들리는 주택·건축 부문에 집중돼 있었던 만큼, 에너지 비중을 20% 이상으로 확대할 경우 원전과 해상풍력 등 국가 단위 장기 프로젝트가 실적의 하방을 지지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현대건설 역시 대형 원전과 SMR, 원전 해체 등 전 주기 밸류체인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DL이앤씨는 한 단계 더 들어가 기술 축적형 사업에 승부를 걸고 있다. DL이앤씨는 미국 엑스에너지와 약 1000만달러 규모의 'SMR 표준화 설계' 계약을 체결했다. 국내 건설사가 SMR의 표준화 설계를 직접 수행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표준화 설계는 발전소 내 각 설비의 연계 구조를 정형화해 공장에서 미리 제작하고 현장에서 조립하는 모듈러 방식의 효율을 극대화하는 작업이다. 같은 설계를 반복 적용해 공기와 비용을 낮출 수 있어 향후 후속 프로젝트 확장성도 높다. 단순 시공을 넘어 설계 역량과 기술 내재화를 확보하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의미가 작지 않다.
DL이앤씨가 추진하는 SMR 표준화 설계의 핵심은 모듈러다. 이는 원자력 발전소를 짓는 방식을 기존의 현장 중심 토목공사에서 공장 제작과 현장 조립 중심의 '제품 조립형' 모델로 바꾸는 시도다. 기존 대형 원전이 현장에서 콘크리트를 타설하며 수년간 건설되는 구조라면, SMR 모듈러 방식은 주요 부품을 공장에서 미리 제작한 뒤 현장에서 레고처럼 조립하는 개념에 가깝다. 이 경우 공사 기간을 줄일 수 있고, 금융 비용 절감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한 번 표준화된 설계를 완성하면 동일한 품질의 발전소를 여러 프로젝트에 반복 적용할 수 있다는 점도 강점이다.

삼성물산 건설부문 역시 카타르 태양광 프로젝트와 탄소 압축·이송 설비(CCS 인프라), 호주 HVDC(초고압직류송전) 등 글로벌 에너지 인프라로 포트폴리오를 확대하는 동시에 SMR 분야 글로벌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삼성물산은 미국 뉴스케일파워에 대한 전략적 투자를 바탕으로 루마니아 등 동유럽 SMR 시장 진출도 추진하고 있다.

건설업계와 에너지업계에서는 최근 대형 건설사들의 사업 재편을 두고 “단순한 신사업 추가가 아니라 생존 방식 자체를 바꾸는 흐름"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중동발 에너지 위기로 원자재 가격과 공급망 불안이 겹치면서 주택 사업의 불확실성이 더 커졌다"며 “금리와 PF 부담, 분양 심리 위축까지 동시에 작용하면서 사실상 주택만으로는 실적을 방어하기 어려운 국면에 들어섰다"고 말했다. 이어 “에너지 안보 이슈가 부각되면서 국가 단위 발주가 이어지는 원전과 전력 인프라 쪽으로 사업 무게중심이 이동하는 것은 불가피한 흐름"이라고 덧붙였다.

에너지업계에서는 중동발 에너지 안보 리스크가 확대되면서 건설사들의 전략 전환을 앞당긴 핵심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 에너지업계 관계자는 “중동 정세 불안으로 에너지 공급망 리스크가 현실화되면서 전력의 '안정적 확보' 자체가 기업 경쟁력으로 떠오르고 있다"며 “특히 AI 데이터센터처럼 24시간 대규모 전력을 끊김 없이 써야 하는 산업이 늘어나면서 단순히 건물을 짓는 수준을 넘어 전기를 어떻게 안정적으로 공급하느냐가 핵심이 됐다"고 말했다. 이어 “이 과정에서 원전, 재생에너지, 송전망 같은 전력 인프라의 전략적 가치가 동시에 부각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장혜원 기자 dalgu@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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