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최애’가 기계라고?"… 별점테러 뚫고 ‘진짜 펜’ 된 웹툰 AI
현재 독자들은 "웹툰 다양화에 기여" 평가
작가들도 ‘중노동’서 해방돼 창작에 집중

"제가 직접 그렸습니다. 제발 믿어주세요."
최근 일상과 직장에서 인공지능(AI) 사용이 당연시됐지만, 불과 1~2년 전 K-웹툰 생태계에서는 웃지 못할 진풍경이 수시로 벌어졌다. 'AI 감별사'를 자처하는 독자들이 컷마다 미묘하게 달라지는 화풍이나 조금만 어색하게 묘사된 디테일을 발견하면 여지없이 작가를 'AI 딸깍충'(클릭으로 그림을 완성한다는 비하적 표현)이라고 비난하고 '별점 테러'를 가했다.
억울하게 'AI 마녀사냥'에 휘말린 작가들은 자신의 소셜미디어(SNS)에 수십 개의 작업 레이어나 빈 캔버스에서 스케치가 완성되기까지의 타임랩스를 올리며 스스로 인간임을 증명하기도 했다.
◇독자 분노의 본질과 평점 1.9의 반전
당시 독자들의 반발에는 저작권 도용 문제 이상의 '감정적 배신감'이 자리 잡고 있었다. 좋아하는 캐릭터의 미소나 눈물이 작가의 고뇌가 아닌 영혼 없는 프롬프트 결괏값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팬들의 정서를 건드렸다.
2023년부터 네이버웹툰에 연재되고 있는 '신과함께 돌아온 기사왕님'이 대표적인 사례다. 1화가 출고되자마자 AI 생성 의혹이 불거졌고, 평점은 1.9점까지 곤두박질치며 거센 불매운동의 타깃이 됐다.
이 작품의 1화 댓글창에는 'AI 티가 너무 난다', '딸깍이는 작가가 아니다', 'AI 웹툰은 불법웹툰이다' 등의 반응이 달렸다.
하지만 3년이 흐른 지금 이 작품은 극적인 반전을 이뤄냈다. 장수 연재작이 된 것은 물론이고 최신화의 평점은 9.9점까지 치솟았다. 초기 맹렬한 비난을 뒤로하고 탄탄한 스토리와 기획력으로 고정 팬덤을 모았고, 대중의 인식도 당시 과열된 분위기와는 사뭇 달라졌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간한 '2025 만화산업백서'에 따르면 만화·웹툰 이용자 대상 인식 설문조사에서 AI 도입 자체를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이용자 비중은 12.5%에 불과했다.
오히려 대중은 실용적인 태도로 전환했다. 전체 응답자의 43.7%는 웹툰에 AI 기술이 적용되며 제작 시간이 단축되고, 생산성이 향상될 것으로 기대했다. 새로운 스타일과 실험적 장르 등장, 다양한 주제의 작품 수 증가, 신진 작가 진입 장벽 완화 등 AI가 웹툰의 다양화를 도울 것이란 의견도 많았다.
'대량 생산된 작품 유통으로 인한 품질 저하'를 우려한 독자도 29.9%에 달하는 등 우려의 목소리가 남아있지만 맹목적 비난의 시대에서 기술 수용의 단계로 접어드는 양상을 보였다.
◇주 80컷 '지옥'…2시간 노동을 10분만에
웹툰 생태계가 AI와 화해할 수 있었던 가장 큰 배경은 매주 70~80컷을 풀컬러로 뽑아내야 하는 한국 특유의 살인적인 노동 환경이다. 비용이나 의견 차이 등으로 어시스턴트 고용이 어려운 작가들에게 단순 노동을 대신해 줄 AI는 수면 시간과 건강을 보장해 주는 든든한 동료로 자리 잡았다.
옥토끼스튜디오의 최진규 작가는 구글 바이브코딩을 활용해 자신의 고유 화풍을 반영한 AI 툴을 자체 개발하기도 했다.
최 작가는 "손으로 그리면 한 컷에 2시간 걸리던 작업을 직접 개발한 툴을 통해 10분으로 단축했다"며 "기존 수작업 대비 6.6배 빠른 속도로 웹툰 작업이 가능해졌다"고 설명했다.
그는 "작품 품질 만족도도 AI를 활용하면서 120%로 높아졌다"며 AI가 작가의 펜을 빼앗는 적이 아니라 이야기 본질에 집중하게 돕는 조력자임을 강조했다.
제작 공정의 혁신은 특히 대형 스튜디오의 물량 공세에 밀려 고전하던 소규모 작가들에게 새로운 무기가 되고 있다. 콘진원 실태조사에 따르면 연 매출 10억원 미만 영세 업체의 48.8%가 AI 활용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500억원 이상 대형 업체(36.7%)보다 기민했다.
웹툰업계 한 관계자는 "최근 IT 업계 개발자들이 코딩에 AI 보조 도구의 도움을 받아 핵심 로직 설계에만 집중하듯, 웹툰 생태계에서도 AI가 작가의 창작을 돕는 완벽한 어시스턴트로 진화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기계가 만화를 통째로 찍어낸다는 과거의 맹목적 공포에서 벗어나 캐릭터의 핵심 작화나 감정선은 작가가 직접 펜을 쥐고 배경 스케치나 빛 반사, 후보정 등 AI의 효율성이 압도적으로 높은 분야에 기술을 접목하고 있다는 것이다. 작가의 고유한 창작성을 지키며 작업 효율을 높일 수 있는 AI의 활용 방안은 더 늘어날 것으로 기대했다.
◇막연한 두려움 대신 '안전한 사용' 모색
AI의 효용성이 입증되고 있지만 소규모 스튜디오들의 발빠른 도입과 달리 한국 웹툰 작가 개인 기준 AI 활용 경험은 33% 수준에 그쳤다. 다른 콘텐츠 분야와 비교해 게임(41.7%), 방송영상(30.8%)보다 낮은 만화·웹툰 분야의 AI 활용률(25.2%)을 보였다.
작가들이 AI 도입을 망설이는 가장 큰 이유는 제3자의 저작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윤리적·법적 문제에 대한 부담으로 나타났다.
업계는 무조건적인 배척 대신 안전하고 합법적인 AI 활용 가이드라인을 세우고 있다. 박정훈 한국저작권위원회 책임연구원은 최근 웹툰포럼에서 "프롬프트 입력만으로는 창작성 인정이 곤란하며 직접 드로잉, 수정, 편집 등 인간의 구체적인 표현과 기여가 있어야 저작물로 인정받을 수 있다"며 "작업 단계마다 프롬프트 로그, 수정 과정 등 제작 과정을 체계적으로 기록해 두면 추후 분쟁 시 본인의 창작적 기여분을 입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스케치업' 논란 데자뷔
10여년 전 웹툰 배경에 3D 모델링 프로그램 '스케치업'이 처음 도입됐을 때 만화계가 한 차례 뒤집혔다. 배경을 손으로 직접 그리지 않고 3D 프로그램을 돌려 붙여넣는 작가들을 향해 '그건 만화가 아니다', '독자를 기만하는 게으른 짓'이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하지만 현재는 스케치업이나 3D 에셋 없이 연재되는 웹툰을 찾기 어렵고, 이를 비난하는 독자의 목소리도 사라졌다.
전문가들은 현대 만화 산업이 AI를 썼느냐 아니냐가 아닌 새로 쥔 'AI 붓'으로 얼마나 더 압도적인 연출과 스토리를 독자에게 보여줄 것인가라는 질문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AI 툴을 개발한 최 작가는 "과거 배경도 손으로 직접 다 그리면서 배웠지만, 스케치업이 나오면서 배경을 손수 그리지 않게 됐다"며 "기술을 두려워하기 보다는 먼저 공부해서 대비하는 생각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김남석 기자 kns@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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