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 폭등보다 무서운 중동국 ‘신용 쇼크’… 피치, 카타르에 강등 경고
이란 전쟁 여파가 국제 유가 급등이라는 일차적 충격을 넘어, 중동 국가 전반을 아우르는 국가신용도 하락 우려로 번지고 있다. 과거처럼 ‘국제 유가가 치솟으면 산유국 경제도 덩달아 성장한다’는 공식은 이번 전쟁 앞에 통하지 않았다.

30일(현지시각) 국제 신용평가사 피치는 카타르 국가신용등급을 기존 AA로 묶어두면서, 부정적 관찰 대상(Rating Watch Negative)에 새롭게 올렸다. 피치는 ‘이란이 카타르 라스라판 산업도시를 타격하면서 LNG 시설에 대규모 피해를 입었다’며 이를 카타르 등급 전망을 강등 위험군으로 끌어내린 핵심 사유로 꼽았다.
이번 이란 폭격으로 국영기업 카타르에너지는 보유한 LNG 생산능력 가운데 17%를 잃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해당 설비를 복구하고 정상화하는 데는 최대 5년이 걸릴 전망이다. 막강한 자금력의 원천이던 에너지 허브가 물리적 타격을 입자, 단기 수출 차질을 넘어 근본적인 국가신용 리스크로 여파가 번졌다.
국가신용도가 떨어지면 해당 국가는 자본 시장에서 돈을 빌릴 때 더 높은 금리를 치러야 한다. 정부가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발행하는 국채 금리가 오르고, 만기가 돌아오는 기존 채권을 새로 발행해 막아야 하는 차환 부담이 커지며 국가를 압박한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빠져나가면서 국고에 쌓아둔 외환보유액은 빠르게 마르고, 통화가치가 바닥으로 떨어지면서 환율 상승 압박도 걷잡을 수 없이 거세진다. 물가를 잡기 위해 일반 국민에게 풀던 보조금과 경제 성장을 이끌 공공투자 여력도 쪼그라든다. 국영 에너지기업과 대형 은행, 거대한 항만이나 전력망을 굴리는 민간 인프라 운영사도 자금 조달 비용이 함께 급등한다.
피치는 전쟁을 일으킨 이스라엘에 A 등급을 주면서도, 장기 전망은 ‘부정적’ 의견을 그대로 유지했다. 이스라엘은 당장 신용등급 강등을 피했지만, 첨단 무기 구매와 대규모 병력 유지에 들어가는 군사비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며 경제를 짓누르고 있다. 개전 이후 재정적자 축소 일정은 무기한 늦어졌고, 네타냐후 총리 사법 처리 여부를 놓고 극심한 정치 불안까지 겹쳤다. 피치는 전면전이 길어질수록 이스라엘 역시 강등 위험이 점차 커지며 위태로운 상태에 놓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중동 한복판에 자리 잡고 있지만, 에너지 자원이 부족하고 기초 체력이 약한 주변국은 생존을 다퉈야 하는 더 큰 위기에 몰렸다. 글로벌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바레인을 지목해 ‘걸프 국가 대부분이 든든한 완충 재원을 갖췄지만 바레인은 명확한 예외 지대에 놓였다’고 선을 그었다. 바레인이 전쟁 당사국은 아니지만, 유가 상승으로 인한 혜택보다 조달 금리가 뛰면서 겪는 재정적 손실이 훨씬 커 이번 전쟁으로 이득보다 손실을 볼 것이라는 평가다.
실제 이집트는 이란 전쟁 발발 이후 금리 인하 시도를 중단했다.에너지 수입 비용이 가파르게 솟구치고 핵심 외화 수단인 관광과 수에즈운하 통행료 수익이 크게 줄어드는 이중고를 겪은 탓이다. 이집트 정부는 현재 국가 주도로 야심 차게 진행하던 인프라 프로젝트를 미루고 내부 연료 배정 물량까지 삭감하는 비상 조치를 내렸다. 이집트 재무장관은 당장 내년도 부채상환 부담이 기존 예상치보다 5%가량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미사일이 직접 날아드는 걸프 국가가 아니더라도, 평소 재정 체력이 약한 주변국에서 전쟁 충격파가 더 뚜렷하게 터지는 양상이다.
글로벌 투자 자본은 전쟁 초기 호르무즈 해협 봉쇄 가능성이나 에너지 공급 차질에 따른 유가 급등에만 쏠렸던 시선을 거뒀다. 대신 지금은 어느 나라가 전쟁이 불러온 거시 경제적 충격을 재정적으로 오랫동안 버틸 수 있느냐로 분석 초점을 빠르게 옮겼다. 전문가들은 이란 전쟁을 두고 펼쳐지는 지정학적 리스크 성격이 에너지 쇼크에서 국가신용 쇼크로 뼈대를 바꾸며 진화했다고 평가했다.
호르무즈 해협 뱃길이 열리고 전면 확전이 멈추더라도 글로벌 자본 시장은 예전처럼 걸프 지역을 초저위험 에너지 공급지로 대우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에너지 전문 칼럼니스트 론 보우소는 로이터에 “세계 최대 에너지 생산 지역에서 치솟는 위험 프리미엄은 이미 장기 유가에 뚜렷하게 반영되고 있다”며 “향후 대형 석유기업이 서아프리카나 브라질 같은 다른 산유국에서 대안을 찾으려 해도 이들 대체 지역 역시 심해 유전 개발 등 막대한 비용이 들고 다른 정치적 리스크를 안고 있어 완벽한 대안이 되지 못한다”고 진단했다.
- Copyright ⓒ 조선비즈 & Chosun.com -
Copyright © 조선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영치금만 12억 ‘범털’ 된 尹… 밀크 커피 등 141개 품목 구매 가능
- “낡은 전력망 교체에 8700조원”… K전력기기 호황 길어진다
- “불황에도 끄떡없다”…美서 계층이동 사다리로 부상한 간호직
- [주간증시전망] 증시 또 롤러코스터 탈 듯… “공격적인 투자는 금물”
- [체험기] 저장공간 2배로 늘어난 아이폰17e… 가격 매력적이지만 카메라·디스플레이 성능 아쉬워
- [단독] 60대 이상 빚투가 7조7000억원…MZ의 2배
- [법조 인사이드] 리얼돌 수입, 6년 재판 끝 ‘합법’… “미성년 외형만 금지”
- [인터뷰] ‘한강버스’의 캡틴들 “안전이 최우선, 수심·항로·기상 철저 점검“
- 전쟁에도 ‘불닭볶음면’은 잘 팔려…고환율 시기에 주목할 종목
- 기술력은 韓이 앞서지만… 中, 자국 물량 발주 앞세워 친환경선박 시장 독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