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 안 되는 대구 통개발] 도로 기준 양쪽 분위기 양극화, 빌딩숲에 가려진 참담한 풍경

권종민 기자 2026. 3. 31.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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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곳곳엔 1980~1990년대에 시간이 멈춰져 있는 지역들이 있다. 그 시대를 상징하는 이른바 '빨간 벽돌집'으로 된 저층 주택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곳이다. 이곳들의 공통점은 한때 대구에서 나름대로 괜찮은 주거지역이었다. 하지만 '1종 일반주거지역'이라는 족쇄에 묶여 개발이 되지 않았다. 이제는 대구의 높은 빌딩, 아파트숲에 가려진 지역의 대표적인 낙후지역으로 전락했다. 이곳에 사는 시민들은 '통개발 마스터플랜'에 대해 잘 알지도 못했고, 일부 시민은 대구시의 정책을 알아도 그다지 기대하지 않았다.
대구 통개발 마스터플랜 대상지인 달서구 송현1동. 낮은 단독주택과 노후 빌라 너머로 고층 아파트 단지가 보인다. 권종민 기자

◆수십 년째 그대로, 이제는 '체념'

대구 통개발 마스터플랜 대상지인 달서구 송현1동. 왕복 4차로 도로를 중심으로 양쪽의 풍경은 극명하게 달랐다. 한쪽에는 고층 아파트 단지가 줄지어 들어서 있었다. 다른 쪽에는 낮은 단독주택과 노후 빌라가 빼곡히 들어선 채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다.

단독주택이 밀집한 골목 안으로 들어서자 곳곳에서 균열이 간 담벼락과 비어 있는 상가, '임대' 안내문이 붙은 원룸들이 눈에 띄었다. 거리는 한산했고, 오가는 사람 대부분은 노년층이었다.

골목에서 만난 한 60대 주민은 "밤이 되면 불 켜진 집보다 꺼진 집이 더 많다"며 "사람이 빠져나가니까 동네 자체가 점점 죽어가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이곳에서 38년째 살고 있는 장경옥(71) 송현1동 통우회장은 동네 변화를 묻자 고개를 저었다.

그는 "원룸 몇 개 들어선 것 말고는 달라진 게 없다. 오히려 정이 메마르고 동네가 더 후퇴한 느낌"이라며 "옆에는 아파트가 계속 들어서는데 여긴 수십 년째 그대로"라고 말했다.
송현1동 단독주택이 밀집한 골목 안, 대낮임에도 인적이 끊겼다. 권종민 기자

송현동 일대는 오랜 기간 '1종 일반주거지역'으로 묶이면서 층수 제한 등 각종 규제를 받아왔다. 재개발 논의가 수차례 있었지만 번번이 무산됐다.

주민들이 체감하는 격차는 일상 속에서도 이어졌다. 장씨는 "요즘 젊은 사람들은 다 아파트로 가고 주택에는 잘 안 들어온다"며 "2층 세도 안 나가서 노인들이 직접 계단 오르내리며 사는데, 다치기도 하고 이사도 못 가는 형편"이라고 토로했다.

같은 동네 안에서도 '경계'는 분명했다. 4차로 도로 하나를 기준으로 고층 아파트와 저층 주택지가 나뉘며 생활환경은 물론, 자산 가치에서도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송현1동 주민자치위원장 강승구(73)씨는 "도로 하나 건너 상인동 쪽은 25층 이상 아파트로 재개발이 다 됐는데, 이쪽은 규제에 묶여 아무것도 못 하고 있다"며 "사실상 폐허처럼 비어 있는 집과 상가가 계속 늘고 있다"고 한숨을 쉬었다.

인구 감소도 뚜렷하다. 24년 전 송현1동의 인구는 2만5천여 명이었지만, 현재는 1만7천여 명으로 급감했다.

특히 젊은층 이탈이 심각하다.

강씨는 "이번 해 대남초등학교 졸업생이 60명이 넘었는데, 입학생은 10여 명에 불과하다"며 "아이들이 사라지면서 어린이집과 상권도 함께 무너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주민들은 개발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현실적인 한계에 대한 불신도 함께 드러냈다. 통개발 마스터플랜이 있는지도 모르는 주민들이 많다고 입을 모은다.

강승구씨는 "통개발 마스터플랜이 대명동 쪽 이야기인 줄 알고, 송현동은 해당 없는 줄 아는 경우도 있다"며 "교통이나 입지 조건은 충분히 좋아 재개발만 이뤄지면 살기 좋은 동네가 될 수 있지만 (재개발) 움직임도 없다"고 전했다.

◆대구의 강남, 수성구의 다른 얼굴
통개발 마스터플랜 개발구역 중 범어지구에 속해 있는 범어1동은 좁은 골목길 양 쪽으로 단층의 노후 주택들이 줄을 지어 위치했다. 김정원 기자

달구벌대로, 동대구로 등 주요 도로 양쪽으로 높은 빌딩숲이 자리매김한 수성구. 겉으론 울창한 숲처럼 보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참담할 지경이다. 야시골공원을 중심으로 퍼져나간 저층 주거지에는 성인 한 명이 겨우 지나갈 법한 좁은 골목과 가파른 오르막길 양 옆으로 기형적인 형태의 단층 주택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담장은 금이 가 위태로웠고, 지붕 판넬은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머금고 있었다. 골목 양 끝으로 차량들이 주차돼 있어 소방차 진입은 커녕 쓰레기 수거차량조차 들어오기 힘든 구조였다.

범어1동의 한 좁은 골목길에서 만난 박모(76)씨는 대구시의 '대규모 노후 주택지 통개발 마스터플랜'에 대해 묻자 손사래부터 쳤다. 박씨는 "통개발인지 뭔지 여기 사람들은 이제 기대도 안 한다. 그냥 이대로 살다 가야지"라고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가파른 경사의 골목에 노후화된 기형적인 형태의 주택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김정원 기자

재개발 성공의 가장 큰 요인은 '수익성'이다. 그렇기에 수성구는 다른 지역과 달리 통개발 마스터플랜의 첫 사례가 될 것이라는 기대가 컸다. 수성구 중에서도 범어동이 제일 유력해 보였다.

하지만 대구시는 '종 상향'을 통해 낙후된 지역에서 탈피할 수 있다고 했지만, 정작 이곳 주민 역시 통개발 마스터플랜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최근 취재진이 이곳에서 만난 주민 10명 중 7명은 '잘 모른다'고 답했고, 내용을 아는 주민이 일부 있었지만 사업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범어2동에는 과거부터 추진됐던 재개발 사업을 위한 홍보 현수막을 쉽게 볼 수 있다. 김정원 기자

범어지구 내 범어2동의 경우 과거부터 재개발 움직임이 있었다. 2012~2015년 수성구청의 '대규모 단독주택지 해피타운 프로젝트'와 '명품 단독주택지 조성사업'이 추진된 곳이다. 당시 개발구역을 남과 북으로 개발조합 2곳으로 나뉘어져 각자 재개발사업을 추진했다.

하지만 통개발 마스터플랜 발표 이후 개발지구가 통합되며 재개발을 위한 설계, 용역은 백지화됐다. 설상가상으로 두 조합 간 갈등이 빚어졌다.

시행사들 역시 정책이 바뀔 때마다 난색을 표하며 떠났다. 현재 이곳은 '약속 없는 땅'이 됐다.

공인중개사무소를 운영하는 황모(57)씨는 "시에서 종 상향과 용적률 인센티브를 준다고는 하지만, 10만~20만㎡ 단위의 '슈퍼블록'을 묶어 민간 주도로 개발하라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며 "한 주택 당 소유주가 2명 이상인 곳들이 태반인 상황에서 이해관계가 다른 수천 가구를 어떻게 하나로 묶나"라고 토로했다.

주민들 역시 14년 넘게 이어진 '재개발 취소' 행렬에 피로감이 쌓인 상태였다.

만촌2동에서 40년을 살았다는 박모(68)씨는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뉴스에서는 매일 통개발이니 재개발이니 떠들어도 우리 같은 노인네들은 그게 내 집을 허물고 새로 지어준다는 건지, 땅값을 올려준다는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며 답답함을 전했다.

권종민 기자 jmkwon@idaegu.com

김정원 기자 kj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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