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하더라도 함께하면 성장 확신” 10년전 약속, 밀리의 ‘심장’ 되다
절벽 끝서 일군 전자책 혁명 10년
“대체재 아닌 보완재” 910만 가입


2016년 7월 16일, 파주의 한 워크숍 장소에 7명 남짓의 인원이 모였다. ‘전자책 관련 사업을 한다’는 초기 아이디어만으로 모인 이들이었다. 회사 이름은 ‘꿀이 흐르는 마을’이라는 뜻의 밀리(蜜里)로 정했다.
그로부터 10년이 흐른 지금, 밀리의 서재는 스타트업을 넘어 직원 220여명 규모의 상장사이자 KT 계열사인 중견기업으로 성장했다. 이 드라마틱한 여정의 중심에는 창립 멤버이자 현재 밀리의 핵심 사업을 이끌고 있는 김태형 신사업본부장(47)과 이성호 독서당 본부장(44)이 있다.
헤럴드경제는 지난 26일 서울 마포구 밀리의 서재 본사에서 창립 10주년을 맞아 두 본부장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첫 사수와 부사수…“형이 하면 저도 합니다”=두 사람의 인연은 밀리의 서재 창업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 본부장은 이 본부장의 첫 직장 사수였으며, 당시 두 사람은 1년 남짓 함께 일하며 깊은 신뢰를 쌓았다. 이후 김 본부장이 창업주인 서영택 전 대표(밀리의 서재 창업주)와 창업을 결심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올린 인물이 바로 이 본부장이었다.
당시 김 본부장은 이 본부장에게 “나랑 하자. 네가 안 한다고 하면 나도 안 할 거야”라며 배수진을 쳤다. 이 본부장은 비즈니스 모델조차 명확하지 않았던 상황에서 “형이 하면 같이 하겠다”라는 대답 하나로 합류했다.
이 본부장은 “망하더라도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라면 성장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라고 회상했다.
▶강남역 전단지 돌리던 ‘처절했던 서바이벌’=초기 밀리의 서재는 출판사의 보수적인 장벽과 투자자들의 냉소에 부딪혔다. “누가 요새 책을 읽느냐”라는 질문은 VC(벤처캐피털)를 만날 때마다 따라다니는 꼬리표였다. 잔고가 바닥나 ‘3개월 런웨이’를 논의하던 중국집에서의 점심 식사는 지금도 두 사람에게 생생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업계에서 ‘런웨이’는 초기 단계의 스타트업이 추가 자금 유입 없이 보유한 현금으로 사업을 지속할 수 있는 기간을 뜻한다.
두 본부장은 직접 거리로 나갔다. 무더운 여름에는 대학로에서, 추운 겨울에는 강남역에서 양말을 세 겹씩 신고 전단지를 돌렸다. 이 본부장은 핫팩을 붙인 전단지를 나눠주며 무료 체험 한 명을 유치하기 위해 고군분투했고, 김 본부장은 퇴근길 버려진 전단지를 직접 주우며 ‘절실함’을 배웠다.
이들은 “그때의 처절함이 있었기에 지금도 안주하지 않는 스타트업 정신을 유지할 수 있다“라고 입을 모았다.
김 본부장은 “바닥까지 찍은 경험과 당시에 느낀 그 ‘절실함’을 한 번도 잊은 적이 없다”며 “지금도 사람들이 더 많이 책을 읽게 만드는 거대한 미션을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종이책 시장 갉아먹는다’는 우려, ‘보완재’라는 확신으로=출판사 설득 과정 역시 험난했다. 구독 모델이 종이책 시장을 죽일 것이라는 ‘카니발라이제이션(자기 시장 잠식)’ 우려 때문이었다. 이들은 출판사 관계자들을 수십 번씩 찾아가 “전체 도서의 10%만이라도 맡겨달라”며 설득했다.
결과는 숫자로 증명됐다. ‘불편한 편의점’, ‘어서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처럼 전자책에서 입소문이 난 책이 종이책 베스트셀러로 이어지는 사례가 늘면서 출판계의 신뢰를 얻었다. 지난해 기준 밀리의 서재 누적 가입자수는 910만명, 보유한 전자책만 23만권이다.
단순히 양이 아닌 질적 성장도 이뤘다. 지난해에는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0권을 공개했고, 문학동네의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서비스도 시작했다. 이 본부장은 “전자책은 종이책의 대체재가 아닌 보완재”라며 “밀리가 독서 인구를 늘리는 생태계를 만들었다는 자부심이 있다”라고 강조했다.
밀리의 서재는 기존 오프라인 서점과는 확연히 다른 데이터 흐름을 보인다. 서점이 4050 세대 중심이라면, 밀리의 서재는 2030이 메인인 플랫폼이다. 온라인 서점과 밀리의 서재의 ‘많이 본 책’ 리스트가 다른 이유다.
밀리의 서재는 이제 다음 10년을 준비하고 있다. 키워드는 ‘AI’와 ‘도전’이다. 김 본부장은 “중견기업이 되었지만 ‘밀리다움’의 핵심인 도전을 멈추는 순간 도태될 것”이라고 경계했다.
최은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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