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석칼럼]BTS와 ‘프로젝트 헤일메리’, 트럼프 시대를 ‘SWIM’하는 방식
![방탄소년단(BTS)이 21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정규 5집 ‘아리랑’(ARIRANG) 발매를 기념한 공연을 하고 있다. [빅히트 뮤직 제공]](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3/31/ned/20260331111103194vkox.jpg)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황이 악화되던 지난 20일 K팝을 대표하는 아이돌그룹 방탄소년단(BTS)의 컴백(5집) 앨범 ‘아리랑(Arirang)’이 발매됐다. 같은 날 미국에선 할리우드 SF영화 ‘프로젝트 헤일메리’가 개봉(한국 18일)했다. 21일 BTS의 광화문 공연은 전세계적인 관심 속에 치러졌고, 넷플릭스에 의해 190개국에 생중계됐다. ‘BTS 컴백 라이브’는 즉각 넷플릭스 TV쇼 부문 글로벌 1위에 올랐다.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북미 극장에서 주말(20~22일) 박스오피스 1위로 데뷔했다.
BTS의 ‘아리랑’은 군복무와 활동공백기에서 7인 멤버의 완전체로 돌아온 컴백작이다.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지구 멸망을 막기 위해 인류에게 필요한 자원을 얻으려 먼 우주로 떠난 과학자의 ‘오딧세이’다. 서로 다른 장르와 시공간적 맥락 속에 놓여진 콘텐츠이지만, ‘귀환의 여정’이라는 키워드를 공유한다. 관통하는 가치와 정신도 있다. 변화와 성장, 자기 긍정과 타자와의 연대, 서로에 대한 신뢰와 우정, 공동체에 대한 책임과 사명의 각성, 피로와 절망을 넘어 미래로 나아가는 도전과 희망이다. 미국 우선주의와 이민자 배척을 내세운 도널드 트럼프의 시대, 오로지 절멸과 파괴만을 목적으로 하는 전쟁의 시대에 마주한 아이러니다.
시대의 역설은 더 확장된다. 올해 아카데미상 작품·감독상을 비롯한 6개 부문 수상작인 영화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는 트럼프 시대, 인종차별과 이민자 배척의 극단주의 정치에 대한 조롱과 풍자를 담은 통쾌한 액션 코미디다. 2관왕(애니메이션작품·주제가)인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인종적·문화적 소수자의 정체성을 긍정하고 다양성을 옹호하는 작품이다. 주제곡 ‘골든’이 시사하듯 K팝을 통해 한국·아시아인의 문화와 정체성에 헌사를 보낸다. 또 다른 2관왕(남우주연·음악)인 영화 ‘씨너스:죄인들’은 호러 뱀파이어 장르에 흑인 음악(블루스)의 기원과 축복을 결합시켰다. 각각 아시아계와 아프리카계 유색인종인 주인공들이 음악(K팝·블루스)을 무기로 악귀·저승사자·흡혈귀 등 초현실적인 존재와 대결한다는 설정이 공교롭게 일치한다. K팝은 주제가상을, 블루스는 음악상을 받았다. 그런가 하면 올해 그래미상 ‘올해의 앨범’은 수록곡 모두를 스페인어로 부른 푸에르토리코 출신 가수 배드 버니에 돌아갔다.
트럼프 미 대통령은 자주 ‘PC주의’를 조롱하고 비난하고 증오해왔다. ‘PC’는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의 줄임말로, 인종·성별·성적지향·장애·종교·계층 등에 있어서 편견이나 차별을 담은 언어·표현·행동을 피하고 포용적이고 중립적이며 공정한 사회적 태도를 지향하는 것을 뜻한다. 공사를 막론하고 모든 영역에서 PC를 강요하는 일부 진보·자유주의세력에 대한 피로감과 위선적인 태도로 인해 ‘PC주의’는 논쟁적인 개념이 됐다. 아마도 트럼프 대통령이라면 최근 인기를 얻은 여러 가지의 영화와 음악에 대해 ‘PC주의’라고 비아냥거릴지도 모른다.
BTS는 신곡 ‘SWIM’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나쁜 세상’(bad world) ‘미친 세상’(mad world) 속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don’t know how to act) ‘깊은 물 속에 빠져 있지만’(I’m in the deep) ‘첨벙 첨벙’(splash splash) ‘두 발을 젓고 물살을 밀어’(I make waves with my two fins) ‘시간에 쫓기지 않고’(we don’t chase the time) ‘단지 한계를 넘어 끝까지 가고자 할 뿐’(I just wanna take it across the line)이라고 말이다. BTS와 소속사 하이브에 따르면 삶의 파도 속에서 멈추지 않고 계속 헤엄쳐 나아가는 자세, 파도에 저항하기 보다 자신만의 속도로 담담히 넘어가겠다는 삶의 태도를 표현한 곡이다.
증오와 혐오, 차별과 폭력의 시대 대중들이 살아가는 방식, 문화가 동시대인들의 삶을 지지하는 방식 또한 이렇지 않을까. 트럼프와 전쟁의 시대를 헤엄쳐 건너거나 견디며 버티거나. 아니면 우리가 대중문화를 읽어내는 자기 위안의 방식이거나.
![영화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3/31/ned/20260331111103706stdm.jpg)
트럼프 시대의 풍자와 위로,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와 ‘프로젝트 헤일메리’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의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는 올해 아카데미 영화상 최다관왕이 됨으로써 2025년 최고의 영화로 공인받은 작품이다. 이 영화엔 서로 대척점에 있는 두 개의 극단주의 정치 그룹이 등장한다. 폭탄테러와 은행강도를 일삼는 반정부 극좌혁명단체인 ‘프렌치 75’와 정치·관료·군·재계 최고위 인사들로 구성된 극우 백인우월주의 비밀 결사 ‘크리스마스 모험가 클럽’이다. 주인공 밥 퍼거슨(리어나도 디캐프리오 분)은 ‘프렌치 75’에서 폭발물 제조와 폭파 임무를 맡았던 조직원 출신이다. 그 반대편엔 경찰 특수기동대 지휘관이자 멕시코 접경지역 불법 이민자 수용소장인 스티븐 록조(숀 펜)가 있다. 록조는 ‘크리스마스 모험가 클럽’의 가입을 열망한다. 두 남자의 중간엔 ‘프렌치 75’의 과격한 흑인 여성 조직원인 퍼피디아(테야나 테일러)와 딸 윌라가 있다. 영화는 밥과 퍼피디아, 윌라, 록조 사이의 쫓고 쫓기는 추격전을 그린다.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는 ‘프렌치 75’가 이민자 수용소를 습격해 갇힌 이들을 풀어주고 폭탄테러를 일으키는 장면부터 시작해 인종차별과 백인우월주의를 신념으로 하는 비밀 결사 단체의 활동까지 극단주의 정치가 덮친 현대 미국의 풍경을 압축적이고 비유적으로 보여준다. 폭력적인 단속으로 무고한 희생자까지 낳은 미 이민세관집행국(ICE)과 미국 우선주의와 이민자 배척을 내세운 정치세력인 ‘마가’(MAGA)를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다. 마지막에서야 누구의 딸인지가 밝혀지는 흑인 소녀 윌라는 극좌든 극우든 ‘극단주의 미국’의 후손이지만, 아버지를 스스로 선택하고 악으로부터 스스로를 구하며 자신만의 삶을 살아간다.
![영화 ‘프로젝트 헤일메리’ [소니픽처스코리아 제공]](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3/31/ned/20260331111103954porl.jpg)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가 신랄한 코미디라면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따뜻하고 감동적인 위로다. 두 영화 모두 대작이고 대형스크린인 아이맥스 상영작이라는 공통점도 있다. 트럼프 시대를 살아가는 동시대인들 내면의 스펙터클이라 할 만하다.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영화 ‘마션’의 원작소설가로도 유명한 작가 앤디 위어의 또 다른 동명작을 스크린에 옮긴 것이다. 갑작스럽게 우주 한 가운데를 항해하는 우주선 ‘헤일메리’호에서 오랜 혼수상태 끝에 깨어난 과학자 그레이스(라이언 고슬링)가 주인공이다. 일시적 기억상실증에 걸린 그레이스는 우주선에 같이 승선했던 다른 사람들은 이미 죽고 홀로 살아남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는 하나씩 기억을 되살리며 자신이 우주선에 탄 이유와 임무를 깨달아간다. 태양의 빛에너지를 물질대사원으로 하는 먼 우주 속 미생물로 인해 지구가 곧 인구 대부분을 잃는 심각한 식량부족 위기에 처할 것이라는 게 우주선 발사의 이유였다. ‘헤일메리’호의 임무는 우주 속 미생물의 정체와 이를 먹이로 하는 포식자 박테리아의 존재를 밝혀내고, 이것을 지구로 보내는 것이었다. 우주선 연료는 탐사까지만 가능했고, 지구로의 귀환은 불가능했다. 과학계로부터 이탈한 중학교 교사였던 그레이스는 마지막에서야 다른 학자들이 아닌 자신이 승선한 이유를 알게 된다. 그는 우주 항해 중 같은 이유로 자신의 별을 구하기 위해 파견됐다가 홀로 남게 된 외계 생명체 ‘로키’를 알게 된다. 영화는 ‘로키’와의 소통 및 우정과 협력, 그리고 각자의 별을 살리기 위한 두 존재의 희생을 그려낸다. 지구의 위기를 막기 위한 국제적인 협력, 인종·언어·종교가 다른 것을 넘어 아예 존재 양식 자체가 상이한 타자, 외계 생명체와의 연대와 헌신은 트럼프 시대로부터 부정당한 가치가 아닌가.
![지난 2024년 6월 영국 런던에서 공연하는 테일러 스위프트 [게티이미지]](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3/31/ned/20260331111104143jcrg.png)
대한민국 힙합 소년 BTS, 미국 소녀 컨트리가수 테일러 스위프트의 ‘성장담’
광화문 공연을 시작으로 34개국에서 82회에 걸쳐 이루어지는 BTS의 ‘월드 투어’의 경제적 효과는 곧잘 미국 가수 테일러 스위프트의 그것과 비교된다. 미국 경제매체 블룸버그는 BTS의 컴백 월드 투어가 테일러 스위프트의 ‘에라스 투어’로 세운 역대 최고 기록에 맞먹는 수익을 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테일러 스위프트의 ‘에라스 투어’는 2023년 3월부터 2024년 12월까지 펼쳐진 순회 공연으로 5개 대륙 51개 도시에서 149회 이뤄졌다. 총 투어 매출이 20억달러(3조원) 이상으로 추산돼 역사상 가장 높은 수익을 올린 순회 공연이 됐다. 공연이 열렸던 미국 LA와 덴버, 피츠버그, 캐나다 토론토, 스웨덴 스톡홀름, 프랑스 파리 등 테일러 스위프트가 찾은 곳마다 높은 관광·소비·일자리 창출 효과를 빚어내 ‘테일러노믹스’ ‘스위프트노믹스’라는 용어까지 만들어졌다.
국내외 유력 언론과 기관이 예상하는 ‘BTS노믹스’는 테일러 스위프트에 필적하거나 그 이상이다. 블룸버그는 현재 확정된 5개 대륙 34개 도시 82회 공연만으로도 티켓과 굿즈 판매 등으로 8억달러(1조2천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릴 것으로 예측했다. 월드 투어 일정이 스위프트 수준으로 연장된다면 에라스 투어에 버금갈 것으로 내다봤다. IBK 투자증권은 최소 3조원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BTS와 테일러 스위프트의 가치는 단지 ‘돈’으로만 환산될 수 없다. 한국과 미국이 배출한 21세기 최고의 팝스타이자 ‘대중문화의 아이콘’으로서 그들의 존재는 우리 시대와 동시대인들에게 더 각별하다. BTS와 테일러 스위프트의 음악적 여정은 대한민국 힙합 소년과 금발의 백인 미국 컨트리소녀의 ‘성장담’이다.
테일러 스위프트는 동화적인 사랑을 꿈꾸는 10대의 콘트리 싱어송라이터로 출발해 팝, 포크, 록 등을 아우르며 개인적이고 사회적인 존재로서 성숙해가는 내면의 변화와 세상을 향한 메시지를 20년간 12개의 정규 앨범을 통해 담아냈다. 16세 때 낸 1집 ‘테일러 스위프트’에서 36세가 된 지난해 발매한 12집 ‘쇼걸의 삶’(The Life of a Showgirl)의 타이틀은 자기 성찰의 성장과 변화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BTS의 5집 앨범 ‘아리랑’은 성덕대왕 신종(에밀레종)의 종소리를 담은 6번째 트랙 ‘NO.29’를 경계로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1번 트랙 ‘Body to Body’가 이끄는 5번곡까지의 전반부는 강렬한 올드 스쿨 힙합이 주조로 초창기의 BTS를 떠올리게 한다. 6번 트랙이자 뮤직비디오 출시곡이기도 한 ‘SWIM’부터 마지막곡인 14번 ‘Into the Sun’까지는 신비롭고 따뜻하며 몽환적인 사운드에 좀 더 내면적이고 성찰적인 분위기와 가사를 입혔다. 반항아적인 이미지의 힙합 소년에서 글로벌 팝스타이자 평범한 대한민국 청년으로서의 자각에 이르는 BTS 13년의 여정이 한 앨범에 응축된 셈이다.
BTS는 ‘미래세대와 문화를 위한 대통령 특별사절’로 2018년, 2020년, 2021년에 유엔총회 연단에 올랐다. 테일러 스위프트는 2020년과 2024년 미국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를 지지했으며, 투표를 독려하는 메시지로 이례적인 수의 유권자 등록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이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는 공격을 받기도 했다. BTS와 테일러 스위프트는 이처럼 강력한 사회적 영향력을 가진 팝스타이자 동서양을 막론하고 부모들이 가장 좋아하는 아티스트로도 꼽힌다. 폭력, 마약, 욕설, 선정성이 거의 없는 음악과 모범적인 사생활 때문이다.
당대의 스타와 그들이 만들어내는 좋은 대중예술은 동시대인들로 하여금 시대의 야만과 폭력을 환기시키고 그로부터 공동체를 지키며 위로하는 힘이다. 우크라이나에서, 중동에서 포성과 무고한 죽음들이 멈추지 않고 세계 곳곳에서 증오와 폭력이 끊이지 않는 지금에도 뭇사람들과 함께하며 희로애락을 나누는 스타와 문화가 있다는 것은 다행이다. 특히 그 중에서도 K팝과 K컬처가 가장 큰 존재감으로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은 더없이 뿌듯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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