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라인, '韓 최초' 권고적 주주제안 성공…새 지평 열었다

박민규 기자 2026. 3. 31.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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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환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 대표. / 사진 = 얼라인파트너스

행동주의 펀드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의 클라우드 전문 정보통신(IT) 업체 가비아를 대상으로 한 주주행동은 한국에서 '권고적 주주제안'의 스타트를 끊었단 점에서 더욱 기념비적이란 평이다. 이사회에 이사 및 주요 경영진 보상체계 공개를 권고하는 이 주주제안은 주주총회에서 의안으로 오르는 것을 넘어 통과까지 성공했다. 모두 국내 최초 사례다.

국내에서도 능동적 주주행동주의가 본격 확산할 출발점이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중단기적으론 얼라인의 성공 사례를 참조해 권고적 주주제안 상정을 위한 법원 가처분 신청이 큰 폭으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기업이 막은 문, 法이 열어 줬다…권고적 주주제안 인정 '첫 판례'

권고적 주주제안의 경우 법적 구속력이 없으므로 주총에서 가결된다 해도 이사회가 따라야 할 의무는 없다. 말 그대로 권고적 효력만 갖는다. 다만 다수 주주의 의사를 공식적으로 확인한다는 점에서 기업에 대한 압박과 방향성 제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상법상 주총 목적사항이 아닌 사안에 대한 안건인 만큼, 미국과 영국 등 선진화된 해외 자본시장에선 이미 활성화돼 있다. 기존의 주주제안들이 포괄하지 못했던 의제를 주총 등 주주와의 소통의 장으로 끌어들이는 효과를 인정받고 있어서다. 경영진 보수체계는 물론 ESG(환경·사회·지배구조)와 주주 환원, 사법 리스크 등 다양한 영역으로 확장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상정조차 도전적인 목표다. 현행 상법에서는 주총 의결 사항을 엄격한 제한하는 데다, 권고 성격의 안건 결의라는 개념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이사회 권한 침해와 사모펀드(PE)의 경영권 침탈에 대한 우려가 큰 점도 한 몫 한다는 진단이 나온다. 타 행동주의 PE와 소액주주들도 권고적 주주제안을 쏟아내기 시작했지만, 주총 문턱을 넘진 못했다.

이런 와중 지난 26일 가비아 정기 주총에선 얼라인의 권고적 주주제안인 '이사 및 주요 경영진 보상체계 공개의 건'이 찬성률 61.5%로 가결됐다. 앞서 대표이사 보수 한도 승인 안건을 둘러싼 표 대결에서는 가비아 측이 이겼던 만큼, 이 회사 최대주주 김홍국 대표와 특수관계자 원종홍 공동대표는 올해 보수 한도를 보장받았다. 하지만 이들 포함 사내 최상위 집단의 보수 산출 기준을 체계화하고 투명하게 공개해야 하는 숙제를 안게 됐다.

사실 이 주주제안은 상정도 어려웠기에 결과를 더욱 예측할 수 없었다. 이날 주총 개회 전 이창환 얼라인 대표가 권고적 주주제안 상정 자체의 의미를 역설하면서 "가결 여부와 상관없이 주주 총의를 확인할 수 있다는 점만으로도 큰 의의가 있다"고 언급했을 정도다.

앞서 얼라인은 올해 초 가비아에 보상체계 공개를 권고적으로 주주제안 했다. 그러나 가비아 경영진이 안건 상정을 거부했고, 이에 지난달 수원지방법원 안양지원에 상정 가처분을 신청했다. 법원은 지난 12일 사실상 안건 상정 취지의 '화해 권고' 결정을 내렸다. 가비아는 법원의 결정에 불복해 최근 이의신청서를 제출하기도 했지만, 해당 안건은 결국 상정됐다.

협소한 해석의 틀을 깨고 법조문 자체를 파고든 결과다. 그동안 주총 목적사항에 대해서만 주주제안이 가능하다고 인식하곤 했다. 실제 상법상 구속력 있는 주총 의결은 법이나 기업 정관에 정해진 사항에 대해서만 할 수 있다. 그러나 비구속적이되 주주의 의견을 모으는 안건에 대해 주주제안이 불가하다는 조항은 없다.

가비아 경영진의 안건 부의 거부 근거도 경영진 보상체계 공개는 애초 주총 목적사항이 아니라는 점에 있었다. 아울러 보상체계 도입과 지표 설정은 의무화할 필요가 있는 일부 대기업과 금융기관에 한해 이뤄지고 있으며, 가비아엔 아직 이르다고 판단했다는 설명이다. 보수 산출 근거가 되는 독자적 성과 평가 시스템을 강조하기도 했다.

주주들은 얼라인의 손을 들어 줬다. 보수체계의 투명성 제고에 힘을 실은 것이다. 이창환 대표는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주주 입장에서는 경영진이 어떤 기준에 의해 얼만큼의 보수를 받는지 알고 싶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얼라인 관계자는 "가비아 이사회가 이를 수용해 보수보고서 정기 공시 등 실질적 후속 조치로 이어지길 바란다"며 "얼라인은 가비아의 주요 주주로서 가비아 주주가치 제고를 위한 활동을 지속할 계획"이라고 부연했다.
권고적 주주제안, 중요한 건 '주주 충실' 내용

얼라인의 사례는 권고적 주주제안 상정에 대한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얼라인이 올해 주주제안 한 5개 기업 중 권고적 주주제안을 상정한 곳은 가비아 뿐이다. 얼라인의 가처분 신청을 '사실상' 인용한 법원의 전향적 결정 덕분이다. 권고적 주주제안의 상정 필요성을 인정한 첫 판례다.

이창환 대표는 이 같은 사실을 강조하며 "회사의 모든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경영진이 경영 권한을 갖는 게 효율적이고 당위적이지만, 주주가 의견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주총은 그 자체로 적합한 논의의 장이고, 권고적 주주 제안 역시 바람직한 장치"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가비아의 사례가 다른 회사에도 권고적 주주 제안이 활성화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시장에서도 향후 권고적 주주제안의 활성화를 예측하고 있다. 특히 얼라인의 성공을 계기로 가처분 신청이 크게 늘 것으로 예상한다.

다만 성공 여부에 대해서는 물음표를 던진다. 얼라인의 주주제안에 대한 법원 결정은 기업의 ESG 경영과 지배구조 개선 요구가 높아진 시점에서 주주 권한을 확대하는 방향의 제도 변화 촉발을 지지하는 기조를 보여 준다는 것보다, 안건마다 달라질 수 있다는 분석이 대체적이다. 즉 얼라인 주주제안의 경우 투명성 제고 측면에서 주주 충실 의무에 부합한다고 인정받았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이다.

투자은행(IB) 업계 관계자는 "권고적 주주제안의 주총 진입 첫 사례가 생긴 것은 의미가 있지만 중요한 것은 안건의 내용"이라며 "가처분 신청이 늘어난다 해도 내용에 따라 제한적으로 받아들여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황현영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도 "국내에서는 권고적 주주제안 자체가 바람직하다, 국내에 도입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획일적으로 말할 수 없다"이라며 "안건을 살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다만 "보수체계 공개에 대해서는 공감대가 상당히 형성됐다고 본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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