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민이 선보일 볼레로, ‘발레 혁명가’ 모리스 베자르의 완벽한 유산”

이태훈 기자 2026. 3. 31.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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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자르 발레 로잔’ 쥘리엥 파브로 예술감독
모리스 베자르가 안무한 '베자르 발레 로잔(BBL)'의 대표작 '볼레로(Boléro)'. ©BBL - 사진가 마르크 뒤크레

“헌신과 투지가 정말 놀라울 정도였습니다. 3시간 연속 연습을 할 때도 물을 마시지도, 쉬지도 않았어요. 그가 강렬한 역할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매혹적인 경험이었습니다.”

러시아 마린스키 발레 수석무용수 김기민과 스위스에서 함께 한 리허설에 대해 묻자, ‘베자르 발레 로잔’(BBL)의 쥘리엥 파브로 예술감독은 “그가 연습실에서 보여준 그 에너지를 무대에 쏟아붓고, 관객들과 함께 그의 해석이 지닌 아름다움을 나누는 모습이 무척 기대된다”며 이렇게 말했다. 파브로 감독은 오는 4월 23~26일 서울 역삼동 GS아트센터에서 25년 만의 서울 공연을 앞두고 본지와 서면 인터뷰를 가졌다.

세계 최고의 발레단인 러시아 상트페테르스부르크 마린스키 발레의 수석 무용수 김기민. /사진가 Baki

‘20세기 발레의 혁명가’로 불리는 모리스 베자르(1927~2007)가 창단한 BBL은 고전 발레의 문법을 혁신한 강렬한 표현, 독창적 안무의 작품들로 현대 발레의 경계를 끊임없이 넓혀온 발레단. 이번 공연엔 특히 ‘마린스키의 별’ 김기민이 베자르의 최고 걸작 ‘볼레로(1961)’의 주역 ‘라 멜로디’를 맡아 두 차례 무대에 오른다. 그의 공연 회차는 티켓 오픈 5분 만에 전석 매진됐다.

◇“연습실 김기민, 헌신과 투지 놀라워”

모리스 베자르의 유산 '베자르 발레 로잔'의 쥘리엥 파브로 예술감독. /사진가 아누시 아브라르

‘볼레로’는 모리스 라벨의 격정적 음악에 맞춰 주역 무용수가 빚어내는 ‘선율’에 남성 군무가 ‘리듬’으로 결합하는 구조다. 무대 중심의 붉은 원형 테이블에 오르는 주역 무용수의 폭발적 에너지가 작품의 핵심이다. 파브로는 “테이블 위에 서는 ‘라 멜로디’는 몸도 마음도 매우 고된 역할”이라며 “뛰어난 체력, 끊임없는 정확성, 곡이 진행되는 내내 무대 전체의 에너지를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이 요구된다”고 했다. “기민 씨는 이 역할을 완벽히 소화하기 위해 무섭게 몰입했어요. 그 여정을 곁에서 도울 수 있어 큰 기쁨이었습니다. 우리는 스튜디오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며 그만의 해석과 모든 디테일을 함께 다듬었습니다.”

‘무용계 오스카’로 불리는 ‘브누아 드 라 당스’ 수상자인 김기민에게 올해는 마린스키 입단 15주년을 맞는 개인적으로도 뜻깊은 해. 그의 이번 BBL 공연 ‘볼레로’ 주역을 볼 기회는 단 두 번뿐이다. 김기민은 공연 기획사 인아츠 프로덕션을 통해 “BBL 무대에 서게 되어 감사하고 설레는 마음”이라며 “기다려 주신 관객분들께 최고의 무대를 보여드리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전했다.

◇“강렬한 볼레로, 관객에게 말을 거는 듯”

베자르 발레 로잔의 '볼레로(Boléro)'. © BBL - Admill Kuyler

그는 ‘볼레로’를 “그 자체로는 단순한 개념을 무대 위의 마법으로 승화시켜 관객과 깊이 교감하고, 신체와 음악이 하나의 보편적인 언어로 어우러지는 순간을 선사하는, 모리스 베자르의 유산을 완벽하게 구현하는 작품”이라고 했다. “모든 감정을 반복적이면서도 끊임없이 진화하는 움직임에 응축시켜, 무대를 생동감 넘치는 하나의 흐름으로 탈바꿈시키죠. 리듬의 힘과 감정의 강렬함으로 연령과 성별, 인종과 문화적 배경을 뛰어넘어 모든 이에게 말을 거는 듯한 느낌을 받으실 겁니다.”

파브로는 15년 전 대전 공연 때 BBL 무용수로 한국에 온 적이 있다. 일곱 살에 무용을 시작해 로잔의 베자르 발레 학교를 거쳐 BBL에 입단, 군무에서 수석 무용수가 됐고, 예술감독까지 올랐다.

무용수로서 인생 배역을 묻자 그는 “‘볼레로’ ‘봄의 제전’ ‘로미오와 줄리엣’ 등에서 많은 역할을 맡았지만, 가장 좋아하는 역할은 그저 ‘베자르의 무용수’ 그 자체”라고 했다. “베자르는 스승이자 아버지, 크리에이터였어요. 저를 포함해 지금 BBL의 무용수들은 베자르가 창조한 자식이며 제자입니다. 때로 매우 엄격하고 심지어 가혹할 때도 있었지만 깊은 인간미를 지닌 분이었죠. 그분에게서 배운 모든 것이 여전히 제 예술적 방향을 이끕니다.”

파브로는 또 “그의 작품이 새로운 창작 작품들과 함께 무대에 오르고, 새로운 세대의 무용수들이 열정과 에너지 넘치는 연기로 소화해 내는 오늘날 BBL의 모습을 본다면 그분도 자랑스러워하실 것”이라고도 했다.

◇베자르 ‘불새’ ‘햄릿’ 등도 주목

'베자르 발레 로잔'의 '바이 바이 베이비 블랙버드'(Bye bye baby blackbird) ©BBL – Gregory Batardon

‘베자르 발레 로잔 위드 김기민’으로 명명된 이번 투어 공연에선 ‘볼레로’에 더해 BBL의 대표 레퍼토리 ‘불새’도 한국 관객을 만난다. 스트라빈스키의 음악을 바탕으로 스스로를 불태워 다시 태어나는 불사조를 춤의 언어로 구현하는 작품.

아시아 초연으로 선보이는 객원 안무가의 작품 두 편도 눈길을 끈다. 셰익스피어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햄릿’(안무 발렌티나 투르쿠)은 현대음악가 막스 리히터(Max Richter)와 록 밴드 ‘뮤즈’, ‘시가렛 애프터 섹스’ 등의 음악을 조화시켜 고전 비극에 현대적이고 강렬한 에너지를 불어넣은 작품. ‘바이 바이 베이비 블랙버드’(안무 요스트 브라우엔라에츠)는 미국 컨트리 음악의 전설 조니 캐시의 음악에 맞춰 창작한 시적이고 멜랑콜리한 작품이다. BBL 레퍼토리와 창작 안무를 함께 공연하는 건 “베자르의 유산과 현대 예술가들의 목소리 사이의 균형과 대비로 관객에게 풍부하고 다채로운 경험을 선사하겠다”는 취지다.

파브로는 “BBL 무용수들의 탁월한 표현력을 보여주는 ‘발레 포 라이프(Ballet for Life)’, ‘제9번 교향곡’, ‘봄의 제전’, ‘이것이 죽음인가’ 등 다양하고 풍부한 베자르 레퍼토리 작품도 한국 관객에게 소개하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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