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취재부 ‘이왕 할 거 제대로’

조중연 2026. 3. 31.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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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중연 장편소설 ‘남방여왕-괴물의 탄생’] ⑤심층취재부

<연재 순서>

1 프롤로그_이성로 변호사
2 어두움의 끝_유령
3 육짓것의 시간
4 '게메'란 말은….
5 심층취재부
6 제주도판 '그것이 알고 싶다'
7 제주도 3대 영구 미제 사건
8 관덕정 살인 사건
9 유력 용의자의 등장
10 새벽의 루트
11 두 개의 모순점
12 나보다 더 센 놈이 나타났다
13 신탁의 밤

밤마다 무엇을 하는지 김수남의 행적이 묘연했다. 이 인간, 대체 어디로 사라진 거지? 퇴근하면 육지로 떴다가 새벽 첫 비행기를 타고 들어오나? 육지에 애인이라도 숨겨둔 건가. 하여간 퇴근 이후에는 투명인간처럼 잠수를 타버리는 무책임한 인간이라니. 아무리 따돌림을 당해도 회사에 친한 사람 한두 명은 있게 마련인데, 이렇게 모든 사람으로부터 배척 받는 사람은 처음 봤다. 

강경식은 김수남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전화기가 꺼져 있다는 기계음만 되돌아왔다. 믹스커피를 들고 천천히 창가로 다가갔다. 창백한 가로등 불빛 아래로 봄바람이 총알택시처럼 지나갔다. 탑동에서 시작된 구도심의 공동화가 서사라까지 침투한 느낌이었다. 봄바람마저 구도심에 재미를 붙이지 못하고 신제주로, 신제주로 몰려가는 모양새였다. 

최근 문화부 옆에 심층취재부 사무실이 급조되었다. 파티션으로 영역 구분을 하고 책상머리 두 개를 붙여 놓으니 간단히 끝났다. 창가라 답답하진 않았지만, 거울 보듯 마주 앉혀놓고 누가 자아비판을 잘하나 경쟁시키는 것 같아 심기가 편치 않았다. 

김수남이 '탐라일보'에서 유일한 육지 출신이라는 점도 특이했다. 뭐 주워 먹을 게 있다고 제주도로 내려왔단 말인가. 모두가 서울로, 서울로 올라가기를 앙망하는 세태에 혼자 역주행을 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서울 '아태일보'라면 어떻게든 버티며 평생을 배팅해볼 만한 가치가 있지 않은가. 한국 4대 일간지라는 명성이 퇴색했어도 3대 일간지 다음으로 가장 먼저 거론되는 메이저 신문사 아닌가.

제주 사회에서 육지 생활을 못 버티고 제주로 내려온 사람들에게 '실패자'라 낙인찍는 사실을 그가 알고 있을까. 왕년에 서울에서 뭘 했다고 거드름 피우는 육지 출신 흰소리꾼들을 상대하는 방법이 있다. 그런데, 그렇게 잘 나가던 서울 양반이 뭐하러 이 궁벽한 섬까지 내려왔습니까? 그러면 대답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한다. 뭐 장황하게 포부를 밝히기도 하지만, 그런 것은 구석에 몰린 자의 존재 증명일 뿐이다. '나 여기 있다', '나 여기 있으니 좀 쳐다봐 달라'는 게 그들이 정말 하고 싶은 말이었다. 

그러나 김수남에게는 그런 할리우드 액션조차 없었다. 육지 사람이라는 주홍글씨에도 무관심했다. 머리카락으로 이마에 찍힌 낙인을 가릴 생각도 없어 보였다. 무엇보다 그의 단점은 다가가기 어렵다는 점이었다. 

강경식은 사무실이 떠나가라 한숨을 내쉬었다. 다섯달 전에 문화부 수습기자로 신문사에 발을 들여 아직 수습 딱지도 떼지 못했는데, 심층취재부로 인사 발령이 떨어졌다. 정기자 임용까지는 무난하리라 내다봤는데, 심층취재부 발령은 예상치 못한 변수였다. 똥밭이라도 정치부나 사회부에서 스파르타식으로 경력을 쌓는 게 장래를 위해 나을 것 같았다. 아무래도 석달 전 정치부장 대우가 김수남에게 '육짓것' 소리할 때 대들었다가 이 사달이 난 게 분명했다. 

심층취재부는 김수남의 사표를 받아내기 위해 설계한 덫 같은 것이었다. 함부로 자르면 시끄러워질 수 있으니 제 발로 회사를 걸어 나가게 만든다는 노림수였다. 김수남 같은 비사회적인 인물은 끝내 제주 사회에 적응할 가능성이 1도 없다는 게 핵심 결론이었다. 말만 안 했을 뿐, 사실상 정리해고 절차였다. 

문제는 보름 뒤부터 심층취재부의 주말판 전면 기획 기사가 나가야 한다는 점이었다. 데스크로부터 4회 분량의 연재 기사를 준비하라는 지침이 떨어졌다. 

주말판 전면 기획 기사는 '기사의 꽃'이라 불리는 신문사의 간판 콘텐츠였다. 짤막한 기사와 달리 대중성을 고려하여 심도 있게 풀어내야 하는 장편 기사였다. 그러나 이 '기사의 꽃'은 도내 모든 신문사가 야심차게 시도했다가 본전도 못 찾고 나자빠진 흑역사를 가지고 있었다. 반환점도 돌지 못하고, 슬그머니 기사 전체를 들어낸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경쟁사에서도 사정은 비슷했는지 타사의 연재 중단에 논평을 삼가는 편이었다. 장편 기획 기사의 성패는 콘텐츠의 신선함과 대중성, 그리고 뒷심에 달려 있었다. 꼼꼼한 사전 준비 없이 달려들었다가는 매번 '중도 포기'를 선언하고 난파선처럼 침몰하는 게 장편 기획 기사였다. 

바보가 아닌 이상, 

커피를 입에 털어 넣고 일회용 컵을 찌그러뜨렸다. '바보'라고 혼잣말할 때 컵을 구기니 리듬이 딱 맞아떨어졌다. 입안에 남은 설탕 알갱이처럼 '바보'라는 단어가 까끌까끌하게 되씹혔다. 

바보가 아닌 이상, 김수남은 상황 파악을 완료했을 것이다. 아니 누구보다 정확하게 상황을 직시하고 있을 터였다. 이것이 경고라는 것을. 마지막 기회라는 것을. 실패하면 다음 수순으로 '사표 제출'이라는 외통수만 남아 있다는 사실을. 누군가 치밀한 각본으로 자신을 벼랑 끝으로 몰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그렇게 되면 강경식 자신의 입장도 난처해질 게 번연했다. 솔직히 심층취재부가 공중분해 되어도 다른 부서로 '헤쳐 모여' 하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폼나게 신문기자를 해보려던 포부와 달리 소모품 취급을 받는 것 같아서 자존심이 상했다. 이러려고 다섯 달 가까이 뺑이 치면서 온갖 수모를 견딘 게 아니었다. 몇 달 지나면 흔적도 없이 사라질 기획부동산 같은 부서의 부사수 보직이라니, 불뚝 짜증이 치밀었다. 

* 

휴대폰을 켜보니 강경식으로부터 부재중 전화가 여러 번 와 있다. 

김수남은 대리운전 할 때 업무용 휴대폰만 켜고 개인 휴대폰은 꺼놓는 습관이 생겼다. 상대방에게는 자기 전화번호가 그대로 노출되지만, 정작 기사는 손님 번호를 알 수 없는 대리운전 배차 시스템 때문이었다. 배차 오더 손님 연락처에는 010이 아니라 0506이나 0507로 시작하는 가상 번호가 찍혀 있었다. 

가상 번호는 대리운전 오더가 종료되면 더 이상 통화가 불가능한 번호로 바뀌었다. 한 번 쓰고 버리는 휘발성 번호였다. 손님의 개인정보 보호 차원에서 자물쇠를 걸어둔 까닭이었다. 현직 문화부 기자 입장에서는 전화번호가 불특정 다수에게 노출된 까닭에 불편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실례로 대리운전을 막 시작했을 때 손님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어이, 김 기자. 김 기자가 이 시간에 웬일이야?"라고 묻는 바람에 깜짝 놀란 적이 있다. 가뜩이나 초짜라 "손님, 대리 부르셨죠?" 입도 잘 떨어지지 않는 마당에 돌발 변수까지 만났으니 당황스러웠다. 그 손님이 누구였는지는 지금까지도 모른다. 

그 일을 겪은 뒤로 스마트폰을 하나 더 장만했다. 대리운전 전용 휴대폰과 개인 휴대폰을 구분해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에는 모든 상황이 긴장됐다. 기어 종류, 백미러 접는 법, 사이드 브레이크 위치, 라이트 켜는 법 등이 차마다 모두 달랐다. 매번 바뀌는 손님처럼 차 종류도 다양했다. 심지어 같은 모델의 차라도 주인 따라 느낌이 천차만별이었다. 

대리운전을 시작한 지 한 달 가까이 되자 몸 상태가 몰라보게 달라졌다. 살이 빠지기 시작한 것이다. 저녁 7시쯤 가볍게 식사하고 시작해서 새벽 1시까지 콜을 찾아 움직이는 단순노동이라 운동량을 무시 못 했다. 새벽에 퇴근해서 다음 날 일찍 신문사에 출근하는 일이 반복되다 보니 축 늘어져 있던 뱃살이 줄어들고, 옆구리 라인도 매끄러워졌다. 소화도 잘 되었다. 무엇보다 매일 밤 술자리를 피한 게 큰 도움이 됐다. 

* 

"아무래도 그건 좀 어려울 것 같아." 

김수남이 달궈진 불판 위로 삼겹살 네 점을 올려놓았다. 오후 내내 마라톤 회의를 했는데도 마땅한 아이템을 잡지 못해서인지 강경식은 울상이었다. 새파란 청춘이 살아보겠다고 발버둥 치는데, 정작 자신은 점심시간에 도시락도 싸 오지 않고 젓가락만 들고 설치는 얄미운 학생이 된 것 같아 왠지 미안했다. 

강경식이 고민 끝에 꺼낸 아이템은 '제주도 개발의 그림자'였다. 해방 이후 제주도가 어떻게 개발이 되었고, 그것이 도민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종합적으로 분석해보자는 내용이었다. 

"물론 좋지 않은 아이템이라는 건 아니야. 하지만 '4·3은 증언한다' 연재에도 일부 실려 있고, '도백열전' 같은 책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어. 솔직히 그것들을 기초 자료로 강정해군기지나 제2공항 문제까지 엮어서 몸집을 불릴 수 있을 것 같긴 한데……." 

김수남이 삼겹살을 뒤집으며 잠시 말을 중단했다. 

"지금 우리가 회사에서 미운 오리 새끼잖아. 데스크의 노림수가 무엇인지 자네도 눈치챘을 테고. 배는 이미 루비콘강에 띄워졌어. 의사와 상관없이 우리는 그 배에 오른 입장이고." 

강경식이 동의의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중요한 건 말이지, 신문 전면 기사인데 제주 개발사 같은 딱딱한 이야기를 끝까지 읽어내게끔 재미있게 써낼 자신이 없다는 거야. 독자에게 무턱대고 인내심을 강요할 수는 없잖아." 

이야기가 더해질수록 강경식의 얼굴에 먹구름이 드리워졌다. 김수남은 소주잔을 들어 건배했다. 

"그럼 선배가 아이템을 제시해봐요. 그렇게 팔짱 끼고 남의 집 불구경하듯 물러서 있지 말고. 글이라면 저보다 선배가 더 잘 쓰잖아요. 소설 쓰는 양반이 이럴 때 주특기를 발휘해야죠. 대신 취재는 제가 목숨 걸고 해올 테니까." 

일곱 시쯤 되니 가게 안이 소란스러워졌다. 가격이 저렴한 까닭에 주머니 가벼운 서민들이 많이 찾는 기사식당이었다. 버스터미널 인근이라 접근성이 좋아서 대리운전 콜도 잘 나오는 곳이었다. 

"삼겹살을 먹는데 말이야. 한꺼번에 여러 점 굽지 않고 이렇게 딱 네 점만 올리는 이유가 뭔지 알아? 한 점 한 점 정성 들여 구워서 가장 맛있을 때 먹으려는 거야. 물론 성질 급한 놈은 한꺼번에 쏟아붓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육즙은 다 빠지고 까맣게 타서 빼때기가 되지. 글도 마찬가지야. 그나저나 대학에서 뭘 전공했나?" 

"제주북고 졸업하고 서울에서 대학 다녔어요." 

강경식이 안경을 고쳐 쓰더니 차갑게 말을 받았다. 딴소리만 해대는 선배에게서 뭔가 신박한 아이템이 나올 거라는 기대는 포기한 표정이었다. 

"원세륜이 후배네. 근데 왜 서울에 정착하지 않고……." 

"제주도가 고향이고, 만만하잖아요." 

강경식은 수줍음을 많이 타는 성격이었다. 대화할 때도 상대방과 눈을 잘 마주치지 않았다. 거짓말을 해서가 아니라 숫기 없는 성격 때문이었다. 

"뭘 전공했느냐고 물었잖아. 이 정도는 알아두어야 할 게 아닌가 싶어서. 왜 미팅을 나가도 자기 전공 정도는 밝히잖아. 나야 뭐 국문과 출신이고. 뭐 유명한 대학은 아니고 서울 변두리쯤." 

"원래 '탐라일보' 입사할 때 종교전문기자로 지원했어요. 하지만 이 코딱지만 한 신문사에서 종교전문기자로만 있을 수도 없고. 기사가 넘쳐나는 것도 아니고." 

"다른 종교 신문들도 많이 있잖아? 인터넷 신문 쪽도 괜찮고." 

"그것들 말예요, 수준 미달에 가내수공업 수준이거든요. 근로 조건도 주먹구구, 경영도 주먹구구. 목사가 사장도 하고, 영업도 뛰는 그런 데라……. 그런 곳은 사장한테 밉보이면 바로 그만두어야 해요. 좀 더 체계를 갖춘 신문사에서 일하고 싶었죠." 

"혹시 신학(神學)을 전공했나?" 

강경식이 소리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더니 소주를 한잔 들이켰다.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은 눈치였다. 

"무엇 때문에?" 

그러나 김수남은 꼬치꼬치 캐물었다. 하기 싫은 말이라도 자꾸 쑤석거려야 소통이 된다. 그래야 신뢰가 쌓이고 팀이 될 수 있다. 

"누구나 스무 살 때는 뭔가에 인생을 걸어야겠다는 초조함과 다급함 같은 게 있잖아요. 결론적으로 말하면 저도 목숨 한번 걸어본 거죠. 절대 진리 같은 하느님이 있을 거라 확신했던 거죠." 

이번에는 강경식이 눈을 똑바로 마주치면서 말을 받았다. 

"그런데 왜 목사가 되지 않고?" 

"신학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가 들었거든요. 신학이 기독교 안에만 국한되어 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던 거죠." 

"이를테면 교회나 기독교만을 위한 호위병 같았다?" 

성심성의껏 응대하자 강경식이 무장을 해제한 느낌이었다. 

"기독교 신학에서 다루는 신은 인류를 상대로 하는 보편적 신이 아니라, 기독교 테두리 안에서 가성비가 최적화된 신이에요. 그러니 보수적이고 배타성이 강할 수밖에 없죠. 여기서 보수적이란 말은 급진신학이든 보수신학이든 기독교 안에서 사고하고 접근하도록 와꾸가 짜여져 있단 뜻이에요. 거기에서부터 균열은 시작되었죠." 

강경식이 소주를 한잔 마시더니 말을 이었다. 

"솔직히 그게 스무 살 때의 허영심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가령 당돌함이라고 할 수도 있겠죠. 절대 진리를 찾아 공부해보겠다는 당돌함 같은 거. 과거의 석학들이 찾으려 했지만 찾아내지 못했던 그런 절대 진리. 하지만 한계를 깨달은 순간, 내가 목사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죠. 자신이 없었다는 게 솔직한 표현일 거예요. 강단에 서서 하느님이 유일신이다, 예수를 믿어야 천국 간다고 말해야 하는데……. 뭐 이런 근본적인 것부터 흔들렸으니까. 믿지도 않으면서 남들 앞에서 말하는 게 비겁하다고 생각했던 거죠." 

젊음은 그렇게 솔직한 것이다. 김수남은 왠지 강경식의 태도가 마음에 들었다. 

"그렇다면 1992년 휴거 사건 같은 걸 기획으로 잡아보면 어떨까? 유사 종교 형태를 띤 제이유 주수도 사건도 괜찮을 것 같고. 제주도 다단계의 끝판왕이라 불리던 제이유였잖아. 접근 방식을 다르게 하면 새로운 해석이 나올 수도 있겠는데." 

"글쎄요. 시대가 바뀌어서 종교 관련 기사가 반응이 좋을지 확신이 안 서요. 주수도 쪽은 정치계 인물들이 많이 엮여 있고, 지금도 재판 중인 사안이라 민감한 부분이 많을 거예요." 

이번에는 강경식이 제동을 걸고 나섰다. 말을 하다 보니 제이유 사건이 제주도의 인간관계 특성을 상징적으로 잘 드러낸 사건이라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구미가 당기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렇지만 자살자가 나올 만큼 워낙 피해가 컸을 뿐만 아니라, 지금도 살아 있는 피해자들이 많다는 점에서 부담스러운 것도 사실이었다. 

"제주도 개발 쪽이 너무 방대하다면 신제주로 범위를 좁혀보면 어떨까요? 강정해군기지나 제2공항 문제까지 연계시켜서 말이죠." 

소주를 3병째 땄다. 중간에 삼겹살이 떨어져 두루치기 1인분을 더 시켰다. 이 식당의 장점은 1인분도 주문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택시나 버스 기사를 주로 상대하는 곳이라 모든 메뉴가 1인분에 최적화되어 있었다. 

"대중적인 요소나 흥미 측면에서 2% 모자라다는 생각이 자꾸 드는데. 차별화에도 실패할 것 같고. 좀 더 임팩트 있게 독자들 시선을 잡아당길 만한 아이템 없을까? 자네와 나 둘 다 관심 있는 분야라면, 시너지 효과를 일으켜서 사고 한번 크게 칠 수 있을 것 같은데." 

김수남이 마지막으로 쐐기를 박았다. 앞으로 보름도 남지 않았다. 급하다면 급한 불이었다. 하지만 주말마다 독자들이 목놓아 기다리는 기사여야 한다. 지면을 때우는 방식으로는 안 된다. 강경식의 얼굴에 널찍한 붉은 반점이 피어올랐다. 얼굴에서 귀까지 수확 시기를 놓친 딸기처럼 시뻘겋게 변했다. 

"괜찮다면 2차 갈까? 자네와 첫 술자리이기도 하고. 아이템 문제는 맥주 한 잔 더 하면서 이어가도록 하고." 
조중연.

조중연

2008년 계간『제주작가』에 단편소설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장편소설 『탐라의 사생활』,『사월꽃비』가 있다.

kalitos@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