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최고봉, 온천, 해안선 절경이 '한 묶음' [세계의 국립공원 후지-하코네-이즈]

후지산은 우리나라 백두산처럼 일본인들이 가장 신성시하는 산이다. 백두산의 시퍼런 천지를 보고 우리 민족이 뭉클한 감동을 받는 것처럼, 일본인들은 후지산의 원뿔형 봉우리에 하얀 눈이 덮인 모습을 보고 마음의 위안으로 삼는다.
후지 카메라, 후지쯔 전자, 후지 생수 등 '후지Fuji' 브랜드 제품들은 일본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상품들이다. 그러하니 후지산도 일본의 대표 국립공원이다. 단, 후지산과 인접한 하코네와 이즈 지역의 명소를 묶어 '후지-하코네-이즈富士-箱根-伊豆' 국립공원으로 관리하고 있다. 국립공원 북쪽에는 일본에서 제일 높은 해발 3,776m의 후지산이 있고, 남쪽에 호수와 온천 관광지로 명성이 자자한 하코네 지역이 있다, 그리고 동남쪽에 다양한 화산지형과 아름다운 섬들을 자랑하는 이즈반도의 해안과 바다가 있다. 일본을 상징하는 산과 호수, 해안과 바다, 화산과 온천을 모두 모아 일본의 대표 국립공원으로 이미지를 만든 것이다.

후지-하코네-이즈 국립공원의 총면적은 1,217㎢로 서울시 면적의 2배다. 도쿄와 오사카 등의 대도시에서 가까워, 2024년의 경우 약 1억 명이 탐방한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 중 외국인 탐방객은 390만 명, 후지산 등산객(예약 및 인원 제한)은 약 20만 명이다.
일본에는 35개의 국립공원과 57개의 국정공원(준국립공원)이 지정되어 있다. 우리나라 탐방객이 대부분 산 정상을 오르는 것과 달리, 일본인들은 산 아래나 중간에서 명소 방문, 가벼운 트레킹, 온천 위주의 관광을 한다.

후지산 7~9월만 정상 개방, 예약 필수
후지산은 약 1만 년 전의 화산활동으로 정상에 분화구가 뚫린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이때 생긴 여러 기생화산과 호수, 그리고 용암이 멀리까지 흐르며 만들어 낸 다양한 지형이 독특한 경관과 자연환경을 이루고 있다. 지형이 다양하고 고도가 높은 만큼 저지대에서 고지대까지 다양한 생태계가 형성되어 있어 생물다양성이 높다. 한편, 후지산이 마지막으로 폭발한 때는 1707년으로, 300년 이상 휴면상태다. 언제 다시 잠에서 깨어날지 모르는 '활화산'이다.
일본의 아이콘인 후지산은 일본사람들이 가장 신령스럽게 여기는 산이다. 예부터 종교와 철학, 예술과 문화의 대상이 되어 왔다. 특히 멀리서 본 후지산의 유려한 모습과 정상부의 하얗게 눈 덮인 풍경은 예술작품의 소재가 되어 일본인들의 가슴에 '영혼'처럼 각인되어 있다. 이에 따라 후지산은 자연유산이 아니라 '후지산, 성스러운 장소 그리고 예술적 영감의 원천'이라는 이름으로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다.
후지산은 기후가 허락하는 7월부터 9월 중순까지만 산행이 가능하고, 이후는 고지대의 대피소와 화장실이 폐쇄된다. 정상까지 가는 4개의 코스가 있는데, 가장 많은 사람들이 가는 코스는 요시다 트레일이다. 대부분의 등산객은 중간(7~8합목)의 산장에서 1박하고, 다음날 새벽에 정상에 올라 일출을 맞는 일정을 진행한다.

후지산 공원당국은 공원훼손과 안전사고를 줄이기 위해 하루 입장객을 4,000명으로 제한하고(산장 예약객 제외), 입장료와 환경보전협력금을 합해 4,000엔을 징수하며, 오후 2시부터 새벽 3시까지 입산을 금지하는 조치를 취하고 있다. 특히 안전사고 요인이 많은 '탄환bullet 등반', 즉 무박 야간산행을 금지하고 있다.
후지산은 정상 가까이 갈수록 가파른 오르막이지만, 전체적으로는 완만해서 크게 어렵지 않게 올라갈 수 있다. 그러나 3,000m 이상 고도에서 머리가 아프거나, 호흡이 가쁘거나, 속이 메스껍거나 하는 고산병 증세를 느낄 수 있다. 그런 증세가 오면 두통약을 먹고 한참을 쉬었다가 천천히 올라가거나 산장에서 1박을 한 후 올라가는 게 좋다. 산장에서 코로 흡입하는 휴대용 산소캔을 팔기도 한다.

사진에서 본 후지산의 눈 덮인 정상은 아름답고 신비롭지만, 현지에서 본 여름의 정상은 풀 한 포기 없는 황무지다. 정상의 풍경은 완전 실망이다. 그래서 '후지산에 두 번 오면 바보'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후지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것은 우주처럼 광대한 세상, 그리고 내 안의 세상이다.

하코네 온천관광, 화산관광의 천국
도쿄에서 불과 1시간 30분이면 도착하는 하코네는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지 중 하나다. 이곳 한 곳만으로도 유명한 국립공원이 될 수 있을 정도의 아름다운 자연과 다양한 지형과 편리한 관광시설을 자랑하는 곳이다. 공원 아래는 온통 호수와 온천이고, 이곳에서 여러 개의 로프웨이와 등산열차, 등산버스, 유람선이 사람들을 곳곳의 명소 가까이 데려다준다. '하코네 프리패스'를 구입하면 모든 종류의 교통수단을 횟수에 제한 없이 탈 수 있으며, 여러 시설에서 할인 혜택을 준다. 2일 사용권이 6,100엔이다.

하코네에 오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들르거나 지나가는 최고의 명소는 아시노코Ashinoko호수다. 3,000년 전 화산폭발로 산이 움푹 파여 생긴 호수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후지산 풍경이 일품이고, 호수에서 유람선을 타거나, 호숫가를 돌며 산과 물에 젖는 산책은 낭만적이고 오래 기억할 추억을 남긴다.
로프웨이를 타고 올라간 산 중턱의 오와쿠타니大通谷계곡에서는 유황 냄새가 자욱한 가운데 수증기가 "슉슉" 솟구치고, 진흙이 "부글부글" 끓는 현재 진행형 화산 활동을 체험한다. 과거에 재앙을 안겨 주었던 화산활동이 이제는 관광객을 끌어 모으는 천연자원이 된 것이다. 센고쿠하라의 고원습지도 풍경 감상과 자연관찰에 좋은 곳이며, 산 아래에는 주제가 있는 미술관, 박물관, 식물원이 많다.

이즈반도, 사색과 명상의 휴양 관광지
태평양에 돌출된 이즈반도는 수많은 기생화산과 용암 바위, 해안의 절벽과 동굴 등 특색 있는 해안경관과 아름다운 섬을 대상으로 국립공원이 지정되어 있다. 그중에서도 조가사키해안의 용암 바위들과 해안탐방로, 태평양의 거센 파도가 거친 벼랑을 때리는 이로자키곶, 그리고 나나다루七龍라고 부르는 7개의 예쁜 폭포가 절경이다.

이즈반도는 아름다운 해안에서 수영과 산책을, 초록빛 고원과 푸른빛 해안에서 트레킹을, 조용한 신사神祠에서 사색과 명상을, 전통적인 료칸旅館에서 온천을 즐기는 천혜의 휴양지다. 벚꽃 축제가 열리는 봄 풍경이 가장 멋지다고 알려져 있다. 도쿄에서 약 100km 떨어져 있다.
이즈반도는 일본의 유명 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소설 '이즈의 무희'를 쓴 곳이다. 이 소설은 이즈로 여행을 와 방랑하던 소년이 유랑극단에서 춤을 추는 어린 소녀를 만나 애틋한 감정을 느끼고 헤어지면서 성장하는 과정을 그린 것이다. 우리나라 황순원의 소설 '소나기'가 생각나는 맑은 수채화 같은 내용이다.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그의 대표작 '설국'에서 첫 문장을 잘 쓴 것으로 유명하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이 글 못지않게 '이즈의 무희'에 나오는 첫 문장도 감성적이고 서정적이다.
'꼬불꼬불한 산길로 접어들면서 마침내 고개에 다가왔구나 싶었을 무렵, 삼나무숲을 하얗게 물들이며 매서운 속도로 빗발이 산기슭으로부터 나를 뒤쫓아왔다.'

월간산 3월호 기사입니다.
Copyright © 월간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