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등할망 들어온다”…제주 사계마을 풍어제 [포토 다큐]

정효진 기자 2026. 3. 31.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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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녀들과 심방(무당)이 지난 20일 마을 신당을 찾아 뒷날 있을 풍어제를 고하는 의식을 치르고 있다.

겨울이 완전히 물러나지 않은 3월, 제주의 바람은 하루에도 몇 번씩 바뀐다. 비가 오다 그치고, 금세 하늘이 열린다. 제주 사람들은 이 무렵 영등신(영등할망)이 들어온다고 말한다. 음력 2월, 이른바 ‘영등달’이다. 한 해의 풍어와 무사 안녕을 비는 굿이 제주 곳곳에서 열린다.

이한옥 해녀(68)가 지난 20일 어촌계 사무실 앞 바다에서 미역을 캐고 있다.
풍어제를 준비하던 지난 20일 해녀들이 모여서 미역을 손질하고 있다.
오영순, 김이선, 임화선 해녀가 마을 신당에 가져갈 음식을 싸고 있다.

제주 서귀포시 안덕면 사계마을에서도 지난 21일 풍어제가 열렸다. 해녀들이 중심이 되어 준비하는 마을의 큰 행사다. 어촌계 건물에는 금줄을 쳐 외부인의 출입을 막았다. 며칠 전부터 장을 보고, 상과 병풍을 닦았다. 심방(무당을 일컫는 제주어)이 묵을 해녀 탈의장을 정리하고 이불을 빨아두었다. 배와 사과, 한라봉은 예쁜 것으로 하나씩 골랐고, 함께 물질할 때 잡아둔 가장 큰 전복과 해삼도 꺼냈다. 당근을 썰고, 구쟁기(소라)를 까고, 미역을 캐왔다. 전날은 새벽부터 밤까지, 당일은 더 이른 시간부터 움직였다. 내내 말과 몸을 조심하고 굿이 끝난 뒤에도 이틀은 집에 머문다.

지난 21일 풍어제에서 해녀들이 심방을 향해 손을 뻗고 있다.
해녀들이 심방이 전하는 말을 듣고 있다.
이복수 해녀가 한지에 쌀과 동전, 팥을 싸고 ‘용왕대신님’ 이라고 적고 있다. 가족 각각의 이름과 주소를 쓴 꾸러미를 뒷날 바다에 던졌다.
굿의 마지막 순서로 바다에 나가 ‘씨드림’을 하고 있다. 과일과 닭, 밥 등이 바다에 떠내려 가고 있다.

영등신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정확히 몰라도 굿은 해녀들에게 큰 의미다. 공들여 제상을 준비하고 굿을 지내며 신이 왔다 갔다고 믿는다. 이복수 해녀(72)는 “정성을 들였으니 조금은 안심이 된다”고 했다. 김인선 해녀(66)는 “보이지 않아도 믿는 것”이라고 말했다. 손마디가 시리고 아픈 데가 너무 많다고, “늙는 게 슬프다”면서도 더 늙지 않게 해달라는 소원은 빌지 않을 거라고 했다. 어디까지가 사람의 몫이고, 어디부터가 욕심인지 해녀들은 알았다.

지난 20일 신당에서 오영순 해녀가 제상을 바라보고 있다.
해녀들이 굿을 지켜보며 눈물 흘리고 있다.
어촌계 건물 안에서 해녀들이 풍어제에 쓸 그릇과 상을 준비하고 있다. 건물 바깥에는 금줄을 둘러 놓았다.
마을 어장을 한 바퀴 돈 다음 마을로 돌아가는 배 안에서 해녀들이 춤을 추고 있다.
임화선 해녀가 신당에서 손을 모으고 기도하고 있다.

굿의 마지막 순서는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는 것이다. 마을 어장을 한 바퀴 돌며 곡식을 뿌리는 “씨드림”이다. 긴 소원은 없다. 대부분 건강을 빈다. 자신과 자식들, 먼저 간 이들의 이름. 과일과 밥을 싣고 떠난 배는 징 소리와 함께 돌아온다. 해녀들은 징을 크게 두드리고 춤을 추며 마음을 바다에 부친다. 그리고 다시 바다로 들어갈 준비를 한다. 평생을 봐도 다 알 수 없는 곳으로, 각자의 시간을 안고 들어간다.

굿은 아침부터 늦은 오후까지 계속됐다. 심방은 해녀들의 이름과 나이를 몇번이고 불렀다. 이름이 불릴 때마다 해녀들은 앞으로 나왔다. 쌀에 돈을 꽂고, 절 하고, 들어갔다가 다시 나와서 절을 했다. “이복수 일흔둘, 강신자 여든다섯, 고선옥 일흔여덟, 고애자 예순여섯, 양금순 예순여덟...” 바다에서는 바람이 불 때마다 흰 물결이 번지고 있었다.

배에 탄 해녀들이 마을로 돌아가고 있다.

사진·글 정효진 기자

정효진 기자 hoh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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