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천안교도소는 날마다 ‘통역 전쟁’···번역기는 필수, 언어 벼락치기도

유선희 기자 2026. 3. 31.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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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유일 외국인 전담 교정시설
“영어로만 대화가 안 되는 게 고민”
이슬람식 등 음식 관리도 주요 업무
총 수용자 1510명, 정원 24% 초과
마약 수용자 늘며 업무부담 더 커져
2010년 2월 외국인 전담 교정시설로 지정된 천안교도소의 한 외국인 수용실로, 4.8평(15.79㎡) 에 6~8명이 수용돼 있다. 법무부 제공

봄기운이 일면서 따뜻해진 지난 24일 충남 천안교도소. 큰 철문을 열고 들어가자 아침 9시30분부터 수용자들이 운동을 하고 있었다. 모두 같은 색깔의 수용복 차림이었지만 한국인들 틈으로 다양한 국적의 수용자들 모습이 보였다. 운동장을 가로질러 수용동으로 향하는 길목에 3개국 언어로 된 푯말이 걸려 있었다. ‘지나간 것은 되돌릴 수 없지만, 미래는 바꿀 수 있다’ ‘The past cannot be changed, The future is still in your power’ ‘过去了不能回头,但是未来可以改变’라는 글귀가 보였다.

다시 철문을 열고 계단을 오르자 외국인 기결 수용자만 생활하는 수용실 14개가 이어졌다. 4.8평(15.79㎡) 남짓한 방 한 곳의 정원은 5명이었지만 6~8명씩 수용돼 있었다. 한 개 층을 관리하는 교도관은 한 명뿐이다.

천안교도소는 국내 유일의 외국인 전담 교정시설이다. 2010년 2월 전담시설 지정 이후 외국인 미결·기결 수용자가 꾸준히 늘었다. 외국 수용자들은 대전·여주교도소, 청주여자교도소 등으로도 수용되는데 천안교도소가 단연 인원이 많다. 지난 20일 기준 천안교도소 총 수용자는 1510여명으로 정원(1220명)을 24% 초과했다. 이 중 55개국 출신 외국인 수용자는 590여명이다. 2017년만 해도 35개국 출신의 외국 수용자가 있었었는데 9년 사이 20개국이 추가됐다. 중국, 태국, 베트남부터 카자흐스탄, 적도기니 등까지 다양하다. 국적별로 보면 중국 117명, 태국 104명, 베트남 55명 등 순으로 많다.

지난 24일 충남 천안교도소 운동장에서 외국인 수용동으로 향하는 길목에 ‘지나간 것은 되돌릴 수 없지만, 미래는 바꿀 수 있다’는 의미의 영어와 중국어 푯말이 천장에 걸려 있다. 법무부 제공

55개국 수용자들이 있으니 날마다 ‘통역 전쟁’이다. 영어 대화가 가능하다는 서영준 기동순찰팀장은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이 오다 보니 영어로만 대화가 안 되는 게 고민”이라고 말했다. 요즘 서 팀장은 무전기와 연동되는 번역기를 휴대전화만큼이나 자주 사용한다. 여러 국적이 모이니 모국어가 아니어도 제3의 언어를 하는 수용자들이 있어 도움을 받기도 한다고 했다. 국제협력과 소속 유상현 교도는 최근 이란 국적 수용자를 담당하면서 “이란어 벼락치기”를 했다고 말했다. 그는 “아무래도 본인들의 언어를 써주면 좀 더 마음을 여는 것 같더라”며 “최소한 인사말이라도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전국에서 유일하게 천안교도소에 신설된 국제협력과에선 대사관 연락 업무를 포함해 국제이송 신청, 외국인수용자 교육 및 상담, 번역 및 통역지원 업무 등을 수행한다. 이곳엔 중국어·베트남어·태국어·러시아어·스페인어 등 5개 국어 전공자 13명이 있다. 수용생활 안내서는 영어·몽골어·캄보디아어·필리핀어 등을 추가해 소책자로 만들어 제공하고 있다.

다른 국적만큼이나 먹는 음식 관리는 교도관들의 주요 업무 중 하나다. 경향신문이 이날 둘러본 14개 수용실 문 앞엔 수용자들의 식단이 표기돼 있었다. ‘양 2’라고 적힌 단어는 수용된 8명 중 2명이 양식을 먹는다는 뜻이다. 이곳에선 한식(한국인)과 양식(외국인), 이슬람식(무슬림) 등 3개 식단이 있다.

최근 늘어난 마약사범 관리도 신경 쓰는 부분이다. 법무부에 따르면 2016년만 해도 외국인 수형자 중 마약사범은 149명으로 살인(248명), 사기·횡령(203명)보다 적었다. 그러나 지난해 기준으로 외국인 수형자 중 마약사범이 1013명으로 주요 강력범죄 중 가장 많았다. 실제 이날 참관한 14개 수용실 중 마약사범이 없는 방은 없었다. 한 개 수용실 당 수용된 6~8명 중 2~3명이 마약사범이었다. 유 교도는 “외국 마약범죄는 조직범죄인 경우가 많고, 이들은 출소 후 본국에서의 보복을 두려워해 같은 국적의 힘이 센 수용자의 말을 더 따르기도 한다”며 “한국어를 하지 못하는 외국인 수용자가 근무자 지시를 이해하지 못해 오해까지 더해지면 관리가 더 어렵다”고 말했다.

수용실 앞에 표기한 식단 표식으로 ‘양 2’는 수용자 중 2명이 양식을 먹는다는 뜻이다. 파란 색깔 표식은 마약사범 수용자가 있음을 의미한다. 법무부 제공

새로운 국적의 마약범죄 수용자들이 늘면서 교도관 업무부담은 커졌다. 9개 과에 330여명이 근무 중이고 수용자를 직접 관리하는 보안과에서만 220여명이 일한다. 야근에는 28명이 배정돼 1명당 50여명을 담당해야 한다. 특히 야근팀장(6급)은 직원과 수용자 전체를 관리해야 한다고 한다. 교도관들은 “직무 위험성 등을 반영한 처우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야간에 20~30분 간격으로 비상벨을 누르며 “본국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수용자를 달래는 일도 야근자들의 일이다. 이 때문에 유 교도는 한 때 비상벨 소리만 들어도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의 트라우마를 겪었다고 했다. 최근 전쟁이 벌어진 이란에서 동생이 안부를 전해왔다는 소식을 대사관을 통해 듣고 이를 수용자에게 전달한 일은 보람이었다. 유 교도는 “대사관을 통해 도와줄 수 있는 일이 있어 뿌듯했다”고 말했다.

삼호주얼리호를 납치했다가 한국군에 생포된 소말리아 해적들도 천안교도소를 거쳐갔다. ‘BBK 주가조작 사건’ 주범인 미국 국적 김경준 전 BBK 대표는 이곳에서 8년 형기를 살고 2017년 3월 만기 출소했다. 이태원 살인사건 주범으로 2017년 대법원에서 징역 20년이 확정된 미국인 아서 패터슨은 현재 이곳에서 수형 생활을 하고 있다.

서영준 기동순찰팀장(사진 왼쪽)과 국제협력과 소속 유상현 교도. 법무부 제공

유선희 기자 y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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