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미사일 맞은 듯 폐허된 쿠바… 낭만 대신 생존만 남았다

워싱턴/박국희 특파원 2026. 3. 31. 0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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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끝> 10년 만에 다시 찾은 쿠바
지난 23일 쿠바 아바나 말레콘 해안의 노을을 배경으로 쿠바인들이 낚시를 하고 있다. 10년 만에 찾은 쿠바 말레콘의 거센 파도는 여전했지만, 쿠바인들이 마주한 삶은 더 거칠어져 있었다. /박국희 특파원

10년 전 특파원으로 6개월간 머물렀던 쿠바 아바나를 최근 다시 찾으면서 걱정이 앞섰다. 이번엔 미국 특파원으로서 취재를 가는 것인데, 현재 쿠바는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의 제재 강화로 미국발 관광 입국이 막혀있는 데다 2021년에는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된 상태다. 미국 취재 비자가 찍힌 여권으로 쿠바 입국 심사를 통과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기우였다. 미국 공항에서는 출국 목적을 캐물었는데, 정작 아바나 공항 출입국직원은 100달러짜리 비자를 내밀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통과시켰다. 달러를 쓸 외국인 한 명이 아쉬운 절박함이 느껴졌다.

10년 만에 마주한 쿠바는 많은 것이 달라져 있었다. 과거 1달러는 24쿠바페소(CUP)였지만 지금은 500쿠바페소가 넘었다. 쿠바 지폐는 가치가 20분의1로 폭락하면서 휴지 조각이 돼가고 있었다. 관광객을 찾기 힘들었고 정전은 수시로 찾아왔다. 골목은 악취가 넘쳐났고 석유 고갈로 거리엔 차들이 없었다. 호텔들이 24시간 발전기를 돌리는 굉음에 잠을 잘 수 없을 정도였다.

쿠바는 본토에 미사일 한 발 맞은 적 없다. 하지만 2014년 이스라엘 공습으로 폐허가 된 가자지구에서 봤던 건물들과 겉모습이 똑같았다. 오랜 기간 방치된 아바나는 전쟁을 겪은 도시처럼 곳곳이 무너지고 있었다.

우비를 걸친 노인이 쿠바 수도 아바나 거리를 손수레를 밀며 지나고 있다. 미국이 최근 베네수엘라산 원유 공급을 차단하면서, 쿠바 전역에서 대규모 정전 사태가 벌어지고 국민들이 에너지난에 시달리고 있다. /AFP 연합뉴스

1959년 피델 카스트로의 공산 혁명 이후 쿠바는 생산과 가격, 유통을 국가가 통제하는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해왔다. 소련의 지원에 기대 안정된 시기를 보냈지만,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경제는 급격히 흔들렸다. 2014년 오바마 행정부 시절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로 한때 관광과 투자 확대 기대가 컸지만, 국가 통제 경제 구조를 바꾸지 못해 성장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이후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서며 제재가 다시 강화되자 그나마 열렸던 숨통도 다시 조여졌다. 관광과 해외 송금에 의존하는 구조 속에 외화가 부족해지면 식량과 연료 수입이 막히고, 경제 전반이 흔들리는 악순환이 이어진 것이다. 에너지의 큰 축을 담당하던 베네수엘라의 저가 원유가 최근 미국의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 체포 이후 완전히 끊긴 것은 ‘확인사살’과 다름 없었다.

10년 전에도 쿠바는 가난했지만 낭만이라도 있었다. 세계 배낭여행객들이 ‘마지막 로망’으로 꼽던 곳이기도 했다. 인터넷이 되지 않아 도리어 주민들이 소셜미디어로 겪는 비교의 스트레스도 없었다. 모두가 부족한 삶 속에서 낯선 누구와도 자연스럽게 말을 섞고, 해변에서 처음 본 이들과 살사를 췄다. 시간이 멈춘 듯한 쿠바인들의 순수함은 전 세계 여행자들을 끌어당겼다.

보수할 돈 없어 붕괴된 학교 경제난으로 보수하지 못해 무너진 쿠바 국립 디자인학교 건물 잔해 속에서 쓸 만한 물건을 찾는 주민들. /AFP 연합뉴스

하지만 지금은 최소한의 생활도 힘든 물자 부족과 전기와 석유, 가스까지 끊기는 불안 속에 쿠바인들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진 모습이다. 하루를 버티기 위해 달러를 좇는 일이 모든 관계의 기준처럼 보였다.

1959년 공산혁명 이전 쿠바는 미국 자본과 관광에 기대 번성했지만 도박과 마약, 매춘 등 그늘도 짙게 드리워진 사회였다. 혁명은 그런 구조를 바꾸기 위해 시작됐지만, 생존에 내몰린 일부 쿠바인들 사이에서는 혁명의 의미 자체를 되묻는 목소리도 들렸다. 과연 이 사회가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 누구도 확신하지 못하는 분위기였다. 길거리에서 만난 쿠바인들이 자신들의 경제를 옥죄고 있는 트럼프를 욕하기보다 “차라리 트럼프가 들어와 다 뒤엎었으면 좋겠다”고 하소연하는 역설적인 상황이 약간이나마 이해가 됐다.

박국희 워싱턴 특파원

쿠바를 떠나는 발걸음은 가자지구에서 폭격에 노출된 아이들을 뒤로한 채 빠져나왔을 때와 비슷한 불편함으로 무거웠다. 이를 체제 선택의 문제로 볼지, 지도부의 판단과 책임, 외부 압박이 겹친 결과로 볼지 쉽게 단정하기는 어렵다. 다만 분명한 것은 쿠바인들이 감당하고 있는 현실이 더 이상 낭만으로 설명할 수 있는 단계를 이미 넘어섰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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