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 70년, 올해 80세… “내 피아노에 은퇴는 없다”

“해군교향악단(서울시향의 전신)에서는 우리나라의 앞날을 양 어깨에 짊어질 소년 소녀들에게 자극과 편달(鞭撻)이 되기 위한 첫 시도로 ‘협주곡의 밤’을 18~19일 양일간 김생려(1912~1995)씨의 지휘하에 시립극장에서 열게 된다.”
1956년 11월 열 살 소년 피아니스트의 그리그 피아노 협주곡 협연 소식을 조선일보는 이렇게 전했다. 부산에서 독주회를 열고서 갓 서울로 올라온 소년의 첫 오케스트라 협연 무대였다. 연주회 직후에도 이 소년의 협연에 대해서 “침착한 태도는 연주자의 보배와 같은 요소”라고 다시 한번 평했다. 그 소년이 바로 ‘건반 위의 구도자’로 불리는 피아니스트 백건우(80)다.
올해 팔순이자 데뷔 70주년을 맞은 백건우가 슈베르트(1797~1828)의 피아노 소나타 네 곡을 묶은 신보 ‘슈베르트’를 펴냈다. 30일 서울 여의도 신영체임버홀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그는 “나이가 들어서도 연주하고 있다는 그거 하나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인생이 너무 짧기에 은퇴의 의미는 없다”고 했다. 젊어서는 마치 순례처럼 한 작곡가의 피아노 작품들을 연주하고 녹음해서 ‘구도자’로도 불렸다. 하지만 그는 “종교적 의미가 아니더라도 직업이 무엇이든 자신이 하는 일에 충실하고 노력하면 누구나 구도자”라며 “남들도 다 같이 하는 건데 (그 별명은) 좀 무겁다”며 웃었다.

얼핏 노년의 피아니스트와 서른한 살에 요절한 청춘의 작곡가는 의외의 조합으로 보이기 쉽다. 하지만 이날 백건우는 “슈베르트를 듣다가 잠이 든다고 해서 무엇이 대수인가. 천국에서 깨어나게 될 텐데”라는 20세기 작곡가 스트라빈스키의 말을 인용했다. “다른 작곡가들은 구상하거나 작곡하기 위한 노력이 보이는데 비해서, 슈베르트는 때로는 인간이 쓴 것인지, 천국에서 온 것인지 착각이 들 만큼 자연스럽게 흘러간다”는 설명이다. 이번 음반의 첫 곡으로 실린 피아노 소나타 13번(D.664)은 1960년대 미 줄리아드 음악원 유학 시절 전설적 피아노 스승인 로지나 레빈(1880~1976)에게 처음 배웠던 슈베르트 소나타이기도 하다. 백건우는 “젊은 시절에는 한 곡이 끝나면 새 곡을 공부하면서 새로운 세계가 펼쳐지는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내가 곡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곡이 나를 선택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또 “음악은 ‘천 개의 얼굴’을 지니고 있고 몇 년 후에야 간신히 이해하는 경우도 생긴다. 그렇기에 같은 곡도 평생 세 번은 되돌아와야 한다”고도 했다.
올 하반기에는 자서전도 출간 예정이다. 그는 “한국서 미국, 유럽에서 동구라파(동유럽)까지 내가 속했던 모든 세상이 변하는 시대에 연주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알리는 것도 내 의무라고 여겼다”고 했다. 여기서 미국은 유학, 유럽은 배우인 고(故) 윤정희(1944~2023)와의 결혼 이후 파리 체류, 동구라파는 납북 미수 사건을 각각 뜻한다. 그는 “오랜 세월 보여줘야 하는 연주 생활이 계속되면서 스트레스를 받거나 피곤해지기도 했다. 요즘은 내 시간을 많이 갖고 편하게 음악회를 준비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올해 그의 전국 투어는 4월 3일 부산을 시작으로 9월 12일 평택까지 전국 공연장 14곳에서 열린다. 그중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독주회가 열리는 5월 10일은 마침 그의 생일이기도 하다. 그는 “불란서(프랑스), 동구라파, 스페인, 영국까지 아직 시작도 못 한 곡이 너무나 많다”고 했다. 불란서와 동구라파라는 명칭은 고풍스러웠지만, 탐구 정신만은 여전히 녹슬지 않은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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