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런 사람 아냐” 10살 아이 안심시키더니…출소 2년 만, 또 아동 노렸다 [오늘의 그날]

김도연 AX콘텐츠랩 기자 2026. 3. 31.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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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산 초등생 납치미수 사건 현장 CC(폐쇄회로)TV 갈무리

“술을 깨려 공원을 가던 중 A양이 힐끗힐끗 쳐다보는 게 기분 나빠 때렸어요.”

2008년 3월 31일. 일산 초등생 납치 미수 사건 용의자 이명철(당시 41세)은 서울 대치동의 한 사우나에서 경찰에 붙잡힌 뒤 이렇게 말했다. 사건 발생 5일 만이었다.

검거 직후 이명철은 단순한 우발적 폭행임을 주장했다. 하지만 수사가 진행될수록 그는 이미 수차례 어린 아동들을 대상으로 끔찍한 범죄를 저질러온 전과자로 확인됐다

◇“나는 그런 사람 아니다”…뒤쫓다 폭행, 납치 시도=사건은 그해 3월 26일 오후, 경기도 고양시 일산서구의 한 아파트 엘레베이터에서 발생했다.

서울 강남구 수서동에 거주하던 이명철은 술에 취한 채 지하철 3호선을 타고 이동하다가 돌연 대화역에서 내렸다. 별다른 목적 없이 인근 아파트 단지로 들어간 그는 혼자 귀가 중이던 초등학생 A양(당시 10세)을 발견했다.

이명철은 A양을 뒤따라가자 겁에 질린 A양은 여러 차례 뒤를 돌아봤다. 그러자 이명철은 “나는 그런 사람 아니다”라며 안심시키는 듯한 말을 했다. 하지만 엘리베이터에 오르자마자 본색을 드러냈다. 오후 3시 44분께 아파트 엘리베이터 안에서 흉기로 A양을 위협하며 납치를 시도했고, 아이가 격렬히 저항하자 무차별 폭행을 가한 뒤 달아났다.

때마침 “살려달라”는 비명을 들은 이웃 여대생 B씨가 달려왔고, A양은 몇 분 만에 구조됐다.

일산 초등생 납치미수 사건 현장 CC(폐쇄회로)TV 갈무리

하지만 경찰의 초기 대응은 처참했다. 출동한 경찰은 납치 시도 정황에도 불구하고 이를 ‘단순 폭행 사건’으로 분류해 윗선에 보고했다. 지문 채취는커녕 현장 CC(폐쇄회로)TV조차 확보하지 않는 등 태만한 수사가 이어졌고, 결국 피해 아동의 부모가 직접 범인의 얼굴이 담긴 수배 전단을 제작해 인근 아파트 단지에 돌려야 했다.

사건은 나흘 뒤인 3월 30일, 한 방송사가 “초등학생 여자아이가 아파트 승강기에서 납치될 뻔하다가 가까스로 빠져나왔다”면서 “진지한 고민 끝에 문제의 폭행장면과 범인의 얼굴이 나오는 화면을 공개한다”며 보도하면서 반전을 맞았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이 일산경찰서를 직접 방문해 “경찰이 이래서 되겠나. 범인을 빨리 잡으라”고 호되게 질타했다. 국가적 관심사로 떠오른 이후 언론 보도를 접한 이명철의 동거녀가 경찰에 신고하면서 검거는 불과 몇 시간 만에 이뤄졌다.

일산 초등생 납치미수 관련 용의자 수배 전단지. 사진=일산 경찰

◇‘징역 10년’ 살고 나온 연쇄 아동 성폭행범의 재범=조사 결과 이명철은 초범이 아니었다. 그는 이미 1995년 12월부터 1996년 3월까지 5~9세의 어린 여자아이 5명을 상대로 아동성추행과 강간 혐의 등 성범죄를 저지른 ‘연쇄 아동 성폭행범’이었다.

당시 그는 아파트 단지 내에서 혼자 다니는 아이들을 노려 흉기로 위협하며 범행을 저질렀다. “나는 경찰인데, 말 안 들으면 감옥에 가둔다”, “내 말 안 들으면 찢어죽이겠다. 나는 착한 사람이니까 말을 잘 들어라”, “내 말 잘 들으면 살려주고 안 들으면 죽인다”, “이후에 나를 만나면 아는 체 하지 말아라” 등의 협박을 일삼으며 아이들을 공포에 몰아넣었다.

이명철은 1996년 10월 1심에서 징역 12년을 선고받았지만, 항소심에서 전과가 없다는 이유로 10년으로 감형됐다. 이후 만기 출소 5개월을 앞둔 2005년 12월 23일 가석방으로 풀려났다.

그리고 출소 2년 3개월 만, 누범기간 중임에도 또다시 비슷한 유형의 범죄를 저질렀다.

◇“심신미약은 아니지만 자존감 낮아”…2심, 8년 감형=해당 사건으로 이명철은 2008년 5월 23일 1심에서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다. 당시 재판부는 “피고인의 범행으로 피해자는 평생 회복되기 어려운 정신적 상처를 받았다. 누범기간 중에 또 동종범행을 저질렀으며 앞으로 범행을 반복할 위험성도 대단히 높다”고 판결했다.

하지만 2심 재판부는 형량을 징역 8년으로 대폭 낮췄다. 이명철이 주장한 “술에 취해 심신미약이었다”는 주장은 인정하지 않았지만 범행을 저지르기 직전의 기분 상태를 고려한 것이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범행 이전에 지인과 다투는 과정에서 자존감이 손상되고 상당한 정도의 좌절감과 분노감을 경험하게 돼 그 분노감의 표출로써 저항 못하는 대상을 향한 폭력행동이 나타나 범행에 이르렀다”고 판단했다.

또한 “피고인은 자신의 행동에 대한 죄책감을 경험하고 있지는 않는 것 같다. 피고인은 자아상이 부정적이고 열등감이 심하며, 자존감이 매우 낮은 사람인 것 같다”며 “인지적·정서적 차원과 사회적 지지가 매우 제한됐으며, 긴장과 갈등 상황을 견디는 힘은 매우 부족한 사람인 것 같다”고 판시했다.

이어 “피고인이 범행을 모두 시인하고 잘못을 뉘우치는 점 등을 고려하면 원심의 징역 15년은 지나치게 무거워서 부당하다”며 “저항을 못 하는 대상에게 폭력을 행사했고, 특별히 소아기호증을 갖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평가”라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하지만 이명철은 이미 10세 미만 아동 6명을 상대로 성범죄를 저지른 전력이 있었다.

결국 2009년 2월 12일 대법원은 검찰의 상고를 기각하고 2심과 같은 징역 8년형을 확정했다.

◇형기 마치고 2016년 출소=이명철은 2016년 4월 출소했다. 당시에는 전자발찌 제도가 도입되기 직전이어서 부착 명령도 내려지지 않았다.

다만 현재는 소급제도가 마련돼 전자발찌를 착용했을 가능성이 있지만, 정확한 관리 실태는 알려지지 않았다. 그는 현재 경기도 성남시 일대에 거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출소 이후 약 10년이 지났다. 아동 성범죄자 조두순 못지않은 범행을 저질렀던 인물이지만, 그의 이름은 점차 잊혀지고 있다. 하지만 피해 아동들이 평생 안고 가야 할 상처는 사라지지 않았다.



김도연 AX콘텐츠랩 기자 dorem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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