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멸·성찰의 시간 색으로 기록


[충청타임즈] "식재료에서 얻은 색과 햇빛, 시간으로 인화되며 그 이미지는 서서히 바래고 끝내 사라질 수밖에 없다. 이 소멸의 시간을 통해 풍족하고 당연해 보이는 식량이 앞으로도 우리 곁에 그대로 남아 있을 수 있을지를 묻고자 했다."
앤토 타입, 시아노 타입, 검프린 등 아날로그 인화 기법으로 청주에서 활동하고 있는 사진작가 이혜정의 작가 노트 `Anthotype : 사라지는 색으로 남기는 기록' 사진 중 일부다.
이혜정은 기후변화에 의한 식량 문제에 관심을 두고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그의 사진은 식량이 사진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이미지를 만드는 재료가 된다.
이혜정 작가(사진)의 개인전이 오는 3일부터 16일까지 청주 예술곳간에서 열린다.
엔토 타입은 꽃, 잎, 열매 등 식물이 지닌 고유의 색소를 종이 위에 바르고 햇빛에 오래 노출해 빛과 시간, 식물의 색이 함께 작용할 때 형상을 드러내는 19세기 초의 사진 인화 방식이다.
이혜정은 음식점을 운영하면서 사람을 살리기 위해 길러지고 재배된 것들이 대량생산과 소비의 흐름 속에서 다시 환경을 해치고 그 결과가 우리의 먹을거리를 위협하는 현실을 보면서 먹는다는 일이 결코 단순하거나 가벼운 일이 아니라는 생각을 품어왔다.
이번 전시의 사진들은 쌀, 옥수수, 배추, 무처럼 우리가 흔히 먹는 식재료를 꽃의 형상으로 구성해 이미지를 만들고 다시 비트, 시금치, 오디 등 먹을 수 있는 식재료에서 얻은 색소로 인화했다.
작가의 사진들은 식재료에서 얻은 색과 햇빛, 시간으로 인화되며 그 이미지는 서서히 바래고 끝내 사라질 수밖에 없는 소멸의 시간을 통해 풍복하고 당연해 보이는 식량이 앞으로도 우리 곁에 그대로 남아 있을 수 있을지를 묻는다. 식량이 사진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이미지를 만드는 재료가 돼 기후변화 앞에서 점점 불안해지고 있는 오늘의 밥상을 다시 바라보게 한다.
이혜정은 이번 전시를 통해 기후변화는 더 이상 추상적인 담론이 아니라 생산과 유통, 계절과 수확, 저장과 폐기의 전 과정을 흔드는 현실이 됐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홍경한 미술평론가는 "작가의 작품은 기후위기와 식량 시스템의 구조적 물제를 다루면서도 개인적 체험과 성찰의 차원을 잃지 않는다"며 "기후위기, 환경과 인간이라는 거대한 사회적 의제를 일상적 경험의 자원으로 끌어내리고 식재료의 변화를 넘어선 식탁을 중심으로 한 우리의 일상적 삶의 방식 전체가 변화할 가능성에 대해 짚는다"고 설명했다.
/이형모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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