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인천해사국제상사법원, '위치'보다 '방향'이다

올해 2월, 인천과 부산에 해사사건과 국제상사사건을 전담하는 해사국제상사법원을 2028년까지 설치하는 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인천은 지난 10여 년간 해운업계와 법조계, 시민사회가 힘을 모아 이 법원을 유치하기 위해 노력했다.
인천해사국제상사법원 설립은 인천이 국제법률도시로 도약하는 중요한 출발점이 될 것이다. 그러나 설립이 확정되자마자 각 기초단체가 앞다투어 유치 경쟁에 나서고 있다. 국가기관이 지역에 들어오기를 바라는 마음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다만 지금 우리가 먼저 고민해야 할 것은 '어디에 둘 것인가'가 아니라 '어떤 법원을 만들 것인가'이다. 방향에 대한 합의 없이 위치부터 정하는 것은 본질을 놓치는 일이다.
해사국제상사법원은 기존 지방법원이나 고등법원과는 성격이 다르다. 정해진 사건을 처리하는 기관이 아니라 국제분쟁 해결 플랫폼으로서 새롭게 설계되어야 하는 법원이다. 해사사건은 구조적으로 사건 수가 많지 않고, 국제상사사건 역시 중재와 조정으로 해결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즉 사건이 모일 수 있는 환경을 스스로 만들어야 하는 특수한 법원이다.
따라서 해사국제상사법원의 성패는 '입지'가 아니라 '생태계'에 달려 있다. 국제중재와 연계된 분쟁 해결 구조, 외국 기업과 법률전문가가 신뢰할 수 있는 제도,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하는 운영 시스템이 함께 구축되어야 한다. 단순한 법원 건물이 아니라 국제분쟁 해결 중심지로 기능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야 한다.
입지 역시 이러한 방향 속에서 판단되어야 한다. 지하철 등 대중교통 여건은 물론이고, 변호사와 전문가들이 활동할 수 있는 사무실, 외국인 당사자와 법률가들이 머물 수 있는 숙박·비즈니스 인프라가 필수적이다. 특히 공항 접근성과 국제도시로서의 개방성은 중요한 요소가 된다. 나아가 향후 법원과 관련 기관이 확장될 것을 고려한 충분한 부지도 확보되어야 한다.
더 큰 문제는 현재 인천의 법원 인프라가 이러한 변화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2028년에는 인천고등법원, 인천북부지원, 해사국제상사법원에 더해 인천회생법원까지 들어설 예정이다. 그러나 기존 학익동 인천지방법원 부지는 이미 포화 상태이다. 이제는 개별 법원 위치를 나누어 고민할 것이 아니라 인천에 들어설 많은 법원을 어떻게 모아서 법조단지로 만들지 고민해야 한다.
이를 위해 인천시와 인천시의회는 더욱 과감한 청사진을 제시해야 한다. 해사국제상사법원을 중심으로 국제중재센터와 로펌 집적단지, 법률 서비스 산업을 함께 육성하는 종합 계획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할 조례와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시민에게 이러한 정책을 설명하고 동의를 얻어야 한다. 이후 법원행정처와의 긴밀한 협의를 통해 장기적 확장성을 고려한 최적의 입지를 선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인천은 이제 여섯 개 법원을 갖춘 도시로 성장하고 있다. 이는 다른 어느 도시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법률 인프라다. 이 기회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인천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국제법률도시로 도약할 수 있다.
결국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유치 경쟁'이 아니라 '방향에 대한 합의'이다. 해사국제상사법원을 통해 인천이 무엇을 얻고, 어떤 도시로 나아갈 것인지에 대한 공동의 비전이 먼저 마련되어야 한다. 위치는 그다음 문제다. 인천의 미래는 어느 한 지역의 몫이 아니라, 시민 모두의 선택에 달려 있다. 해사국제상사법원을 인천 발전의 기회로 만들 것인지, 또 하나의 지역 갈등으로 남길 것인지는 지금 우리의 판단에 달려 있다. 이제는 경쟁이 아니라 협력으로, 위치가 아니라 방향으로 나아갈 때다.
/조용주 변호사·인천변호사회 국제분쟁법원유치특별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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