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만필] 공천의 그늘, 숙의는 어디에 있는가

천현진 2026. 3. 30.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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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6월 3일 치러지는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공천' 관련 뉴스가 연일 쏟아지고 있다. 특히 정당 지지세가 뚜렷한 일부 지역에서는 시·군의원 선거의 경우 공천이 곧 당선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 때문에 시장·군수 못지 않게 공천 경쟁이 치열하다. '깃발만 꽂으면 당선'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특정 정당이 공천을 확정하면 열세인 정당은 아예 후보조차 내지 않아 단독 출마에 따른 무투표 당선이 속출한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2022년 실시된 제8회 지방선거에서 전체 당선자 4천131명 가운데 490명(약 12%)이 투표 없이 무혈입성했다. 유권자의 선택 이전에 정당이 지역 대표자를 선출한 셈이다. 대의제 민주주의가 안고 있는 명백한 한계다.

이러한 대의제를 보완하는 메커니즘으로 주창된 것이 바로 숙의민주주의다. '숙의'(熟議)는 단순한 선택이 아니라 깊이 생각해 논의하며, 다양한 정보와 의견이 교환되고, 성찰을 거쳐 공적 판단에 이르는 합리적 의사소통 과정이다. 민주적 결정이 적법성을 얻으려면 투표 이전에 실질적인 숙의가 선행되어야 한다. 이 과정을 통해 민주주의는 비로소 형식적인 절차를 넘어 내실있는 내용을 갖추게 된다. 특히 숙의민주주의는 시민의 판단 능력 자체를 문제 삼기보다 그러한 판단이 가능하도록 하는 정보와 토론의 조건, 즉 '공적 환경'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시민들이 모여 민주적 숙의를 이어가는 담론적 공간이 '공론장'이 되고, 이 공론장에서 제기되는 공적 사안을 시민들에게 공유하고 여론으로 전환시키는 핵심 매개체가 바로 '언론'이다.

이러한 언론의 역할은 특히 지방선거에서 더욱 중요하다. 지방선거는 거대 담론이나 이념보다는 교통, 복지, 환경, 교육 등 주민들의 일상과 직결되는 생활정치의 무대다. 그럼에도 선거 때마다 일각에서 유권자의 합리적 판단 부재를 지적하곤 한다. 그러나 이는 시민의 무지나 무관심 탓이 아니다. 오히려 제대로 된 정치적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돕는 정보 구조와 토론 환경이 충분히 제공되지 않은 데서 비롯되는 문제다. 실제 시민들이 숙의 토론에 참여하는 과정을 통해 정치적 지식과 역량이 향상된다는 경험적 증거들이 있다. 결국 숙의를 가능케 하는 것은 시민의 자질이 아니라 공론이 형성될 수 있는 조건의 문제다.

이처럼 숙의민주주의는 공론장이 작동하기 위해 매개자로서의 언론의 역할을 강조한다. 언론은 흩어진 쟁점을 입체적으로 구조화하고 다양한 관점을 연결함으로써 공적 토론의 장을 열어야 한다. 특히 공적 숙의는 단순히 정보의 양을 늘리는 데 그치지 않고, 지역사회의 '문제를 정의'하고 '대안을 비교'하는 과정 속에서 형성된다. 그러나 6.3 지방선거를 둘러싼 현실을 직시해 보면, 아쉬움이 크다. 연일 반복되는 선거 관련 보도와 정당 간 소모적인 갈등 구도는 우리 사회의 숙의의 토대가 아직 얼마나 취약한지 여실히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인물 중심 대결 구도, 공천 경쟁의 속도, 진영 간의 갈등 등은 기사화하기 쉽다. 공천이 선거를 대체하는 상황에서 지역언론마저 이러한 단순 정치 뉴스를 중계하는 데 그친다면, 숙의의 기반은 더욱 약화될 수 밖에 없다. 선거 뉴스가 판세의 '전략'과 '승패'만을 반복해서는 안 된다. 단독 공천이 유권자의 선택권을 어떻게 제한하고, 지역 정치 구조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짚어내며, 지역사회에 어떤 민주적 함의를 가지는지 설명해야 한다. 정보의 단편화와 정책 검증의 부재는 결국 숙의를 가로막는다.

숙의는 민주주의와 분리될 수 없다. 만약 숙의가 작동하지 않으면 우리에게 남는 것은 절차뿐인 반쪽짜리 민주주의다. 그리고 그 반쪽마저 공천 단계에서 사실상 끝나버리는 게임이라면, 과연 투표장을 나서는 유권자에게 선거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6.3 지방선거가 또다시 몇 달간의 소음과 표를 모으는 승패의 기록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질문을 던지고, 그 질문을 공론장 한가운데로 끌어올려야 한다. 그것이 지금, 지역언론이 감당해야 할 막중한 책무다. 선거까지 앞으로 남은 두 달, 짧지만 긴 시간이다.

천현진 국립순천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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