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돋보기] 마네와 빛의 도시 파리

2026. 3. 30.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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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세계적인 미술관인 피노 컬렉션과 퐁피두 센터 사이를 오가다 보면 한때 '파리의 위장(胃腸)'이라 불렸던 레 알 지구를 지나게 된다.

한 구매자가 마네에게 아스파라거스 그림을 주문했다.

세잔의 정물화가 사물의 견고한 구조를 탐구했다면 마네의 정물화는 자본과 빛의 흐름 속에서 명멸하는 상품의 환영을 쫓았다.

빛과 상품과 군중이 교차하던 파리에서 사물이 어떻게 보이는지 탐구한 마네의 예술은 급변하는 사회를 그림이 어떻게 담아낼 수 있는지 묻는 작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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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호 이응노미술관 학예팀장

파리의 세계적인 미술관인 피노 컬렉션과 퐁피두 센터 사이를 오가다 보면 한때 '파리의 위장(胃腸)'이라 불렸던 레 알 지구를 지나게 된다. 레 알은 과거 노천시장이 있던 자리로 1854년 건축가 빅토르 발타르는 도시 현대화 명목으로 구 시장을 허물고 당시엔 생소한 재료였던 유리·철골을 사용해 파빌리온 시장을 지었다. 소설가 졸라가 '기계장치'라 부른 이 건물은 재료의 혁신성과 함께 전례없던 시각 경험을 선사했다. 천장 유리에서 빛이 쏟아졌고 산더미처럼 쌓인 청과물은 그 빛 속에서 색과 형태를 뒤섞으며 반짝였다. 졸라는 눈이 어지러울 만큼 넘쳐나는 사물들의 스펙터클을 탐욕스럽고 집요한 문장으로 밀어붙이며 대량유통 시대의 물신적 혼미함을 가시화했다. 식료품은 마치 쇼윈도의 사치품처럼 시각적으로 소비되고, 보는 행위 자체가 욕망이 되었다.

상품과 이미지가 넘쳐나는 시대를 사는 현대인들에게 19세기 파리지앵의 경험을 상상하기란 어려운 일이나, 범람하는 상품 앞에서 시선이 길을 잃는 감각만큼은 우리도 잘 알고 있다. 가스등이 켜진 파리의 신작로에는 마차와 군중이 물밀듯 쏟아졌고, 새로 들어선 유리 진열장마다 상품이 넘쳐흘렀다. 그 광경을 만보객의 시선으로 관찰했던 시인 보들레르는 현대성의 절반은 '덧없고 일시적인 찰나'에 있음을 간파했다.

마네는 막 현대화된 파리의 스펙터클한 시각경험을 유심히 살펴본 화가였다. 그는 그림 속 공간에 깊이를 부여하기보다는 화면을 평평하게 구성해 대상을 표면 위에 밀착시키듯 그렸다. 〈피리 부는 소년〉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평면성은 정물화에서 더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정물을 3차원 공간에 두는 대신 진열장에 바짝 붙여 보여주듯 평평한 화면 위에 위치시켰다. 시선은 대상의 외양에만 잡아두고, 정물은 마치 진열대에 놓인 상품처럼 생생하게 드러난다.

마네의 정물화 〈아스파라거스 한 다발〉에 얽힌 일화는 화폭을 진열대로 삼았던 화가의 전략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한 구매자가 마네에게 아스파라거스 그림을 주문했다. 완성된 작품을 받아본 구매자는 그림이 마음에 들어 약속한 800프랑보다 많은 1000프랑을 보냈다. 200프랑을 더 받은 마네는 작은 캔버스에 '아스파라거스 한 줄기'만 더 그려 보내며 "보내드린 그림에서 한 줄기가 빠져 있더군요"라는 재치 있는 메모를 덧붙였다. 현재 오르세 미술관에 소장된 이 〈아스파라거스 한 줄기〉는 초과 지불된 200프랑에 상응하는 교환가치를 부여받은 셈이다. 마네는 그림을 실물과 등가로 만들며 상품의 매혹이라는 '현대적 경험'을 그리려 했다.

세잔의 정물화가 사물의 견고한 구조를 탐구했다면 마네의 정물화는 자본과 빛의 흐름 속에서 명멸하는 상품의 환영을 쫓았다. 본질보다 표면의 매혹을, 영원보다 찰나의 현대성을 쫓았던 마네의 의도는 생의 마지막에 그린 꽃 정물에서 만개한다. 꽃의 형태를 흐리는 빠른 붓질은 역설적으로 꽃의 필멸성을 드러내며 양식과 의미가 완벽하게 일치되는 정물화를 탄생시킨다. 순간의 붓질이 찰나의 낙화가 되는 그 순간은 감동적이다. 덧없음이 재현의 대상이 아니라 붓을 놀리는 행위 자체로 드러나는 것이다.

빛과 상품과 군중이 교차하던 파리에서 사물이 어떻게 보이는지 탐구한 마네의 예술은 급변하는 사회를 그림이 어떻게 담아낼 수 있는지 묻는 작업이었다. '19세기의 수도' 파리의 진열장에서 태동한 사물에 대한 매혹은 훗날 미국의 개념미술가 바바라 크루거가 "나는 쇼핑한다, 고로 존재한다"라고 선언할 만큼 오늘날 소비사회에서도 현재진행형이다. 어쩌면 마네의 예술은 본질보다 이미지의 유혹에 매몰되어 있는 우리의 민낯을 비추는 거울일는지도 모른다. 김상호 이응노미술관 학예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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