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신기술 개발해도 현실화 산넘어산 … 다 해외로 떠날판"

김송현 기자(kim.songhyun@mk.co.kr) 2026. 3. 30.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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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 의료AX 막는 3대 장벽
①R&D위한 의료데이터 확보
동의·허가 절차 수십번 필요
②의료보험 수가 책정 단계서
방대한 임상데이터 요구
개인 창업자는 확보 어려워
③국내 의료산업 생태계 부재
신기술 수익화 쉽지 않아
지난 23일 서울대병원의 한 수술실에서 이규언 서울대병원 외과 교수가 수술로봇 '다빈치'와 손가락을 맞대고 있다. 이승환 기자

2024년부터 망막검사 보조 인공지능(AI)을 개발하던 의공학자 김 모씨는 최근 미국행을 결심했다. 미국과 한국에서 유사한 AI 서비스를 개발한 창업자가 두 나라에서 받은 대우가 천지차이란 사실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김씨는 "한국에서는 몇 개월 동안 정부의 인허가에 끙끙대야 하는데, 미국에서는 수십억 원 규모의 투자 제안을 받았다더라"며 "국내 의료 기술 발전을 위해 개발한 기술인 만큼, 안타깝지만 현실의 벽은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서울대에서 가장 학생·교수 창업 열기가 뜨거운 곳은 공과대학이나 상과대학이 아닌 의과대학이다. 학내 창업동아리 가입자만 100명을 훌쩍 넘는다. 교수들 역시 창업을 준비하는 학생들에게 일대일 상담과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하지만 창업 조언을 하는 의대 교수들의 표정이 마냥 밝지만은 않다. 우리나라에서 의료 기술을 개발해 수익을 창출한다는 것은 '사막에서 바늘 찾기'처럼 어렵다는 걸 알아서다.

한 서울대 의대 교수는 "창업자들이 국내에서 꽃을 피울 수 있으면 좋겠지만 우리나라는 미국 등 다른 나라에 비하면 넘어야 할 산이 너무 많고 높다"며 "창업자 개인을 생각하면 '개발은 한국에서 해도 창업은 무조건 미국에서 하라'고 조언할 수밖에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AI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국내에서도 AI를 활용한 의료 신기술 개발·창업 열기가 뜨겁다. 하지만 까다로운 보안 문제와 수익을 창출하기 어려운 국내 의료시장의 구조적 한계로 인해 국내 의료 산업 성장은 여전히 더딘 상황이다.

30일 한국보건산업진흥원에 따르면 국내의 의사 창업 기업은 263개에 달한다. 알파고가 등장한 2016년 이후 창업 기업이 전체의 76%에 이를 만큼 의료 기술 개발은 AI를 중심으로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현장에서 체감하는 의료 AI 산업은 여전히 정부 영향력에 좌지우지될 만큼 독립적이지 못하다. 현재 의료 신기술 창업은 크게 4단계를 거친다. 먼저 병원의 건강 데이터를 기반으로 새로운 기기·소프트웨어(SW)를 연구개발(R&D)한다. 그러나 R&D를 위한 데이터 확보를 위해선 동의 및 허가 절차만 수차례 반복해야 한다. 현행 의료 AI 법제들이 AI기본법·개인정보보호법·의료법으로 분산돼서다.

이형철 서울대병원 헬스케어AI연구원 부원장은 "AI가 화두가 되면서 데이터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해졌다"며 "하지만 여전히 건강 데이터 확보가 R&D의 첫 번째 걸림돌이다. 허가 절차가 많은 건 물론 같은 환자나 병원의 데이터도 기관마다 분절된 탓에 좌절하는 연구자들이 많다"고 말했다.

R&D에 성공해도 복잡하고 까다로운 인허가 및 보험 등재 절차가 기다리고 있다. 의료 기술이 수익을 내기 위해선 단순히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인허가를 받는 것을 넘어 보험에 등재돼 의료수가를 책정받아야 한다. 병원에 금액을 지불하는 주요 주체가 의료 서비스를 제공받는 환자가 아닌 건강보험 등 보험인 만큼, 보험 등재를 위해선 기술의 안전성과 혁신성뿐 아니라 진료나 치료 효율 향상에 따른 경제성까지 입증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통상적으로 방대한 양의 임상 데이터가 필요하다. 하지만 의료수가가 병원 수입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국내 의료시장 특성상 보험에 등재되지 않은 기술은 다수 병원에서 사용되며 임상 데이터를 확보하기 어렵다.

서종모 서울대병원 의생명연구원 교수는 "보험 등재를 위해선 수익을 포기하고 임상 데이터를 쌓아야 한다. 그럴 수 있는 건 대학병원 정도인 만큼, 다양한 역량을 가진 의료 창업자가 나타나기 힘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의료 산업 생태계의 부재 역시 창업을 꺼리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다. 서울대 의대 출신의 한 창업자는 "의료 창업이 활발한 미국의 경우 기술만 개발해도 이를 구매해 판매하는 기업들은 물론, 인수·합병(M&A) 등으로 엑시트(Exit)할 창구가 많다"며 "국내는 그럴 기업이 없기에 상장을 하거나 본인의 진료실에서 사용하는 정도 외에는 수익화 창구가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김송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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