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항모로 위협하고 기름은 내어준 트럼프…65년 묵은 '美·쿠바 갈등' 종착점 오나? [HK영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다음 타켓은 쿠바"라며 중남미인 파나마 앞바다에 50년 만에 항공모함을 전진 배치했다. 그러나 정작 최악의 에너지 난에 허덕이는 쿠바의 숨통을 틔워줄 러시아 유조선의 입항은 묵인한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과거 '제3차 세계대전'을 불사하며 소련(러시아) 선박을 막아섰던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과는 180도 다른 행보로, 군사적 공포를 극대화하면서도 실질적인 무력 충돌은 피하며 스스로 무너지기를 기다리는 고도의 '고사(枯死) 작전'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생명줄 끊긴 쿠바, 50년 만의 美 항모 전개에 '초긴장'
현재 쿠바는 국가 마비 사태에 직면해 있다. 지난 1월 미국이 쿠바의 최대 원유 공급처였던 베네수엘라의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을 체포하면서, 쿠바로 향하던 원유 공급이 전면 중단됐기 때문이다. 게다가 미국이 쿠바에 원유를 수출하는 국가에 관세 폭탄을 경고하면서 멕시코마저 지원을 중단한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은 군사적 압박의 수위를 최고조로 끌어올렸다. 지난 29일(현지시간) 파나마 아마도르 항구에는 미 해군 이지스 구축함 그리들리함이 입항했고, 연안에는 핵 추진 항공모함 니미츠함이 닻을 내렸다. 미 항모의 파나마 해역 진입은 50여 년 만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7일 마이애미에서 열린 포럼에서 베네수엘라와 이란에 대한 미군의 작전 성공을 과시하며 "내가 이 위대한 군대를 건설했다. 그리고 그다음은 쿠바다"라고 공개적으로 경고해 긴장감에 기름을 부었다.
64년 전 케네디의 '해상 봉쇄'와 달랐다… 러 유조선 묵인한 트럼프
하지만 팽팽했던 긴장감은 주말 사이 뜻밖의 반전을 맞았다. 미국의 강력한 해상 봉쇄령을 뚫고, 약 65만 배럴의 원유를 실은 러시아 국적 유조선 '아나톨리 콜로드킨'호가 30일(현지시간) 쿠바 마탄사스 항구에 진입한 것이다.
러시아 선박이 멀쩡하게 쿠바 앞바다에 등장한 이 장면은 자연스럽게 1960년대 냉전 시대의 아찔했던 기억을 소환했다. 1959년 피델 카스트로의 혁명 이후 쿠바가 미국 자산을 몰수하자, 미국은 즉각 금수 조치를 내렸다. 이에 쿠바는 소련과 손을 잡고 원유와 군사 지원을 받기 시작했고, 급기야 1962년 10월 쿠바에 소련의 핵미사일 기지가 건설되고 있다는 사실이 발각되며 이른바 '쿠바 미사일 위기'가 발발했다.
당시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은 대국민 연설을 통해 "억압받는 쿠바 섬에 공격용 미사일 기지가 건설되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가 확인됐습니다. 그 목적은 서반구에 대한 핵 타격 능력을 제공하는 것 외에 다른 것일 수 없습니다"라고 강력히 경고했다. 그는 핵전쟁의 위험을 무릅쓰고 소련 군함의 쿠바 진입을 막는 전면적인 '해상 봉쇄'를 단행했다.
"어차피 끝난 정권"… 무력 충돌 대신 '스스로 붕괴' 노려
그러나 64년이 지난 지금, 트럼프 행정부의 대응은 전혀 달랐다. 논란이 일자 트럼프 대통령은 29일(현지시간) 에어포스 원에서 기자들과 만나 "어떤 나라가 지금 쿠바에 석유를 보내고 싶어 한다면 문제 삼지 않겠다. 그게 러시아든 아니든 상관없다"며 묵인 사실을 인정했다.
그는 제재 완화의 이유로 쿠바 정권의 '붕괴 임박론'을 내세웠다. 트럼프 대통령은 "쿠바 정권은 이미 끝났다. 그들은 베네수엘라로부터 얻던 수입이 완전히 끊겼다"며 "기름을 받든 못 받든 그 부패한 정권이 무너진다는 결과는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외교가에서는 이를 두고 트럼프 행정부가 주민의 생존을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실상은 이란과의 무력 충돌이 벌어지는 상황에서 러시아 '그림자 함대'와의 해상 무력 충돌이라는 또 다른 전선을 피하기 위한 우회적 조치라고 분석한다. 3차 대전을 불사했던 케네디와 달리, 불필요한 마찰을 피하면서 봉쇄로 인한 쿠바의 내부 붕괴를 유도하겠다는 계산으로 보인다.
쿠바, 군부의 경제 장악… "타협점 찾기 어려워"
미국의 '당근과 채찍' 전술에도 불구하고 양국 간의 극적 타결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미겔 디아스카넬 쿠바 대통령은 최근 "미국과 대화할 준비가 되어 있지만, 압박 속에서는 대화할 수 없다"며 미국의 일방적인 굴복 요구에 선을 그었다.
플로리다 인터내셔널 대학교(FIU) 쿠바 연구소의 세바스티안 아로스 임시 소장은 "과거 오바마 행정부의 미국-쿠바 관계 정상화 시기 동안, 쿠바 정권은 오히려 민간 부문을 없애고 군부 기업인 가에사(GAESA)를 통해 국가 경제의 65%를 장악하는 등 권력을 중앙에 집중화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과거엔 쿠바가 경제적 이익을 얻었기에 미국과 대화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며 "미국은 쿠바 정권의 퇴진을 원하고, 쿠바 정권은 생존을 원하기 때문에 양측이 합의에 도달하기는 매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숨 막히는 경제 봉쇄와 압도적인 무력시위 속에 놓인 쿠바, 그리고 '고사 작전'을 펴는 미국의 대치가 어떤 결말을 맺을지 전 세계의 이목이 중미 앞바다로 쏠리고 있다.

김영석 한경디지털랩 PD youngston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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