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비디아·AMD 러브콜…삼성전자, HBM4·파운드리 동시 반등

“생큐 삼성.”
3월 셋째 주 미국과 한국에서 반도체 업계 판도 변화를 상징하는 장면이 펼쳐졌다. AI 시대 메모리 반도체 기업의 존재감이 커지면서 엔비디아의 기술 콘퍼런스인 ‘GTC 2026’에서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더 큰 관심을 받았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는 삼성전자가 엔비디아의 차세대 AI 칩을 생산하기로 했다면서 직접 감사를 표했다. 3월 18일 기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가는 일주일 동안 10% 넘게 뛰었다. 반면 차세대 AI 청사진을 발표한 엔비디아 주가는 같은 기간 2.5% 하락했다.
엔비디아는 GTC에서 2027년까지 1조 달러 규모의 AI 칩 매출이 발생할 수 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미 엔비디아에 대한 기대가 높았던 시장이 이를 주가에 선반영한 만큼 추가 상승 여력은 오히려 공급망에 더 집중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투자자들이 ‘엔비디아의 성장’ 자체보다는 성장의 수혜가 어디로 번질지를 더 따진 것이다.
엔비디아가 미국에서 GTC를 진행하는 동안 AI 가속기 시장 2위 기업인 AMD의 리사 수 CEO는 한국을 찾았다. 리사 수 CEO가 한국을 찾은 건 2014년 취임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3월 18일 삼성전자 평택 캠퍼스를 방문한 그는 양사의 새로운 협력을 발표했다. 저녁에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한남동 승지원에서 만찬을 함께했다.
엔비디아와 AMD의 러브콜 이후 증권가에서는 삼성전자의 목표주가를 올려 잡았다. 노무라증권·미래에셋증권·하나증권 등은 삼성전자 목표주가를 30만원 이상으로 전망했다.
삼성전자는 이번 엔비디아 GTC, AMD와의 협력에서 많은 것을 얻었다. 수조원대 적자를 내던 파운드리사업이 연이어 빅테크 수주를 따냈고 SK하이닉스와 마이크론에 밀렸던 고대역폭메모리(HBM)는 업계 최초 HBM4를 양산하면서 엔비디아, AMD 공급 계약으로 역전의 기회를 잡았다.
여기에 엔비디아, AMD가 모두 차세대 AI 반도체를 삼성전자와 함께 만들고 있는 만큼 삼성전자가 단순 메모리 공급사를 넘어 AI 인프라의 핵심 파트너로 올라섰다는 평가가 나온다.
아픈 손가락이었던 파운드리 부활
삼성전자는 메모리 반도체 제조 능력과 파운드리 생산 능력, 반도체 설계 능력까지 갖춘 종합반도체(IDM) 경쟁력을 전면에 내세우며 승부수를 던졌다.
삼성전자는 HBM4에 최선단 1c D램과 함께 자사 파운드리의 4나노 공정으로 생산한 베이스 다이를 적용했다. 베이스 다이에 선단 공정을 적용하면 전력 효율을 높이고 신호 지연을 줄여 전체 시스템 성능을 끌어올릴 수 있다. HBM 경쟁이 단순 메모리 기술을 넘어 파운드리와 패키징까지 아우르는 ‘시스템 경쟁’으로 번지고 있다는 의미다.
메모리와 파운드리를 동시에 보유한 삼성전자가 구조적으로 유리하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삼성전자는 시스템LSI사업부를 통해 반도체 설계 능력까지 갖췄다. AI가 추론을 넘어 의사결정까지 하는 ‘에이전틱 AI’ 시대에는 GPU뿐만 아니라 CPU와 메모리 반도체의 역할이 동시에 커지고 있는 만큼 메모리, 파운드리, 설계를 한 지붕 아래 보유한 삼성전자는 ‘턴키 솔루션’을 내세우고 있다.
‘병목 해결’ 최우선 과제, CPU 힘 커졌다
AI는 이제 질문에 답하는 수준을 넘어 코딩, 자율주행, 이미지 생성, 작곡, 업무 자동화 등 실행의 단계로 진화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AI 반도체 기업 역시 GPU의 성능을 무작정 올리기보다는 복잡한 로직 처리와 GPU 지휘를 담당하는 CPU 성능 개선에 힘쓰고 있다. 엔비디아는 GPU ‘루빈’과 CPU ‘베라’로 이뤄진 차세대 AI 가속기 ‘베라 루빈’에서 베라를 떼어내 독립 플랫폼으로 선보였다. 회사 측에 따르면 베라는 기존 랙 스케일 CPU 대비 2배 높은 효율과 최대 50% 빠른 성능을 제공한다.
AI 반도체 경쟁의 초점은 더 빠른 연산보다 시스템 간 연결이 지연되는 ‘병목’을 얼마나 줄이느냐로 옮겨가고 있다. GPU가 아무리 빨라도 CPU와 메모리, 데이터 이동경로가 받쳐주지 못하면 전체 성능은 제한될 수밖에 없다.
삼성전자는 이번 GTC에서 ‘베라 루빈’ 플랫폼에 필요한 모든 메모리를 공개했다. GPU ‘루빈’에 탑재되는 HBM4와 CPU ‘베라’용 서버 메모리 모듈 ‘소캠(SOCAMM)’, 기업용 6세대 SSD ‘PM1763’ 등을 함께 전시하며 메모리 전 라인업을 공급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AMD는 엔비디아 베라 루빈의 대항마인 AI 칩 ‘인스팅트 MI455X’에 삼성전자 HBM4를 탑재하기로 했다. 인스팅트 MI455X에는 HBM4가 16개 탑재된다. 이는 엔비디아 차세대 AI 가속기 베라 루빈 대비 두 배 수준이다. AMD는 AI 서버를 제어하는 CPU ‘헬리오스’와 6세대 ‘EPYC’ 서버 CPU에 적용되는 고성능 D램(DDR5)도 삼성전자와 공동 개발해 공급받기로 했다. 양사의 협력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삼성은 이미 AMD MI350X, MI355X 가속기에 HBM3E를 공급하면서 AMD와 20년 동맹을 이어왔다.
리사 수 CEO 는 “차세대 AI 인프라 구현을 위해서는 업계 전반의 긴밀한 협력이 필수적”이라며 “삼성의 첨단 메모리 기술 리더십과 AMD의 인스팅트(Instinct) GPU, 에픽(EPYC) CPU, 랙 스케일 플랫폼을 결합하게 돼 매우 기쁘다”고 말했다.
엔비디아와 AMD가 모두 차세대 반도체 생산을 삼성전자 파운드리에 맡긴다는 것도 의미가 크다. 엔비디아는 차세대 AI 반도체인 ‘그록3’ 언어처리장치(LPU)를 삼성 파운드리에서 만들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그록3 LPU는 삼성전자의 파운드리 4nm(나노미터·1nm는 10억분의 1m) 공정에서 생산한다. 출하는 올 3분기(7∼9월)로 예상된다.
그록3 LPU는 엔비디아가 GPU 이후 새로운 시장을 열 것으로 기대하는 추론형 AI 칩이다. 그록 LPU의 핵심은 삼성전자가 탑재하는 S램이다. S램은 D램 대비 10배 이상 넓은 면적을 차지하는 대신 처리 속도는 10배가량 빠르다. GPU가 HBM을 외부에서 별도 스택으로 붙여 초고속 배선을 연결하는 구조라면 그록 LPU는 칩 면적의 80%를 S램으로 채워 데이터를 바로 처리하는 구조다. 데이터가 칩 밖을 오가는 이동 자체가 줄어드는 만큼 추론 속도가 빠르고 응답 지연을 줄일 수 있다.
엔비디아는 차세대 AI 가속기인 베라 루빈에 그록3 LPU를 탑재한 뒤 대규모 연산은 GPU에, 신속한 답변은 그록3 LPU에 맡기는 방식으로 운영할 예정이다. 엔비디아는 GPU와 LPU를 결합하면 전력 대비 성능 효율을 최대 35배로 높일 수 있다고 보고 있다.
AMD 역시 삼성전자와 차세대 제품을 위탁생산하는 파운드리 협력을 논의해 나가기로 했다. 그동안 AMD는 메모리에선 삼성전자와 끈끈한 협력을 해왔지만 파운드리에선 주로 TSMC 공정 라인을 이용해왔다. 파운드리 시장에서 TSMC가 차지하는 비중은 70%다.
이런 관행을 깨고 삼성전자 파운드리와의 협업이 본격화한다면 2nm 이하의 최첨단 시스템 반도체 협력이 가능할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다. 삼성 파운드리는 그간의 부진을 털고 지난해 하반기부터 테슬라, 애플 등 빅테크로부터 연이어 계약을 따냈고 엔비디아, AMD 등 AI 반도체 양대 강자까지 고객으로 확보하며 반등의 발판을 마련했다.
한진만 삼성전자 DS부문 파운드리사업부장은 “대형 업체는 수율을 확보하지 못하면 계약을 주지 않는다”며 “그록3은 4nm 공정으로 양산에 들어갔으며 테슬라 AI 반도체는 내년 미국 테일러 팹(생산시설) 양산 예정으로 설계 및 공정 개발이 순조롭게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미래에셋증권 김영건 애널리스트는 “빅테크 고객사를 확보한 선단 파운드리와 메모리를 결합한 사업 모델은 전례가 없다”며 삼성전자 목표주가를 30만원으로 끌어 올렸다.
김영은 기자 kye0218@hankyung.com
Copyright © 한경비즈니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KCC·노루 등 페인트 5사 '가격 담합' 조사…"최대 55% 기습 인상"
- 4월 분양 성수기, 수도권 대단지에 수요 집중…경쟁력 갖춘 '옥정중앙역 디에트르' 분양
- 엘박스, 마이크로소프트 스타트업 커넥션 2026서 AI 에이전트 사례 발표
- '침대=시몬스'...3년 연속 업계 1위
- 디스코드 레벨링 봇 '리더보드', 프리미엄 요금제·미니게임 등 업데이트 실시
- 삼성전자 VS SK하이닉스...'부자'들의 선택은?
- [속보]이란, 반정부 시위자 잇단 처형…공포 정치 강화
- “초과 세수라더니” 정부, 한은에 17조원 차입
- “1조 달러 상장 지렛대로” 머스크 ‘그록’ 강매 논란
- “기동카 쓰면 3만 원 입금” 서울시 역대급 ‘현금 페이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