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량 5부제, 35년 만에 부활 가능성…유가 파동 해법 될까
민간 부제 시행 1991년이 마지막…단기적 효과 있으나 한계도
(시사저널=조유빈 기자)
국제 유가가 다시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서는 등 중동발 리스크가 확산되면서 정부의 에너지 대응 카드도 빠르게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유가가 120달러 이상으로 치솟을 경우 '자원 안보 위기 경보'가 상향되고, 이에 따라 민간 차량 5부제가 도입될 가능성도 거론된다. 공공부문을 넘어 민간까지 '차를 못 타는 날'이 현실화될 수 있다는 점에서 파급력은 작지 않다.

서울 휘발유 1900원…2차 최고가격제 이후 4일 만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길어지면서 국제 유가가 다시 출렁이고 있다. 서부텍사스산 원유(WTI)와 브렌트유 선물 가격은 배럴당 100달러 선을 넘어섰다. 29일(현지시간) 뉴욕상품거래소에서 WTI는 개장 직후 3.4% 급등하며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섰고, 브렌트유도 116.50달러까지 치솟았다. 중동발 불안 속에 국내에서도 기름값 상승세가 이어지고 있다. 2차 석유 최고가격제가 시행된 지 4일 만인 30일 서울의 휘발유 평균 가격은 다시 1900원을 넘겼다.
유가 상승 압력이 이어지자 정부는 수요 억제 카드로 '민간 부제' 도입 가능성까지 열어두고 있다. 구윤철 경제부총리는 전날 KBS 《일요진단》에 출연해 "상황이 더 심각해지면 (자원안보위기경보를) 3단계 정도로 올려야 하고, 그런 단계가 되면 소비도 줄여야 한다"며 "민간에도 협조를 부탁드리기 위해 부제를 도입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고 했다.
자원 안보 위기 경보는 관심, 주의, 경계, 심각 등 네 단계로 구성된다. 정부는 지난 18일 2단계인 '주의'를 발령했다. 유가가 배럴당 120~130달러 수준까지 상승할 경우 이를 '경계' 단계로 격상하고, 민간 차량 5부제 도입을 검토한다는 설명이다. 앞서 기후에너지환경부 역시 자원 안보 위기 경보 단계가 격상되면 민간 부제 시행을 검토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차량 부제는 차량 번호 끝자리에 따라 특정 요일에 자동차 운행을 제한하는 제도다. 5부제가 의무 시행되면 평일 5일 중 하루는 차량을 이용하지 못한다. 단순 계산 시 전체 차량의 약 20% 운행량을 줄이는 효과가 있다. 지난 25일 0시부터 공공부문에서는 차량 5부제가 시행되고 있으며, 기존에는 5부제를 적용받지 않았던 경차와 하이브리드 차량도 대상에 포함됐다.

시행 시 민간 의무화는 35년 만
민간 부제가 의무 시행된다면 1991년 걸프전 시기 이후 35년 만에 이뤄지는 조치다. 당시 '페르시아만 사태 대비 교통부문 대책'으로 두 달간 시행된 차량 10부제는 민관을 가리지 않고 적용됐고, 시내버스와 택시, 화물트럭, 소방·경찰·구급차 등 일부 차량만 제외됐다. 2008년 고유가 상황에서도 승용차 요일제를 시행했지만, '권고' 형태로 이뤄진 바 있다. 그 외에는 국가 행사나 붕괴 사고 여파 등으로 일시적으로 시행됐다.
2000년 유가급등으로 인해 정부가 '에너지 구조혁신 종합대책'을 내놓았을 당시, 공공 부문에서 참여하고 민간의 10%가 참여했을 때 기대되는 에너지 절감액은 당시 기준 1900억원이지만, 민간 의무 시행이 이뤄질 경우 절감액은 1조3000억원으로 늘어나는 것으로 분석됐다. 성수대교 붕괴 이후나 한일 월드컵 당시 차량 부제 시행으로 교통량 감소가 이뤄졌다는 점을 볼 때, 제도가 의무 적용될 경우 휘발유 등 수요를 눌러주는 비상 브레이크 효과가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시민들의 불편과 경제적 손실에 비해 절감 폭이 크지 않다는 점에서 에너지 정책으로서 효과가 희석된다는 비판도 나온다.
세계은행은 2009년 보고서를 통해 베이징 올림픽 이후 요일별로 전체 차량의 약 20% 운행을 제한하는 번호판제가 시행된 사례를 소개하며 정책 수단 효과를 계량 분석한 바 있다. 이 정책은 교통량 감소 등 단기적 효과를 보였지만, 이동 수요 자체를 줄이기보다 교통수단 전환 등에 의존하는 한계가 있는 것으로 평가됐다. 세계은행은 유류세 관련 정책 등 가격 기반 정책이 보다 효율적인 수단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유가 급등기에 수요를 일시적으로 억제하는 비상 대응 수단에 가까운 만큼, 시행 전 촘촘한 정책 설계가 필요하다는 시각이다. 특히 2대 이상의 차량을 가진 가구의 경우 운행을 우회할 여지가 있고, 자가용 의존도가 높은 생계형 운전자들에게 부담이 집중될 수 있다는 점도 변수다. 민간 5부제를 시행할 경우 대상이 되는 차량은 2370만 대다. 한 달간 5부제를 시행할 경우 하루치 석유를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일반 국민들의 불편을 고려해 부제 적용 수위 등을 추후에 검토한다는 입장이다.
Copyright © 시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