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숙 교수의 필름에세이〉기술의 시대, 관계는 어디로…영화 ‘아르코’의 질문

전남일보 2026. 3. 30. 15:52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우고 비엔베누 감독의 ‘아르코’
김정숙 백제예술대학교 명예교수
우고 비엔베누 감독의 '아르코'. 출처 네이버

손녀 아이가 태어나서 손에 펜을 쥐게 되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을 적 동그란 듯 네모난 듯 나름의 형태를 그려놓고 "엄마, 아빠"라 했다. 그렇게 가족을 한참 그리더니 다음으로 선택한 사물이 무지개였다. 어느 햇볕 좋은 날, 거실의 유리탁자에 스며든 무지갯빛 스펙트럼을 아이의 눈은 놓치지 않고 발견해내기도 했다. 아이가 그린 무지개 양끝에는 구름이 걸려 있었다. 신기하기도 하고 귀엽기도 해서 필자는 이 무지개 그림을 디지털 프린팅한 티셔츠를 만들어주었다.

필자가 다녀온 여행지 중에는 무지개가 흔한 곳도 있었다. 바로 하와이다. 여행을 왔는데 무지개가 떠 있으니 행운인 양 길조인 양 마음이 부풀어 환호를 보내게 되는데… 알고 보니, 빈번한 스콜이 지나갈라치면 어김없이 쌍무지개가 떠오르는 곳이었다. 그곳에서야 매일 보듯 흔한 광경이지만, 언제 보아도 무지개는 동심을 되찾듯 늘 행복감을 안겨주는 자연의 선물이다.

아르코는 2932년에 살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거의 1C 후다. 지구의 지력이 쇠할 대로 쇠한 모양이다. 땅의 휴식기를 갖기 위해 사람들은 구름 위 성층권을 생활공간으로 삼는다. 공간을 이동하는 데에는 무지개 망토 하나면 빛의 굴절을 이용해 어디든 어느 시대든 시·공간을 초월한 여행을 떠날 수 있다. 다만, 12세 미만 아이들에게는 망토가 주어지지 않는다.

공룡이 보고 싶은 어린이 아르코는 몰래 누나의 망토를 걸쳐 입고 난생 처음으로 시간여행을 떠난다. 그러다 2075년의 지구에 추락하고 만다. 학교 화단에서 그림을 그리던 아이리스는 무지갯빛을 길게 그리다 옆 숲으로 떨어진 무지개 끝을 좇아 숲 속으로 뛰어간다. 그곳에는 자신과 또래로 보이는 소년이 쓰러져 있다. 아이리스는 아르코를 집으로 데려온다.

아이리스는, 경제활동을 위해 도시로 떠난 부모와 식사시간과 취침시간에만 홀로그램으로 소통한다. 아이리스와 어린 동생은 보모 로봇 '미키'가 양육중이다. 보모뿐 아니다. 인간에게 요구되는 노동력의 대부분은 로봇이 담당한다. 건설현장 노동자가 로봇임은 물론 경찰도, 소방관도, 교사도….

아르코를 돌려보내기 위해 아이리스의 모험이 시작되면서 2075년 지구가 처한 환경적 폐해실상이 드러난다.

2075년의 지구는 예측이 가능하리만큼 문화적 거리감이 크지는 않다. 기후위기와 AI기술 의존도, 기후변화로 인한 예측불허의 천재지변·재난이 닥치면 캡슐 차단막으로 동네를 보호한다거나… 부모-자식 간의 관계에는 홀로그램의 푸른 그림자가 드리워 있고 형제 간에는 로봇 보모가 개입돼 있다.

클래스메이트 간에는 로봇 교사가 있어서 편리함과 인정(人情)을 맞바꾸고 있다. 이른바 인간관계의 단절이 엿보이는 것이다. 애어른 같은 아이리스의 무표정에 가까운(로봇을 닮아가는) 얼굴마저도 50년 후의 미래에 대한 오늘의 우려다.

아르코와 아이리스가 산불화재에 놓여졌을 때, 보모 로봇 미키가 이들을 구해 동굴로 피신시킨다. 이 결과, 로봇의 고장을 피할 수 없어서 미키는 동굴 벽에 그간의 경위를 기록한 후 부서진다. 동굴벽에 생활상을 기록한 고대인들처럼 21세기의 로봇이 3000년 전의 행위를 답습하는 것이다. 이로써 동굴에 새긴 기록을 단서로 아르코 가족이 아르코를 찾아낸다.

이렇듯 고대사회로부터 미래사회로 나아가기까지 사람들이 같은 일을 하고 있다면, 테크놀로지의 발달이 하늘을 찌르듯 세상을 바꾸어놓아도 바꾸지 말아야 할 것이 있어서다.

2075년의 부모는 홀로그램과 AI로 관계를 대신하려 든다. 그러나 2932년의 부모는 아이들 곁에 있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어서다. 그들은 또한 지구환경이 얼마나 소중한지 앎으로써 땅에게 휴식기를 부여한다. 영화 '아르코'는 동화의 외피를 쓴 채 이렇게 말하고 있다. 사람이나 자연이나 필요한 관계는 사랑이며 따스한 정을 나누어야 한다고. 사람 간에 기술적 거리감은 없어야 한다고.

우고 비엔베누 감독은 일본의 마야자키 하야오의 영향을 받아 지브리 스타일의 따뜻한 색감과 섬세한 그림체를 지향한다. 그가 에르메스의 디자이너였던 이력과 프랑스인의 감성을 가진만큼 일본적 지브리 스타일에 거친 질감의 프랑스적 그래픽 노블의 감각을 더하여 모던하면서도 생태주의적 작화를 영화 '아르코'에 담았다. 그렇지만 2D 작화는 배경과의 아울림이 좀 덜한 편이다. 미래를 배경으로 하는 작화에 있어서는 더더욱이나 그러하다.

'아르코'가 3D적인 표현이며 캐릭터, 스토리텔링, 공감적 감성 등에 있어 월등하게 뛰어난 한국적 '케이팝 데몬 헌터스'를 뛰어넘을 수는 없는 일이다. 아카데미가 장편 애니메이션 작품상을 '케이팝 데몬 헌터스'에게 수여한 것은 너무도 당연했다.
우고 비엔베누 감독의 '아르코'. 출처 네이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