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김부겸 대구시장 출마에 거는 기대

대구에서 모처럼 선거다운 선거판이 펼쳐진다. 대구에서는 정권이 어떻게 바뀌든 1988년 총선 이래 민주당 계열 당선자는 딱 1명, 2016년 수성구에서 김문수 전 경기지사와 대결해 승리한 김부겸 외에 아무도 없었다. 김부겸은 민주 진영 내 정통성이나 당 기여도, 개인 역량에 비해 당직운이 없는 편이었다. 우선 1997년 대선 직후 조순, 이기택 등과 함께 한나라당에 입당했다가 다시 복당한 핸디캡 때문에 민주당 내 입지를 확대하는데 한계가 있었다. 복당한 뒤 어지간히 자리를 잡은 2007년부터는 한나라당에서 입당한 서울대 정치학과 선배 손학규계로 분류돼 다시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에서 행정안전부 장관, 국무총리로 승승장구하면서 체급을 크게 키웠다. 그 김부겸이 민주당 대구시장 후보로 고향을 찾는다.
국민의힘이 보여준 공천 관리의 난맥상이 김부겸이 등판할 수 있는 공간을 활짝 열었다. 상대인 국민의힘 후보로는 추경호 의원(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등이 있다.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 주호영 국회 부의장이 경선도 치러보지 못한 채 컷오프된 과정이 문제였다. 들리는 말로는 이정현 공천관리위원장과 장동혁 대표의 속셈이 일치된 결과라는 말이 들린다. 주호영 의원을 컷오프해야 할 정도로 이정현 위원장이 구원(仇怨)이 깊다는 이야기, 그리고 한동훈 전 대표의 대구 보궐선거 출마를 봉쇄하려는 장동혁 대표의 이해가 맞아떨어졌다는 것이다.
손대지 않고 가만 두고 9명의 후보가 완전 경선을 치렀으면 전투력 강한 이미지의 이진숙 전 위원장이 가장 유력했을 것이다. 이진숙 전 위원장이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로 출마했다면 확실하지 않은 선거에 김부겸 전 총리가 등판할 일은 없었을 지도 모른다. 또 보궐선거가 있을 수 없어 한동훈이 대구에 출마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주호영 의원이 당내 경선에서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결과를 얻어 정계 은퇴 압박을 받았을 지도 모른다. 즉 이정현 위원장이 공천에 무리하게 개입하지 않았다면 이정현, 장동혁 양인이 기대하는 대로 대구의 지방선거 정국이 전개될 수 있었을 것이다.
정치에 있어서는 '물 흐르듯이' 또는 '순리대로'가 가장 좋은 전략인 경우가 많다. 고대 중국 춘추전국시대에 나라를 경영하는 지도원리로 제자백가가 등장해 치열한 논쟁을 펼쳤고, 대부분의 나라가 법가 또는 병가를 채택해 부국강병을 이뤘다. 실제로 변방의 후진 약소국 진나라도 법가를 채택해 강성해졌고 마침내 천하를 통일했다. 그러나 한나라의 유방은 항우보다 먼저 진나라 수도 함양을 점령하고 약법 3장으로 민심을 얻었고, 이후 항우를 꺾고 천하를 얻은 뒤에는 무위자연의 도(道)로 통치 원리를 삼았다. 머리를 덜 씀으로써 잔머리를 제압하는 것이다.
김부겸은 2022년 5월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정치 일선을 떠나 경기도 양평에서 은거하다, 고향 대구에서 회심의 일전을 치르게 되었다. 혹자는 샤이보수니, 국민의힘 지지층이 선거 막판에 국민의힘 후보로 결집할 것이니 예상하지만 필자의 생각은 다르다. 국민의힘 지지층은 이번 선거에서는 결집하되, 국민의힘에게 교훈을 주는 쪽으로 결집할 가능성이 높다.
국민의힘이 상대해야 할 후보의 특성 때문이다. 대구 시민들은 박근혜 탄핵 이후 대선 주자급 정치인이 없다는 점에 상실감이 컸다. 2022년 5월 홍준표를 시장으로 뽑을 때는 홍준표가 대통령감이라고 착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홍준표가 그릇이 아니라는 진실이 드러나는데는 1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최근 대구 여론조사에서 이진숙이 계속 수위를 달린 것은 '혹시 이진숙이?'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런데 김부겸은 혹시 정도가 아니라 '확실한' 차기 주자다. 그러니 대구 시민들의 기대가 크다.
대구경북 통합하고, 공항 건설 첫 삽 뜨고, 예산 몇 푼 더 따오고, 이런 거 중요할 것이다. 그러나 그게 다가 아니다. 대구경북 통합, 공항 건설, 대구 예산 등은 이번 대구시장 선거의 쟁점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이미 홍준표가 단물 다 빨아먹은 이슈여서 선거의 쟁점이 아니다. 그러나 김부겸이 대구시장이 되면 진짜 이슈, 현실화될 수도 있다는 기대감이 있다. 선거의 쟁점이 된다.
그동안의 정치 공백이 김부겸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라고 분석하지만 필자의 생각은 다르다. 우선 작고한 DJ가 1992년 대선에서 YS에게 패배한 다음날 정계은퇴를 선언하고 영국 유학길에 올랐다. 이후 DJ는 1995년 정계에 복귀하고 1997년 대권을 잡는다. 이명박도 1996년 선거법위반 사건으로 한동안 정치권을 떠났다가, 2002년 서울시장 선거, 2007년 대선에서 잇달아 승리한다. 박근혜도 2007년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패배한 후 평의원으로 외곽을 전전하다가, 2011년 연말 비대위원장으로 복귀해 2012년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문재인도 2008년 노무현 대통령 퇴임과 함께 고향에 낙향했다가, 갑작스런 노무현의 사망 이후 정치에 투신해 2017년 박근혜 탄핵으로 치러진 대선에서 승리해 대통령이 된다.
1987년 대통령 직선제 실시 이후 정치권 중심에 머물다가 대권을 잡은 예는 김영삼, 노무현, 이재명 단 3명이다. 정치권 주변에 계속 머물 경우 실패한 현직 대통령과 현 정치권 전체의 문제까지 덤터기쓸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현실 정치에서 거리를 두면 정치권의 지저분한 진흙탕 싸움에서 자유롭다. 김부겸도 그 수혜자가 될 수 있을지는 이번 대구시장 선거의 결과에서 윤곽이 드러날 것이다.
김구철 전 한국기자협회 부회장, 금강대학교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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