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방의 시대 시작됐다”···EU, 트럼프식 이민정책 본격화

박은경 기자 2026. 3. 30.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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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현지시간) 프랑스 북부 그라블린 해변에서 이민자들이 영국 해협을 건너기 위해 밀입국 조직의 보트에 오르고 있다. AFP연합뉴스

유럽연합(EU)이 이민자 강제 추방 정책을 대폭 강화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이민 단속을 인권 침해라고 비판해 온 EU가 스스로 같은 절차를 밟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AP통신은 30일(현지시간) EU의 ‘이민·망명 협약’이 오는 6월 12일 발효된다고 보도했다. 이와 별도로 유럽의회는 앞서 26일 망명 신청이 거부된 이민자를 수용할 역외 이민자 센터 설치를 허용하는 새 이민 개혁안을 찬성 389표, 반대 206표로 가결했다. 이번 표결을 계기로 추방 절차 신속화와 출국 거부 망명 신청자 제재 방안을 구체화하기 위한 EU 이사회와의 후속 협상도 즉각 개시됐다고 독일 도이체벨레는 전했다.

법적 근거가 마련되자 회원국들이 즉각 움직였다. 독일과 네덜란드는 망명 신청이 거부된 이민자들을 추방 전 EU 역외 제3국 시설에 수용하는 ‘송환 거점’ 설치 계획을 2026년말까지 마련하기로 했다. 오스트리아·덴마크·그리스도 해당 협상에 참여하고 있다. 알렉산더 도브린트 독일 내무장관은 “올해 말까지 제3국과 협정 체결이 목표”라며 “의회가 승인한 법적 틀이 이 구상을 확실한 법적 근거 위에 올려놓았다”고 밝혔다.

유럽의회 내 교섭단체인 유럽보수개혁(ECR)의 샤를리 바이메르스 협상대표는 “유럽에 새로운 합의가 형성됐다”며 “이제 추방의 시대가 시작됐다”고 했다.

이 흐름의 선두에 이탈리아가 있다. ‘이민 강경’ 노선인 조르자 멜로니 총리가 이끄는 이탈리아는 알바니아에 망명 거부자를 위한 억류 시설 두 곳을 운영 중이다. 멜로니 내각은 반이민 패키지도 승인했다. 해군이 공공질서 위협 선박을 국제 해역에서 최대 6개월까지 억류하고 나포된 이민자를 출신국이나 제3국으로 송환하며 범죄로 유죄 판결을 받은 외국인 추방을 신속화하는 내용이 골자다.

스웨덴 유럽정책연구소(SIEPS)의 베른트 파루셀 연구원에 따르면 독일·오스트리아·네덜란드·덴마크·그리스 등도 추방 거점 협정을 추진하고 있다. 네덜란드 출신 유럽의회 의원 티네커 스트릭은 협상 대상국 중 하나가 케냐라고 밝히면서 “의도했든 아니든 트럼프 행정부가 엘살바도르 등과 맺은 협정과 유사하다”고 지적했다.

지난 1월 11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의 이민세관단속국(ICE) 본부 밖에서 한 활동가가 구호를 외치며 시위에 참여하고 있다.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발생한 ICE 요원의 르네 니콜 굿 총격 사망 사건과 트럼프 행정부의 베네수엘라 관련 조치에 반발하는 시위가 전역으로 확산한 바 있다. AFP연합뉴스

EU를 탈퇴한 영국 노동당 정부도 불법 이민 억제를 핵심 과제로 내세우고 있다. 내무부에 따르면 2024년 7월 집권 이후 약 6만명이 추방됐으며, 2025년에는 불법 취업자 9000명이 체포돼 전년 대비 50% 이상 증가했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법 위반이 일상화돼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EU법과 국제법상 ‘강제송환 금지 원칙’에 따르면 박해를 받을 위험이 있는 이민자를 해당 국가로 돌려보내는 것은 금지된다. 하지만 EU로 넘어오려는 사람들이 망명 절차에 접근조차 못 한 채 국경 너머로 밀려나는 ‘밀어내기’가 횡행하고 있다. AP통신은 인도주의 단체의 2월 보고서에 따르면 유럽에서는 하루 평균 221건의 밀어내기가 발생하고 있다.

벨기에 인권단체 11.11.11의 플로르 디던은 “유럽 요원들이 미국과 똑같이 이민자들을 학대하고 있다”며 “유럽 국경 당국이 학대하고 강탈하고 사람들을 죽게 내버려 두는 경우에 그 도덕적 명확성은 어디 있느냐”고 반문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멕시코 국경 장벽 건설, 강도 높은 이민자 단속과 강제 추방, 망명 신청자의 제3국 이송 등을 추진해 유럽 등 국제사회의 거센 비판을 받아왔다.

브뤼셀 소재 미등록이민자국제협력플랫폼(PICUM) 등 88개 비영리단체는 EU의 새 이민 규정이 주거지와 공공장소에 대한 경찰 단속을 강화하고, 인종 프로파일링과 무인기(드론)·열화상 카메라 등 감시 기술 활용을 확대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셸 르부아 PICUM 대표는 “미국 이민단속국(ICE)의 행태에 분노하면서 유럽에서 같은 관행이 벌어지도록 지지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국제앰네스티 EU 이민 담당인 올리비아 순드베리 디에스는 “유럽이 미국보다 보호 장치를 더 갖추고는 있지만, 더 가혹한 정책으로 향하는 정치적 동력은 같다”며 “결과도 같아질까 걱정된다”고 지적했다.

박은경 기자 yam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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