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유국’ 이집트도 상점 밤 9시 영업 제한 조치… 글로벌 에너지 양극화 심화
외교력·자본력이 에너지 안보 좌우
이란·러시아와 직접 협상하기도
각자도생 외교전
이란 전쟁이 장기화하고 핵심 석유 수송로인 호르무즈 해협 통제가 길어지면서, 개발도상국 사이에서 에너지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극심해지고 있다. 일부 국가는 외교력을 발휘해 원유와 가스 수송 우회로를 확보하거나, 직접 협상에 나서 제한적으로나마 에너지 생명줄을 유지하고 있다. 반면 국제사회에서 협상력이 떨어지는 국가는 중동에 인접해 있어도 극단적인 전력 절감 조치로 먼저 내몰리는 상황이다.
특히 자금력이 부족한 아프리카와 아시아 빈국들은 단순히 기름값이 오르는 수준을 넘어 국가 경제 전체가 마비될 위기에 처했다. 에너지 안보가 곧 국가 안보로 직결되는 엄혹한 현실 속에서, 각국 정부는 닫혀버린 에너지 보급로를 뚫기 위해 사활을 걸고 벼랑 끝 외교전을 펼치고 있다.

29일(현지시각) 이집트 정부는 치솟는 에너지 가격에 대응하기 위해 다음달 4일부터 한 달간 모든 상점과 식당, 카페 영업을 밤 9시로 제한하는 특별 조치를 발표했다. 가로등과 도로변 광고판 조도를 어둡게 낮추고, 4월 한 달 동안 가능한 많은 근로자들에게 주 1회 이상 재택근무를 하라고 지시했다. 호르무즈 해협을 통한 석유 및 가스 공급이 사실상 전면 중단되면서, 글로벌 유가가 폭등한 여파를 견디지 못한 고육지책이다.
이집트는 1970년부터 석유를 채굴한 산유국이다. 다만 뽑아낸 원유를 정제하는 데 쓸 연료 조달 능력이 부족해 생산량이 제한적이다. 그렇다고 채굴 단지를 넓히거나, 시설을 현대화할 재정적인 여력도 마땅치 않다. 자체 생산 원유가 있어도 국내 수요조차 못 따라가는 와중에, 최근에는 가스 생산까지 줄며 수입 의존도가 더 커졌다.
특히 이집트는 지리적으로 북아프리카에 속한다. 그러나 중동 분쟁 지역과 가깝다는 이유로 다른 개도국보다 훨씬 더 큰 타격을 받고 있다. 이집트는 경제 특성상 관광업과 소매업 비중이 높다. 오후 9시 이후 야간 영업 제한은 팬데믹 당시처럼 막대한 경제적 손실을 불러올 가능성이 크다. 그럼에도 이집트 정부는 정부가 당장 발전소 돌릴 연료를 구하지 못하면 국가 전력망 전체가 마비될 수 있다는 절박함에 강도높은 조치를 강해했다고 전문가들은 평가했다.
아시아 지역 개도국 역시 상황은 비슷하다. 외교적 지렛대가 없는 약소국들은 철저히 고립되는 중이다. 필리핀은 국가 전력 소비를 20% 줄이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공공부문 주 4일제를 전격 도입했다. 태국과 베트남 정부도 공무원들에게 재택근무를 지시하며 에너지 허리띠 졸라매기에 나섰다. 공장 가동을 멈출 수 없는 상황에서 공공부문이 먼저 희생을 감수하며 전력 수요를 억제하려는 시도다.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남아시아와 아프리카 최빈국들은 이미 식량 위기가 현실로 닥쳤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국가 기간망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전력조차 확보하지 못한 나라들이 제한 송전과 단전을 일상처럼 겪으며 사회 기반 전체가 흔들리는 위태로운 상황을 맞이했다고 전했다. 일부 국가에서는 전력 부족으로 농기계를 돌리지 못하거나, 비료 공장이 생산을 멈춘 상태다. 독일 킬 세계경제연구소는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단순한 에너지 가격 상승을 넘어 비료와 식량 가격 폭등으로 연쇄 반응을 일으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평소 가동하지 않던 외교 채널을 총동원해 돌파구를 마련한 국가도 있다. 이란과 국경을 맞댄 파키스탄은 전쟁 발발 직후부터 이란 지도부와 직접 협상을 벌여 자국 선박이 호르무즈 해협을 무사히 통과할 수 있도록 보장 받는 예외적 합의 조항을 끌어냈다.
중국은 트럼프 행정부가 한 달간 러시아산 석유와 가스 공급 제재를 풀어주자, 이를 대규모로 자국에 공급해 충격을 흡수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해 9월 베이징 정상회담에서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후 서방 제재를 받는 러시아산 천연가스를 중국에 대거 들여올 수 있도록 ‘시베리아의 힘 2’ 가스관 건설에 합의했다. 국가가 보유한 독자적인 외교 노선이 에너지 확보량을 결정짓는 방패 역할을 톡톡히 한 사례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구조적 에너지 불평등이 단기간에 해소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했다. 파티 비롤 국제에너지기구(IEA) 사무총장은 “중동 전쟁은 글로벌 원유 시장 역사상 가장 큰 공급 차질을 포함해 세계 경제에 중대한 에너지 위기를 촉발하고 있다”며 “사태가 조속히 해결되지 않으면 에너지 시장과 세계 경제에 미치는 충격은 갈수록 가혹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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