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악몽 또 터지나…"공장 멈출 판" 삼성·SK 초긴장 [테크로그]
대체 항로 찾고 물량 재배치 총력
아시아 제조업, 원료 공급망 '흔들'
운임 급등, 수익성·재고 리스크로
'이란 전쟁' 후티 참전에 '초긴장'
韓, 호르무즈 이어 이중고 우려

과거 홍해가 흔들리자 가장 먼저 이상 신호를 낸 곳 중 하나는 유럽 가전 공급망이었다. 스웨덴 가전업체 일렉트로룩스는 2023년 12월 후티 반군의 해상 공격이 본격화하자 곧장 태스크포스(TF)를 꾸렸다. 회사는 시급한 물량을 분류하고 대체 항로를 찾았다. 일렉트로룩스는 2024년 2월 실적 보고서에서 홍해 사태가 해상운임의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고 밝혔다. 공급망 충격이 '배가 늦는 문제'를 넘어 수익성과 재고 운영 문제로 번지고 있다는 신호였다.
미국 가전업체 월풀도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월풀은 2024년 1월 유럽 사업이 홍해 사태의 영향을 받기 시작할 것이라고 했다. 선박들이 수에즈·홍해 대신 아프리카 남단으로 돌아가면서 운송 기간이 10~15일 더 늘어난 데다 북미 동부 일부 선적도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이 같은 장면들이 재연될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예멘의 친이란 이슬람 무장단체 후티가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에 개입 의사를 공식화하면서다. 시장은 바브엘만데브 해협과 홍해를 다시 주시하고 있다. 홍해가 막히면 유럽의 에너지·가전 공급망, 아시아의 원료 조달, 소비재 기업의 납기가 다시 흔들리는 탓이다.

2년 전 홍해 사태, 초기 '운임 급등'으로 리스크↑
30일 업계에 따르면 당시 홍해 사태 충격이 컸던 이유는 해당 항로의 중요도가 높아져서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 조사를 보면 수에즈운하, 수메드(SUMED·수에즈-지중해) 송유관, 바브엘만데브는 2023년 상반기 기준 전 세계 해상 원유 거래 가운데 약 12%, 액화천연가스(LNG) 거래 중 약 8%가 지나는 길목이었다. 특히 유럽으로 향하는 북향 원유 흐름은 2020년보다 60% 넘게 늘었다. 러시아산 에너지 의존을 줄이는 과정에서 유럽이 중동산 원유와 LNG를 더 끌어오자 해당 경로의 전략적 비중이 한층 커진 상태였다.
이 때문에 2023년 11월 본격화한 후티의 홍해 공격은 단순한 해상 안보 문제가 아니라 유럽 조달 구조를 정면으로 건드린 사안으로 확대됐다.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는 2024년 2월 브리핑을 통해 후티 반군이 전년도 11월 이후 최소 34차례 선박을 공격했다고 발표했다.
주요 선사들은 수에즈 통과를 일시 중단하거나 희망봉 우회에 나섰다. 초기 국면에선 모든 물동량이 동시에 무너진 것은 아니었다. 2023년 12월 남부 홍해·아덴만의 일평균 유조선 수는 76척으로 전달보다 2척 적은 수준에 그쳤다.
반면 컨테이너선 통행은 같은 기간 28% 줄었다. 공격이 시작되자 가장 먼저 흔들린 것은 원유 자체보다 컨테이너와 일반 화물이었다는 의미다. 충격은 '산유 차질'보다 '운임 급등'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글로벌 물류 플랫폼 프레이트오스는 '아시아-북유럽' 40피트 컨테이너 운임이 2024년 1월 초 4000달러를 넘겨 우회 직전보다 173% 뛰었다고 설명했다. 아시아-지중해 노선도 5100달러대로 치솟았다.
2024년 1월 하순으로 갈수록 충격 여파는 커졌다. UNCTAD는 같은 해 2월 수에즈운하 교역량이 최근 두 달간 42% 줄었고 2024년 초 기준 300척이 넘는 컨테이너선, 즉 전 세계 컨테이너 선복의 20% 이상이 우회하거나 '우회 계획'을 세웠다고 전했다.

아시아 석화 업계엔 '원가 변수'…전 산업 충격 확대
그러면서 홍해 사태는 지정학 이슈가 아니라 '운임과 납기'로 번역되는 경제 뉴스가 됐다. 당시 예민하게 반응한 부문은 정제제품과 석유화학 원료 시장이었다. 유럽은 경유가, 아시아는 나프타(납사)가 흔들리는 식으로 충격이 나타났다.
같은 달 인도산 저유황경유의 유럽 수출은 전달보다 약 80% 줄었다. 유럽 정유사의 아시아향 나프타 수출 기회는 운임이 50% 급등하면서 사실상 사라졌다. 같은 시기 아시아 나프타 크랙은 하루 만에 약 16달러 올라 브렌트유 대비 톤(t)당 118.63달러로 뛰었다. 석유화학 원료를 많이 쓰는 아시아 제조업 입장에선 홍해 사태가 곧 원가 변수였다.
원유 시장에선 물류비 충격이 본격화했다. 아부다비산 원유 180만배럴을 싣고 프랑스로 향한 초대형 유조선 그랜드 보난자호는 수에즈 대신 아프리카를 돌아가면서 항해 기간이 최소 2주 늘었다. 비용은 약 570만달러로 80% 가까이 증가했다. 이때부터 시장의 관심은 '통과하느냐 마느냐'에서 '얼마나 더 길게, 얼마나 더 비싸게 가느냐'로 옮겨갔다.
같은 해 2월로 접어들면서 충격은 숫자로 더 구체화됐다. 홍해 사태가 길어질수록 피해는 세계 교역량과 선복 배치 전반으로 번졌다. IMF는 2024년 1~2월 수에즈운하 교역량이 전년 대비 50% 감소했고 희망봉 우회 물동량은 74%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해운추적 플랫폼 케이플러(Kpler)도 2월 기준 수에즈를 지나는 벌크선 흐름이 크게 줄어 탱커는 전달보다 23%, 드라이벌크는 27%, LNG는 73% 감소했다고 밝혔다.
홍해 사태의 교훈은 해상 병목(초크포인트·Chokepoint)이 흔들릴 경우 먼저 컨테이너가 밀리고 그다음 LNG·정제제품이 흔들리는 데 이어 운임·보험료·재고 비용이 전 산업으로 번진다는 것이다.
후티, 홍해 봉쇄 땐 '산업 충격' 또다시 시험대
후티가 군사적 행동에 나설 의사를 드러내고 홍해 봉쇄 가능성이 거론되는 국면에선 과거처럼 유럽 에너지와 아시아 나프타, 소비재 공급망이 가장 먼저 시험대에 오를 가능성이 크다.
현재 한국에선 다른 형태로 이와 유사한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카타르의 가스·헬륨 생산 차질과 운송 불안이 겹치면서 반도체 업계 헬륨 공급망엔 경고음이 울리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삼성전자·SK하이닉스가 수개월치 헬륨 재고를 보유한 상태라고 전했지만 공급 차질이 장기화하면 비용 상승과 첨단 공정 병목 위험이 커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국 반도체가 맞닥뜨린 위험은 '버틸 수 있지만 비싸지고 불안해지는' 공급 리스크로 요약된다.
나프타 충격은 더 직접적이다. 정부는 지난 27일 나프타 수출을 원칙적으로 금지했다. 석유화학 정보업체 ICIS 조사를 보면 한국은 지난해 2670만t에 이르는 나프타를 수입하고 389만t을 수출했는데 최근 이란 전쟁으로 조달이 꼬이자 수출문을 먼저 잠근 것이다. LG화학·롯데케미칼은 일부 생산시설 가동을 중단한 상태다. 홍해 리스크가 과거 유럽 가전업체의 납기를 흔들었다면 현재 한국에선 석유화학 공장의 가동률을 끌어내리고 있는 셈이다. 기름값도 정유사 공급가격 상한제로 눌리지 않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후티 반군이 이란 전쟁 개입을 밝힌 상황에서 과거처럼 홍해 물류 리스크가 현실화하면 국내 산업계는 호르무즈 해협 봉쇄에 더해 이중고를 겪게 될 것"이라고 했다. 모하메드 만수르 후티 반군 정보부 차관은 "우리는 이 전투를 단계적으로 수행하고 있고 선택지 중에는 바브엘만데브 해협 폐쇄도 있다"고 말했다.
김대영 한경닷컴 기자 kd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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